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강산 여행이 허락된 이후 1백50만명의 관광객이 금강산을 다녀왔다지만 아직까지 금강산 관광을 떠올리면 백발이 성성한 노인의 눈물이나 ‘우리의 소원은 통일’ 같은 틀에 박힌 구호가 떠오르는게 사실이다. 놀고 즐기는 관광보다는 ‘민족의 비애’ ‘호기심’을 갖고 가는 성격이 강하다.
하지만 이처럼 딱딱한 민족주의적 시각을 약간 비켜가면 금강산은 충분히 매력적인 여행지다. 세계 어느곳에서도 찾아 볼 수 없는 그들만의 독특한 개성이 살아 숨쉬는 금강산 여행을 2회에 걸쳐 싣는다.
〈편집자 주〉

그동안 적잖이 해외 나들이를 했지만 두근거림이 멈추지 않는 것은 어릴때 받은 반공교육 탓일까? 그저 철조망 몇개 넘었을 뿐인데 눈앞에 펼쳐진 풍경은 전혀 딴 세상이다.
산세가 다르다. 신록이 우거진 여름 풍경은 온데간데 없고 바위산이 지천이다. 영화에서나 봤던 단구의 북측 군인이 날카로운 시선으로 관광객의 행동을 주시하고 있다.
금강산 관광지구로 들어가려면 북한 주민들이 실제 살고 있는 마을을 지난다. 시멘트블록으로 어설프게 지어진 회색빛 건물이 옹기종기 모여있다. 반듯하고 보기 좋은 바위면이나 눈에 잘 띄는 곳에는 어김없이 ‘김정일 장군님 만세!’ 같은 빨간색 구호가 새겨져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새카맣게 그을린 유아들과 자전거를 타고 가는 북측 주민들의 모습에서 ‘변화’를 느낀다. 어쩌면 금강산 보다 그들의 모습을 실감나게 보고 싶었는지 모른다. 모든 시간이 슬로 모션처럼 느릿하게 흘러가는 듯 하다. 이런 북한 마을 모습은 철저히 사진 촬영이 금지돼 있다.
금강산관광지구에서 만나는 북측 봉사원들은 일반 북측 주민들과 다르다. 대부분 예쁜 여자다. 북측에서 정책적으로 이들 외모를 관리하는 것은 아닌가 할 정도로 외모가 평범 이상이다. 이들의 역할은 관광 안내원으로 활동하거나 호텔이나 면세점 봉사원으로 일한다. 호텔에서 관광객들의 식사나 저녁 술자리를 거드는 봉사원들은 직접 술을 따라주거나 손을 잡아도 웃음으로 넘기고, 노래방 기계로 ‘찔레꽃, ‘목포의 눈물’등 애절한 남측 노래를 불러주는 등 적극적인 서비스를 펼친다.
금강산관광지구의 인프라는 관광객들의 불편을 사라지게 한다. 편의점, 테이크 아웃 커피숍, 푸드 코트 등 각종 편의시설이 구비돼 있고, 관광 포인트를 연결하는 셔틀버스가 10여분 간격으로 운행한다.
금강산은 내금강, 외금강, 해금강지구로 나뉘는데 내금강은 지난 6월에야 남측 관광객의 발길이 허용됐다. 아쉽게도 올 여름 수해로 내금강이 침수돼 방문이 어렵다.
외금강은 구룡연 코스, 만물상코스, 해금강·삼일포 코스, 수정봉 코스로 나뉜다.
대부분 첫날 구룡연 코스를 가고 다음날 만물상 코스나 해금강·삼일포 코스중 택일 하게 된다.
북측 봉사원의 간단한 설명을 듣고 금강산과 첫 대면을 한다. 계곡위에 서 있는 ‘목란관’을 거쳐 원시림이 우거진 ‘수림대’를 지난다. 하늘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빽빽이 들어선 수림대에선 남측의 세속적인 모습을 벗고 금강산에 오르라는 계시를 느낀다. 앙지대와 한모금 먹으면 10년 젊어지고, 두모금 먹으면 20년, 세모금 먹으면 엄마 뱃속으로 들어간다는 ‘삼록수’를 지나 ‘금강문’을 넘어간다. 때마침 내린 빗줄기가 금강산의 처녀성을 쉽게 허용하지 않으려는 듯 거세다.
쿠르릉, 탕탕거리며 흐르는 계곡물의 굉음은 ‘통일’을 이루지 못한 북측과 남측을 호통치는 듯 하다. ‘옥류담’을 거쳐 ‘구룡폭포’에 다다른다. 시원스레 쏟아지는 구룡폭포 앞에 자리잡은 ‘관폭정’에서 비를 피하는데 일행중 한명이 구성진 창 가락과 함께 덩실덩실 어깨춤 판을 벌인다. 어리둥절 하던 북측 봉사원도 천하절경과 함께 어울린 창가락에 어느덧 이념이란 허울을 벗어던진 듯 제지를 하지 않는다.
숨을 돌린 뒤 선녀들이 목욕했다는 상팔담 코스를 오른다. 거의 90도에 가까운 경사가 귀중한 것을 얻기 위한 댓가를 요구하는 것 같다. 게르마늄 성분이 많이 섞여 푸른 빛이 감도는 담(潭)과 소(沼)가 천하제일 절경 금강산에 올랐음을 실감케 한다.
/금강산 글·사진=최재호기자 l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