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이다. 산은 울긋불긋 옷을 바꿔 입고, 들판은 황금빛으로 물들어 농익은 가을을 전한다. 눈이 시릴 정도로 푸른 하늘과 시원한 가을바람을 마주하고 있노라면 가을의 이야기를 듣고자 어디론가 떠나고만 싶다. 가을의 주인공은 단풍이다. 새빨간 아기 볼 마냥 싱그럽게 물든 이파리들이 황홀한 가을을 물들이며 사람의 마음을 잡아 끈다. 그래서 사람들은 가을이면 무작정 단풍이 든 산에 몸을 맡기나 보다. 손을 흔드는 코스모스 길을 따라 가을의 주인공을 찾아 나서 보자.



◇구례 피아골 ‘삼홍’=지리산 단풍은 천천히 물들고 더디게 떨어진다. 그리고 유난히도 붉다. 그중 으뜸은 피아골 단풍이다.

피아골 초입의 연곡사에서 출발, 계곡을 따라 골짜기로 들어서면 졸졸졸 물 흐르는 소리와 빨갛고 노랗게 물든 풍광속 단풍의 바다에 흠뻑 빠져들게 한다.

계곡을 따라 오색단풍으로 곱게 단장한 단풍나무들이 등산객을 유혹하고 구불구불 산길을 한 굽이 돌아설 때마다 빨갛고 노란 비경이 눈앞에 펼쳐진다. 한 폭의 그림과 같다.

그래서 조선조 유학자 남명 조식은 삼홍시(三紅詩)에서 “지리산이 붉게 타니 산홍(山紅)이요, 단풍에 비친 맑은 소(沼)가 붉으니 수홍(水紅)이요, 산에 들어선 사람도 붉게 물드니 인홍(人紅)이라”고 노래했나 보다.

그만큼 지리산 원시림 속 단풍이 바람에 흩날려 계곡으로 쏟아져 만들어내는 계절의 조화는 가을 길손의 마음도 가을만큼 화려하게 물들인다.

◇장성 백양사 ‘애기단풍’=장성 북하면 약수리. 이곳에는 아름다운 가을 단풍으로 널리 알려진 백양사가 자리를 틀고 앉아 있다. 백양사는 지금으로부터 1400여 년 전 여환선사에 의해 ‘백암사’라는 이름으로 창건되었다. 그 후 한때는 ‘정토사’라는 이름으로 불리다가 훗날 한 고승이 법회를 베풀 때 뒷산에서 흰 양이 내려와 설법을 들었다 해서 ‘백양사’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되었다.

천년고찰 백양사를 배경으로 물든 오색단풍은 세월의 흔적과 어울려 한 폭의 그림을 만든다. 백양사는 오르는 길에 줄지어 선 애기단풍으로 유명하다. 백양사의 단풍잎은 작고 촘촘한 것이 그 특징이다. 애기 손바닥만큼 앙증만은 단풍이 가을 나들이객을 손짓한다.

백양사 입구의 백양관광호텔 앞에서 매표소까지 이어지는 약 1.5km의 도로변에는 단풍나무 가로수들이 길게 이어져 있다. 매표소를 지나 백양사까지 이어지는 산책로에서도 아름다운 단풍을 감상할 수 있다. 산책로가 끝나는 곳에 자리 잡고 있는 쌍계루는 백양사의 단풍을 가장 흠뻑 즐길 수 있는 명소다. 붉게 물든 단풍나무에 둘러싸인 쌍계루의 단아한 자태와 백암산 중턱에 우뚝 솟은 백학봉이 멋진 조화를 이루고 있다.

백양사는 애기단풍 이외에도 수백 년 된 아름드리 갈참나무 거목들과 비자나무 등이 세월의 깊이를 느끼게 한다. 백양사 뒤편으로 병풍처럼 웅장하게 서 있는 백암산과 백양사의 풍경이 어우러져 여행객들의 발길을 붙잡는다.

◇갈색 단풍, 담양 ‘메타세쿼이아 가로수길’=빨간 단풍이 아니라도 나그네를 잡아끄는 단풍이 있다. 담양의 대표적인 명소인 메타세쿼이아 가로수길이 바로 그곳이다. 여름내 푸른빛으로 시원한 그늘을 제공했던 메타세쿼이아들이 어느덧 황금빛 갈색 단풍으로 옷을 갈아입었다.

가을의 한가운데서 메타세쿼이아가 만들어 내는 황금터널을 걸으면 마치 영화 속 주인공이 된 듯한 느낌이 든다. 연인과 함께 자전거를 타고 달리는 모습은 이미 영화 속 엔딩의 한 장면이다.

이 길은 떨어지는 낙엽을 밟고 걸으면 더욱 로맨틱해진다. 석양에는 더 장관을 연출한다. 해가 뉘엿뉘엿 넘어가기 시작하면 메타세쿼이아의 황금빛 단풍이 노을이 되고, 노을이 메타세쿼이아가 된다.

이 가을 연인 손을 잡고 그 길을 걸어보자.

/김경인기자 kki@kwangj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