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이칠선(東夷七仙)이 백두대간 영산의 산신이 된 것을 기념해 봉래산(지리산) 산신이 각 산신들을 초대하였다. 이 때 한라산 산신도 초대되어 보길도 앞을 지나가는데, 뾰쪽산(甫竹山·197m)이 마치 대나무 하나를 세워놓은 것처럼 기묘하여 그 위에 내려가서 살펴본즉, 남으로는 추자도와 제주도가 코앞에 있고, 북으로는 기치창검과 화개(華蓋)를 높이 세운 달마산이 내조(來朝)하여 장관을 이루었다.
혼자 보기에 너무 아까워 월출산 산신을 불러 함께 놀다가 지리산 산신의 초대마저 망각속에 지워버리고 바둑으로 해를 넘기고 밤이면 망월봉에 올라 달을 희롱하면서 살다가 옥황상제의 부름으로 그 곳을 떠나게 되었다. 이 때 인간에게 줄 선물로 보길도에 사람이 쓸 수 있는 대혈로 10대 길지를 만들고 섬 이름을 작혈의 이치를 따라 보길이라 부르게 하였다고 한다.
먼저 가장 큰 혈로는 역시 뾰쪽산에 신선이 하늘로 올라간다는 뜻의 노선상천형(老仙上天形)이 있는데 제주도 한라산이 안산이다. 그 뒤편에는 옥등괘벽(玉燈卦璧)처럼 생긴 선인망월형(仙人望月形)이 있고, 보옥리 뒷산에 신선이 목에 푸른 옥을 걸고 있는 모습의 선인패옥형(仙人佩玉形)이 석중토혈(石中土穴)로 맺었다.
그 오른쪽에 선인대좌형(仙人大坐形)은 간좌곤향으로 혈이 배꼽에 맺었는데 한결같이 무관의 제왕으로 동방을 호령할 수 있는 준걸이 태어날 땅이다. 또 선창리 바닷가에 소위 바다 게가 구슬을 가지고 노는 형상의 해와농주형(蟹臥弄珠形)이 삼태안(三台案)을 하고 있는데 이를 얻어 쓸 경우 온 세상을 흔드는 성악가가 태어나 그 이름을 만세에 빛낼 것이다.
예부터 작은 명당이 많기로 소문난 정자리에는 집을 짓고 살만한 집터가 많이 있으며, 솔 섬에는 물을 피해 작지만 금쪽같은 음택 하나가 숨어있다. 숙구산에는 늙은 개 한마리가 앞쪽의 ‘호랑이가 죽어서 바위가 되었다’는 소위 사호암(死虎岩)을 살피다가 고개를 남쪽으로 돌리고 이내 잠이 들어버린 형국의 면구형(眠狗形)이 산정에 혈이 맺혀 있다. 이 곳은 만석꾼의 부자가 되고 그 다음에 권력을 얻게 되는, 소위 선부후귀(先富後貴)하는 땅이다.
고산 윤선도의 유적지인 세연정안에는 엎드린 용이 물장구를 치고 노는 형상에 임좌병향(壬坐丙向)의 복룡희수형이 아직까지 살아있다. 특히 장사도(長蛇島)가 수구나성(水口羅星)으로 혈을 옹위하고 있어서 동서로 열린 일중시(日中示)와 함께 명당의 화려함을 더해주는 곳이다.
부용리에 있는 화심형은 마치 활짝 핀 꽃잎속의 씨방에 앉아 있는 것처럼 평안하고 사방에 펄럭이는 꽃잎이 화려하기 그지없다. 탐랑(貪狼), 낙맥(落脈)의 유두혈(乳頭穴)을 사신팔장(四神八將)이 정위치에서 혈궁을 지키고 있으니 소위 사대부혈이다.
따라서 이곳은 아무나 쓸 수 있는 땅이 아니며 평소에 크게 덕을 베푼 학자나 고위 관료가 들어가야 하며, 일반 소시민이 들어가면 용상팔살(龍上八煞)과는 상관없이 발복을 못하는 땅이다. 그러나 제 임자가 들어가면 장관 정도의 관료는 대대로 끊이지 않고 나올 수 있는 대 명당이다.
예송리 너머 예작도앞에 ‘애닯기미’라는 곳이 있다. 조선 중기 해남이 낳은 국풍 이의신(李懿信)이 인간지보화(人間之寶華)로 알려진 보길도의 10대혈을 찾으러 갔을 때 예송리 앞에서 ‘만약에 이곳이 예작도와 연결이 되었으면 천하의 대 명당이 되었을 텐데 애석하다’라고 탄식을 하면서 돌아갔다고 해서 생긴 지명이다.
이상이 보길도의 10대 혈로 일컬어지는 대 명당들이지만 아직까지 단 한곳도 묘를 쓴 곳은 없다. 이를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는 알 길이 없다.
다만 바다 가운데에 웅장한 기상으로 힘차게 솟아있으면서도 야위지 않고, 기기묘묘하면서도 후덕하여 풍만하기 그지없는 산세가 서로 어우러지면서 생성해 내는 그 맑고 따뜻한 기운과 보석처럼 교취하는 풍광에 보는 사람의 넋이 황홀해지는 땅, 보길도는 명당중의 명당임에 틀림없다.
/전종주 호남대 교수·한국 풍수지리학회 학술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