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老人)이라는 말에는 부정의 의미가 더 짙다. 생물학적 노화뿐만 아니라 사회적, 경제적 쇠퇴기로 의존적이고 무용한 존재를 뜻하기도 한다. 차별과 비하의 대상이 되어버린 ‘노인’에 대한 부정적인 통념 탓에 노인 대신 ‘어르신’이라는 말이 대용어로 흔히 사용된다. 그러나 대부분의 노인들은 불편함을 내색한다. 나이가 들었기 때문에 그것만으로 존중받을 만하다는 식의 표현을 내켜 하지 않는 것이다.

어르신이라는 말에는 암묵적 연령주의(implicit ageism)가 내포되어 있다. 일방적인 돌봄의 대상으로 간주하려는 사회적 태도가 역력하다. 우리는 노인을 ‘어르신’이라는 특수한 계층으로 치부하며 공동체 안에서 밀어내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볼 일이다.

2020년 통계청 분석에 따르면 2026년 우리나라 전체 인구의 약 20.8%가 65세 노인층으로 초고령화 사회 진입을 눈앞에 두고 있다고 발표했다. 이렇듯 초고령사회를 목전에 두고 있는 지금 1000만 명 노인들의 존재론적 의미와 새로운 사회적 역할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 볼 때인 듯하다.

‘선배 수업’(서해문집)에서 작가는 인생 2막에 들어선 ‘먼저 살아온 사람’ 즉 노인을 가리키는 말로 ‘선배 시민’을 제안했다. 적절한 표현이다. 미국에서도 나이 든 시민을 상급 시민(senior citizen)이라고 부르지 않는가.

아직은 생소한 ‘선배 시민’이라는 명칭은 특별한 사회적 의미와 가치를 지닌다. 노인을 단순히 복지 재정을 소비하는 복지 대상자로 취급하는 것이 아니라 마을의 원로이자, 존엄한 가장으로 경륜과 지혜를 지역사회에 환원할 수 있는 역량을 가진 존재로 인정한다는 것이다. 단순한 돌봄의 대상에서 벗어나, 시대를 함께 살아가며 더 나은 공동체를 꿈꾸고, 마을의 100년 후를 설계하는 진정한 어른으로 세상의 중심에 우뚝 세운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짐스러운 존재, 돌봄의 대상, 블랙 컨슈머(Black Consumer)로 노인을 인식하지 않고, 지난 70~80년 동안 쌓아온 통찰과 혜안을 지역사회와 후세대의 미래를 위해 새로운 길을 열어주는 공익적 시민으로서 역할을 부여해야 하지 않을까? 시민으로 당당하게 늙어가는 사회를 위한 ‘새로운 노인상’을 정립하는데 사회적 노력이 필요한 때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선배 시민과 후배 시민이 명확한 지향을 가지고 신(新)노년의 새로운 역할에 대한 발전적 담론의 장을 열어야 할 것이다.

즉 광주·전남 지역을 하나로 묶어 노인복지관, 대한노인지회, 복지재단, 사회서비스원, 50+센터 그밖에 노인 복지 주체들이 연대하고, 학습하며, 새로운 정책을 만들어 낼 수 있는 구조를 마련해야 한다. (가칭)‘광주·전남 선배 시민 커뮤니티센터’를 설립하여 선배 시민 정책 수립의 구심점 역할을 할 수 있게 하는 것도 바림직한 일일 것이다. 또한 노인복지관을 커뮤니티센터로 기능과 역할을 재정비하여 선배 시민들이 지역사회 현안을 공유하고 해결 방안을 모색하는 플랫폼으로 활용되어야 할 것이다.

미증유의 초고령사회가 도래하고 있다. 고령화라는 급류에 휘말리지 않기 위해서는 우리 사회의 뿌리인 ‘노인’에 대한 올바른 존재론적 인식과 사회적 역할 부여가 진지하게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선배 시민’(마북)의 저자는 선배 시민이란 시민권이 당연한 권리임을 자각하고 이를 당당하게 누리며 공동체에 참여하여 자신은 물론 후배 시민과 함께 목소리를 내는 존재라고 정의했다. 노인이 선배 시민으로 거듭나 자기 목소리로 공동체에 참여하는 시민이 될 때, 자기 존재에 대한 정체성을 가질 수 있고 근본적으로는 사회적 위험으로부터 모두가 안전한 공동체를 이룰 수 있다는 뜻일 것이다.

‘100세 시대’다. 하지만 늘어난 평균 수명과 달리 60세가 넘으면 ‘잉여’로 취급하는 혐로(嫌老) 사회는 여전하다. 노인에 대한 인식을 ‘선배 시민’이라는 주체적 존재로 변화시키고, 개인을 넘어 공동체에 기여하는 ‘선배 시민’의 의미를 알리는 역할은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 사회 구성원 모두의 몫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