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97년 3월 4일 삼도수군통제사 이순신이 투옥된 이후 전란은 더욱 치열해져 갔다. 신임 삼도수군통제사 원균이 이끄는 조선 수군은 7월 중순 칠천량의 해전에서 참담한 참패를 당하여 조선은 다시금 최악의 위기상황을 맞게 되었다. 칠천량 해전의 참배를 보고 받은 선조는 병조판서 이항복 등의 건의를 받아들여 8월 3일에 이순신을 3도수군통제사로 전격 재임명하여, 전란을 수습하도록 하였다.
어명을 받은 이순신은 곧바로 군관 9명과 군사 6명만을 대동하고서 출발하여 8월 8일에 순천에 당도하였다. 순천에서 정예병 60여명을 모아 무장시키고, 14일에 이웃 고을인 보성에 이르러 120명으로 전력을 보강하였다. 그리고 18일에 장흥 회령포(會寧浦, 지금의 장흥군 대덕읍 회진)에 이르러 9척의 전함을 수습하고, 여기에서 선편으로 해남반도를 돌아 29일에 진도의 벽파진에 이르러 전라우수사 김억추(金億秋)에게 명하여 전선을 수습 정비케 하여 3척의 전함을 보태어 도합 12척의 전함을 거느리게 되었다. 여기에 가까운 고을에서 많은 사람들이 100여 척의 피난선을 이끌고 이순신에게 운집하여 전력 보강에 도움을 주었다.
칠천량 해전으로 조선의 수군을 거의 붕괴시킨 것으로 판단한 일본군은, 우선 육로로 이전 임진왜란 때엔 전혀 발을 들여놓지 못했던 전라도 점령에 전력투구하여, 전라도의 최고 요충지인 남원 공략에 공을 기울였다. 덕분에 해상 진출을 위한 일본 수군의 움직임은 비교적 늦은 8월 하순부터 시작되었다. 일본군이 호남 점령을 위해 육전에 전념하느라 해상 공략을 비교적 소홀히 했던 것이다. 이는 이순신이 진도에서 전라도의 수군을 모아 재정비할 수 있는 여유를 가질 수 있게 한 요인이 되었다.
일본군이 남해안 일대를 침범하고 서해로 진출하기 위한 본격적인 공세를 취하기 시작한 것은 9월 중순이었다. 이 때 일본선 200여 척이 해남 어란포에 당도했다는 보고가 들어오자, 이순신은 9월 15일에 벽파진에 설치한 진(鎭)을 우수영으로 옮기고, 명량(울돌목)의 급조류를 활용한 작전 구상에 들어갔다. 과연 9월 16일 아침에 133척의 왜선은 어란포를 떠나 순조(順潮)의 흐름을 타고 명량을 향해 맹렬하게 돌진해 왔다. 기회를 엿보던 조선 수군은 순조가 역조(逆潮)로 바뀌면서 물살이 소용돌이를 일으키는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총공격을 감행하여 순식간에 30여 척을 침몰시키는 승리를 이끌어냈다. 이것이 유명한 명량해전이다.
명량해전은 이순신이 ‘천행(天幸)’이라 표현했듯이 절대적 열세를 극복하고 승리를 거둔 기적의 해전이었으며, 풍전등화 꺼져가던 조선의 불씨를 살려낸 구국의 해전이었다. 우리의 해전사상 가장 드라마틱한 전투로 기록될 것이었다.
<끝> /강봉룡 목포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