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여행문화가 바뀌고 있다. 그동안 한국인의 외국 여행은 미주나 유럽의 관광지를 돌아보는 패키지관광이 대부분이었으나 최근 지구촌 오지여행이 새로운 트렌드로 자리잡아 가고 있다.
산악인들의 전유물이었던 히말라야(Himalaya) 거봉 베이스캠프에도 2∼3년 전부터 동호회나 직장 동료, 가족 단위의 트레커(Trekker)들이 대거 몰리고 있다. 8,000m급 14좌 가운데 한국인들이 가장 선호하는 코스는 안나푸르나(Annapurna:8,091m) 트레킹. 거칠고 황량하기 그지없는 여느 자이언트봉과 다르게 지천으로 피어난 야생화와 하늘에 닿을 듯 늘어선 다랑이논, 산간 부족들의 생활모습을 가까이서 체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안나푸르나 트레킹 체험기를 세 차례에 걸쳐 연재한다.

지난 10일부터 16일까지 1주일동안 네팔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약칭 A.B.C:4,130m) 트레킹 도중 만난 20개 팀 가운데 한국인 그룹은 70%인 14개 팀에 달했다. 특히 프랑스나 노르웨이 등 다른 나라 트레커들은 혼자이거나 연인 또는 가족 2∼4명씩 짝을 지어 산행에 나선 반면 한국인들은 10명 이상 팀을 이룬 경우가 많아 인원수로는 100명에 육박, 전체의 90%를 웃돌았다. 몬순(Monsoon)이 지난 9∼11월이 본격적인 탐방시즌인 것을 감안하면 엄청난 숫자다.
광주YMCA 초·중학생 회원 7명은 지도자 2명과 함께 9일부터 12일간의 일정으로 네팔을 찾아 비교적 코스가 짧은 대신 전망이 좋은 푼힐(Poon Hill, 3,210m)에 올라 안나푸르나 산군의 장엄한 파노라마를 만끽했다. 대부분 부모의 권유로 방학을 이용해 히말라야 탐방에 나선 이들은 대자연 속에서 호연지기(浩然之氣)를 키우고 산악 문화를 체험했다.
순천지역 의사와 교수, 생물학자, 교사, 화가 등으로 구성된 ‘자연과 삶을 생각하는 안나푸르나 트레킹단’ 21명은 9일부터 27일까지 두 팀으로 나눠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를 찾았다. 교육공동체 등을 통해 연대활동을 펼쳐온 이들은 이번 트레킹을 통해 더욱 끈끈한 유대감을 다졌다.
부모와 중학생 누나와 함께 4박5일만에 A.B.C에 오른 초등학교 4학년 전찬우(10)군은 “고소증세로 힘들었지만 막상 베이스캠프에 올라 히말라야를 직접 보니 너무 좋다”고 소감을 밝혔으며, 전군의 어머니는 “아이들에게 강요하다시피 해서 이 곳까지 왔는데 잘 견뎌줘서 감사한다”고 뿌듯해했다. 이들은 인도와 홍콩을 포함 5개월째 동남아를 여행 중이다.
전주에 사는 김모(61)씨는 친구의 회갑을 기념해 3명과 함께 12일동안 고라파니∼푼힐∼A.B.C∼나야폴에 이르는 긴 코스를 소화했다. 이밖에 서울지역 대학생 동아리 회원 10명과 부산의 동호인 모임 12명 등도 팀을 이뤄 트레킹에 나섰다.
부산의 40대 여성 3명은 가이드와 포터도 없이 7박8일의 트레킹 일정을 소화했으며 홀로 탐방에 나선 트레커들도 더러 눈에 띄었다.
이들은 A.B.C 롯지 벽에 마련된 게시판에 ‘오랜 고생 끝에 신들의 영역에 발을 내딛은’ 감동과 ‘마침내 해냈다’는 성취감을 저마다 짧은 글로 표시했다.
40대 교사인 최혜란씨는 “대자연 앞에 더욱 겸손해지며 이 곳에 발을 딛게 해준 히말라야의 신에게 감사한다”고 적었다.
/글·사진 네팔 안나푸르나=정후식기자 wh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