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곰·연어·화산·눈 … ‘순수의 세계’
2007년 08월 15일(수) 18:49 가가
캄차카 화산지대 트래킹
러시아 연방의 동쪽 끝에 위치한 캄차카 반도. 서쪽으로 오호츠크해, 동쪽으로 베링해와 태평양을 낀 이곳은 세계 화산의 10%가 몰려 있고 이 중 활화산이 29개나 활동 중인 ’불의 땅’이다. 하지만 유황이 뿜어져 나오는 분화구 밑으로는 설국(雪國)이 펼쳐진다. 연중 녹지 않는 건설(乾雪) 위로 불곰이 미끄럼을 타고 연어를 잡아먹는, 세계적으로 손꼽히는 대자연이자 생태계의 보고다.
인간의 손때가 묻지 않은 천혜의 자연, 캄차카 화산군을 ‘2007 피스&그린보트’ 참가자들이 다녀왔다. ‘피스&그린보트’는 한국의 환경재단과 일본의 피스보트가 양국 300명씩 모두 600명을 크루즈에 태우고 15일간 진행하는 환경·평화 교류 프로그램. 올해는 ‘STOP! 지구온난화’를 주제로 한국, 일본, 러시아의 6개 지역에 기항했다.
‘피스&그린보트’ 순항 6일째인 지난 7월 21일, 참가자들을 태운 후지마루호는 세 번째 기항지인 러시아 캄차카 반도 남단 페트로파블로프스크항에 접안했다. 관광인프라가 발달되어 있지 않은 이곳에 한국 단체관광객이 찾은 것은 처음.
러시아로 연결하는 육로도 없고, 오로지 바다와 하늘로만 연결되는 캄차카. 이곳은 400만 마리의 연어가 회귀하고 바다사자와 불곰이 다수 서식하는 동식물 종다양성이 풍부한 곳이다. 이 때문에 캄차카 화산군은 지난 1996년 유네스코에 의해 세계자연유산으로 지정됐을 정도로 원시 자연을 간직하고 있다.
이번 트레킹의 목표는 아바차 화산 고원지대. 1991년에 화산 폭발했던 아바차산(해발 2,700m)과 카레악스키(해발 3,500m)로 가는 길은 험난했다. 우선 화산지대 트레킹을 신청한 50여명은 1,000m 고지의 베이스캠프까지 이동하는 유일한 수단인 ‘특수차량’을 타고 가며 혼을 쏙 뺐다. 항구와 캠프를 이어주는 유일한 길은 용암이 흘러가면서 자연적으로 만들어진 비포장 자갈길. 6륜 구동의 군용트럭은 적재함에 좌석을 놓고 뚜껑을 덮어 버스로 개조한 것. 이 트럭이 경사가 심한 돌길을 롤러코스터처럼 1시간 반을 요동치며 달리는 바람에 정신이 혼미했다.
“예전에 이곳 사람들은 화산에 대해 두려움을 갖고 있어서 높은 곳까지 올라오질 않았습니다. 혹시 오더라도 사진 찍는 것은 금기였어요.”
현지 가이드인 여대생 올가(25)씨는 “화산들마다 셀 수 없는 신화들이 있다”며 일종의 경외감을 드러냈다. 사진촬영을 위해 도중 차에서 내리게 됐는데 “자작나무 숲 사이로 불곰이 출몰하기 때문에 조심해야 한다”며 멀리 가지 말라고 몇 번이나 주의를 준다. 왕성하게 번식한 불곰들은 캄차카에만 세계의 20%가 살고 있고, 하루 동안 50㎏의 연어를 먹어치운다고.
캠프로 가는 동안 창밖으로 드문드문 다니는 산악자전거에 손을 흔들고, 눈이 녹은 자리에 피어난 형형색색의 야생화를 눈요기하는 사이 어느덧 캠프에 닿았다.
캠프에서 차려준 점심은 연어 수프에 이어 연어 스테이크. 캄차카에선 곰뿐만 아니라 사람도 연어만 먹는다!
든든히 요기하고 낙타봉(1,200m)까지 눈밭과 흙길을 1시간30분 남짓 올랐다. 고생은 헛되지 않았다. 캄차카 화산군은 원시 대자연 그대로였다. 손에 잡힐 듯 보이는 분화구는 성난 황소처럼 ’쉬웅∼쉬웅∼’ 매캐한 유황과 연기를 뿜어냈다. 두꺼운 눈 밑을 깨고 그 밑으로 흐르는 시냇물에 얼굴을 씻으니 손과 귀가 얼얼하고 더위가 한순간에 싹 가신다.
“연중 스키를 탑니다. 7∼8월에는 ’수영복 스키대회’도 열려서 많은 사람들이 즐깁니다.”
올가씨의 설명 그대로 정말 눈밭에는 수영복 차림의 일가족이 눈에 띄었다. 일반 러시아 등산객들도 일광욕 때문에 웃옷을 모두 벗고 있었지만 한국인들은 강한 자외선과 모기떼 때문에 몇 겹을 겹쳐 입은 모습이 극명한 대조를 이뤘다.
정상의 분화구까지 걸으면 4시간이 걸릴 텐데 시간 제약 때문에 낙타봉에서 아쉽게 하산할 수밖에 없었다. 항구 인근 공항에서 헬기를 타면 분화구까지 데려다 주는 여행상품도 있다고 한다. 올가씨는 “캄차카에는 화학성분이 다른 200개에 달하는 온천이 있다”고 자랑했다.
만년설과 유황의 몽환적인 조화, 그리고 노천온천에서의 휴식. 캄차카에서 즐길 수 있는 때 묻지 않은 자연일 것이다.
캄차카는 마지막까지 탄성을 자아내게 했다. 그것은 백야였다. 귀선한 뒤 선상에서 바라본 캄차카는 늦은 밤이 되어서도 환하게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헤어짐이 아쉬운 듯, 오랫동안 작별의 손짓을 하는 것처럼.
<부산일보 제공>
/글·사진=김승일기자 dojune@busanilbo.com
인간의 손때가 묻지 않은 천혜의 자연, 캄차카 화산군을 ‘2007 피스&그린보트’ 참가자들이 다녀왔다. ‘피스&그린보트’는 한국의 환경재단과 일본의 피스보트가 양국 300명씩 모두 600명을 크루즈에 태우고 15일간 진행하는 환경·평화 교류 프로그램. 올해는 ‘STOP! 지구온난화’를 주제로 한국, 일본, 러시아의 6개 지역에 기항했다.
‘피스&그린보트’ 순항 6일째인 지난 7월 21일, 참가자들을 태운 후지마루호는 세 번째 기항지인 러시아 캄차카 반도 남단 페트로파블로프스크항에 접안했다. 관광인프라가 발달되어 있지 않은 이곳에 한국 단체관광객이 찾은 것은 처음.
러시아로 연결하는 육로도 없고, 오로지 바다와 하늘로만 연결되는 캄차카. 이곳은 400만 마리의 연어가 회귀하고 바다사자와 불곰이 다수 서식하는 동식물 종다양성이 풍부한 곳이다. 이 때문에 캄차카 화산군은 지난 1996년 유네스코에 의해 세계자연유산으로 지정됐을 정도로 원시 자연을 간직하고 있다.
이번 트레킹의 목표는 아바차 화산 고원지대. 1991년에 화산 폭발했던 아바차산(해발 2,700m)과 카레악스키(해발 3,500m)로 가는 길은 험난했다. 우선 화산지대 트레킹을 신청한 50여명은 1,000m 고지의 베이스캠프까지 이동하는 유일한 수단인 ‘특수차량’을 타고 가며 혼을 쏙 뺐다. 항구와 캠프를 이어주는 유일한 길은 용암이 흘러가면서 자연적으로 만들어진 비포장 자갈길. 6륜 구동의 군용트럭은 적재함에 좌석을 놓고 뚜껑을 덮어 버스로 개조한 것. 이 트럭이 경사가 심한 돌길을 롤러코스터처럼 1시간 반을 요동치며 달리는 바람에 정신이 혼미했다.
“예전에 이곳 사람들은 화산에 대해 두려움을 갖고 있어서 높은 곳까지 올라오질 않았습니다. 혹시 오더라도 사진 찍는 것은 금기였어요.”
현지 가이드인 여대생 올가(25)씨는 “화산들마다 셀 수 없는 신화들이 있다”며 일종의 경외감을 드러냈다. 사진촬영을 위해 도중 차에서 내리게 됐는데 “자작나무 숲 사이로 불곰이 출몰하기 때문에 조심해야 한다”며 멀리 가지 말라고 몇 번이나 주의를 준다. 왕성하게 번식한 불곰들은 캄차카에만 세계의 20%가 살고 있고, 하루 동안 50㎏의 연어를 먹어치운다고.
캠프로 가는 동안 창밖으로 드문드문 다니는 산악자전거에 손을 흔들고, 눈이 녹은 자리에 피어난 형형색색의 야생화를 눈요기하는 사이 어느덧 캠프에 닿았다.
캠프에서 차려준 점심은 연어 수프에 이어 연어 스테이크. 캄차카에선 곰뿐만 아니라 사람도 연어만 먹는다!
든든히 요기하고 낙타봉(1,200m)까지 눈밭과 흙길을 1시간30분 남짓 올랐다. 고생은 헛되지 않았다. 캄차카 화산군은 원시 대자연 그대로였다. 손에 잡힐 듯 보이는 분화구는 성난 황소처럼 ’쉬웅∼쉬웅∼’ 매캐한 유황과 연기를 뿜어냈다. 두꺼운 눈 밑을 깨고 그 밑으로 흐르는 시냇물에 얼굴을 씻으니 손과 귀가 얼얼하고 더위가 한순간에 싹 가신다.
“연중 스키를 탑니다. 7∼8월에는 ’수영복 스키대회’도 열려서 많은 사람들이 즐깁니다.”
올가씨의 설명 그대로 정말 눈밭에는 수영복 차림의 일가족이 눈에 띄었다. 일반 러시아 등산객들도 일광욕 때문에 웃옷을 모두 벗고 있었지만 한국인들은 강한 자외선과 모기떼 때문에 몇 겹을 겹쳐 입은 모습이 극명한 대조를 이뤘다.
정상의 분화구까지 걸으면 4시간이 걸릴 텐데 시간 제약 때문에 낙타봉에서 아쉽게 하산할 수밖에 없었다. 항구 인근 공항에서 헬기를 타면 분화구까지 데려다 주는 여행상품도 있다고 한다. 올가씨는 “캄차카에는 화학성분이 다른 200개에 달하는 온천이 있다”고 자랑했다.
만년설과 유황의 몽환적인 조화, 그리고 노천온천에서의 휴식. 캄차카에서 즐길 수 있는 때 묻지 않은 자연일 것이다.
캄차카는 마지막까지 탄성을 자아내게 했다. 그것은 백야였다. 귀선한 뒤 선상에서 바라본 캄차카는 늦은 밤이 되어서도 환하게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헤어짐이 아쉬운 듯, 오랫동안 작별의 손짓을 하는 것처럼.
<부산일보 제공>
/글·사진=김승일기자 dojune@busanilbo.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