동장군이 기세를 부리다가 주춤하기를 반복하면서 겨울이 지나가고 있다. 추위에 움츠리고 있다 보면 맛있는 먹을거리 생각이 간절해진다. 찬바람이 불때만 맛 볼 수 있는 영양 가득, 겨울의 풍성한 맛을 만나보자.

서해 '백합'

100가지 무늬를 가지고 있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 ‘백합’.

고운 이름과 모습의 백합은 사는 터전도 까다롭게 고른다. 바닷물의 염분이 너무 많지도 적지도 않은 깨끗한 민물이 들어오는 하구갯벌에 백합이 산다. 고운 모래펄에 몸을 맡기는 까다로운 백합은 6년까지 살기도 한다.

국내 백합 생산량의 절반 가량을 동진강과 만경강이 유입되는 김제와 부안 일대 갯벌에서 책임지고 있다. 김제 심포항에서 고운 서해의 갯벌 품에 자란 백합의 맛을 볼 수 있다. 수많은 어선이 오가던 항은 어업의 쇠퇴와 함께 부쩍 고요해졌지만 항구 근처에 식당에서 백합의 맛을 볼 수 있다.

봄에 자라고 겨울에 성장을 멈추는 백합은 찬바람이 불면 그 맛을 더한다. 감칠맛나는 백합탕에 쫄깃하고 부드러운 백합죽은 사람들의 입맛을 사로 잡는다. 바닷내음을 고스란히 느끼고 싶다면 속살 그대로 베어 물어도 된다.

통영 '물메기탕'

찬바람이 불어야 비로소 그 맛을 볼 수 있다는 물메기탕. 복국 전문점이 즐비한 통영 서호시장에서는 겨울이 되면 물메기탕이 물을 만난다.

맑게 끓여나온 탕에 고춧가루로 얼큰함을 더할 수 있다. 개운하면서도 시원한 국물로 뜨끈하게 몸을 녹인 후 본격적인 물메기탕의 묘미를 느껴보자.

숟가락으로 휘휘 젓으면 물메기의 살점이 눈처럼 녹아흐른다. 따로 씹을 것도 없이 후루룩 마셔 넘기는 게 물메기탕이 매력이다. 통영에선 싱싱한 생물로만 먹기 때문에 겨울에만 물메기탕을 만날 수 있다. 1년을 기다려야 맛볼 수 있는 통영의 겨울 별미다.

물메기가 점령한 서호시장·중앙시장의 겨울 풍경은 겨울 별미 여행의 또 다른 즐거움.

중앙시장 뒤편 언덕배기에는 벽화골목으로 유명한 동피랑마을이 있다. 아기자기한 그림이 반기는 즐거운 산책길이다.

‘통영의 피카소’로 불리던 추상화가인 전혁림 화백의 미술관 나들이도 좋다.

동해 '과메기'

구룡포와 호미곶을 잇는 해안도로에는 특별한 겨울 풍경이 있다.

진한 에메랄드색 바다를 배경으로 해서 과메기 덕장이 끝없이 펼쳐져 있다.

바다를 노닐던 꽁치가 동해안의 바람을 온몸으로 맞으면서 꼬들꼬들하게 맛과 윤기를 더하고 있는 중이다.

얼었다가 녹기를 반복하면서 알싸한 바다의 맛을 품게 되는 과메기는 고단백 영양식품이다. 해풍에 말려진 과메기는 쫄깃쫄깃한 맛이 일품이다.

김, 미역, 배춧잎 등에 싸서 마늘과 고추, 초장 등을 얹혀 한입에 쏙 넣으면 바다와 대지의 풍부한 맛이 입안에 가득하다. 소주 안주로도 제격이다.

포항 나들이에서 해미곶을 빼놓을 수 없다.

과메기의 본고장 구룡포에서 20여 분을 달리며 ‘호랑이 꼬리’ 호미곶에 닿을 수 있다. 바다에 자리 한 ‘상생의 손’너머로 붉게 부서지는 일출을 감상할 수 있다.

벌교 '꼬막'

벌교는 내륙과 직결되는 포구이자 고흥반도와 순천, 보성을 잇는 교통의 요충지였다. 대하소설 태백산맥의 주무대이기도 하다.

태백산맥 문학관을 중심으로 한 문학기행은 채동선 생가, 낙안민속마을, 나철선생 유적지, 부용산 공원 등을 돌아보는 것으로 즐거움을 더할 수 있다.

무엇보다 벌교 겨울 여행의 핵심은 ‘맛’이다.

여자만 갯벌에서 생산되는 쫄깃쫄깃한 꼬막은 다양한 모습으로 사람들을 유혹한다. 가을 찬바람과 함께 맛이 들기 시작하는 꼬막은 봄철 알을 품기 전까지 맛이 물이 오른다. 슬쩍 데쳐서 짭조름한 맛을 보는 것만으로는 아쉽다.

삶은 꼬막과 꼬막전 달달한 소스와 함께 맛보는 꼬막 탕수육. 여기에 새콤한 회무침에 슥슥 밥을 비벼 먹어야 비로소 꼬막 맛 여행이 끝이 난다.

/김여울기자 wool@kwangj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