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이 시작된다는 입동도 지났지만 한낮 햇살은 아직 봄처럼 포근하다. 파란 하늘 너머로 불어오는 바람도 견딜 만하다.

가을을 보내는 아쉬움을 안고 걷기에 좋은 시기다. 늦가을 초겨울의 정취에는 쓸쓸함이 함께 한다. ‘고독’은 이 계절의 낭만, 갈대와 바다는 찬바람이 불어오는 늦가을에 빛을 발하는 조합이다.

◇보성 득량만 갈대밭길

갈대와 바다를 만나기 위해 선택한 보성. 보성군 득량면 해평리에 갈대군락지 생태공원이 있다.

순천만 너른 갈대밭처럼 탄성을 내지르게 하는 거창함은 없지만 익숙한 풍경처럼 소소한 멋이 있다.

갈대밭 입구에 서있는 나무 다리를 건너면 갈대의 품에 안길 수 있다. 갈대 사이로 난 나무 테크를 걷는 데는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느린 걸음으로 10여 분 가량 갈대숲을 누비면서 여유를 부려본다.

금빛으로 빛나는 갈대밭의 산책은 쓸쓸하면서도 평온하다. 인적이 드문 이곳에는 갈대만이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아니 갈대가 울고 있다. 서걱서걱 바람을 따라 몸을 뉘이며 갈대가 가을처럼 울고 있다. 갈대 위를 날아오르는 새들과 계절이 가는 것을 아쉬워하는 잠자리 무리를 뒤로하고 갈대밭을 벗어난다.

이곳의 또 다른 ‘보물 상자’는 갈대밭 건너편에 있다. 득량만 갈대밭 입구 건너편으로 빨간 아스팔트 계단이 있다. 다락방을 오르듯 설레는 마음으로 올라선 계단 끝에는 득량만의 바다가 보석같이 반짝이고 있다. 보물 상자처럼 튀어나온 바다에 잠시 넋을 놓고 있다보면 철썩철썩 방파제로 달려드는 파도소리가 힘차게 귓가를 때린다. 낯선 세상에 들어선 기분이다.

방조제 위를 거닐면 눈과 귀가 즐겁다. 왼편으로는 갈대가 바람에 따라 금빛 물결을 이루고 있고, 오른쪽에는 드넓은 바다가 햇빛을 품에 안고 철썩이고 있다. 어느 쪽으로 고개를 돌려도 눈이 부신 자연이 출렁이고 있다.



◇비봉리 공룡알 화석지

갈대밭과 방조제 산책이 끝났다면 느긋하게 드라이브를 즐겨보자.

다음 목적지는 비봉리 공룡알 화석지. 1998년 공룡알 둥지가 발견된 이곳은 지난 2004년 천연기념물 제418호 및 문화재보호구역으로 지정됐다. 갈대 생태공원에서 공룡알 화석지까지 5분여 정도의 거리에 눈이 즐거운 풍경이 그득이다.

왼편으로는 바다가 마중을 하면서 함께 달리고, 오른편에는 보성 쪽파가 새파랗게 서서 계절을 잊게 한다. 쪽파를 수확하는 아낙네들의 정겨운 모습은 풍경화 같다.

가을 노래 한 곡조 뽑으며 달리다보면 알에서 깨어나고 있는 공룡을 만날 수 있다. 보성 공룡알 화석지를 알리는 공룡동상을 따라 들어간 마을에는 공룡벽화가 울긋불긋이다.

바다를 앞에 두고 형성된 광장에서 공룡알 화석지에 대한 설명과 화석 모형을 확인할 수 있다. 이곳에서는 25개 알둥지와 200여개 알화석, 공룡뼈화석 등이 발견됐다.

바다를 향해 걸음을 옮기면 해안선을 따라 나무 테크길이 나있다. 바다 위를 사뿐사뿐 거닐면서 괜한 상상에 빠져본다. 커다란 공룡이 바다를 향해 포효하고 있는 모습, 아기 공룡들이 엄마 공룡을 따라 총총 걸음을 걷는 모습.

이런 저런 상상을 하면서 바다를 내다본다. 한참을 머물러도 지겹지 않을 바다가 눈이 부시게 빛나고 있다. 조용한 음악과 진한 커피 한 잔이 함께 한다면 더없이 좋을 여행길이다.

/글·사진=김여울기자 wool@kwangj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