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내 먹먹하던 가슴과 붉은 눈시울이 급기야 터졌다. 뤼순 감옥에서 사형수로 죽음을 앞둔 안중근 의사가 자신을 선생님으로 모시겠다는 간수에게 다음과 같이 말하는 순간부터였다.

“나의 꿈은 고향 마을에서 평화롭고 아름답게 늙어가고 싶었는데, 이제 그 꿈을 이룰 수가 없게 되었네” 서른한 살의 나이에 생을 마감하는 안중근 의사가 말하는 순간, 쉰한 살을 살고 있는 나는 눈물이 쏟아졌다.

우리나라 사람 대부분이 독립운동가 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안중근 의사도 실은 평범하게 살아가고 싶은 인간이었겠구나…. 늘 강건한 독립운동가로만 생각했던 인물을 한 인간으로 생각해 볼 수 있게 하는 것, 그리고 나의 삶과 연결시켜 보고, 나는 이 사회와 국가에서 인간으로서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다시 한 번 생각해보게 하는 것…. 바로 이것이 문화 예술의 힘이라는 것을 깨닫게 하는 순간이었다.

안중근 의사의 하얼빈 의거 110주년을 맞이하는 2019년, 광주 교육 가족의 날-희망 스쿨 데이 ‘공연장 가는 날’ 행사로 우리 학교 역사 선생님, 역사 동아리 학생들과 뮤지컬 ‘영웅’을 관람하였다. 안 의사를 역사책으로 알고, 하얼빈 역에 가서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 역사의 현장에 직접 서 보기도 하고, 블라디보스톡 크라스키노 단지 동맹비 앞에 서서 그 강인한 뜻을 느껴보기도 하고, 안 의사의 어머니가 아들에게 쓴 편지를 읽고 눈물을 흘리기도 하였지만, 뮤지컬로 보는 감동은 새롭고 전혀 다른 느낌이었다.

추격 장면과 열차 신(scene)과 같은 뛰어난 무대 연출과 수준 높은 배우들의 열연, 폐부를 찌르는 듯한 노래와 힘찬 춤 등을 보면서 느끼는 이 감동을 보다 많은 학생과 교직원들이 느낄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과 함께 내가 먼저 그 기회를 누린 것이 많은 이들에게 미안하였다.

뮤지컬 ‘영웅’은 1909년 10월 26일 중국 하얼빈 역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암살한 민족 영웅 안중근 의사의 일대기를 그린 작품으로 러시아 연해주 자작나무 숲 단지 동맹부터 사형 집행에 이르기까지 숨 막히는 전개를 보여준다. 2009년 초연되었고, 올해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이하여 10주년 기념 공연으로 진행되고 있는 영웅은 ‘명성 황후’와 함께 우리나라 창작 뮤지컬 최고의 명작이라 할 만하다.

우리가 이렇게 의미 깊고 수준 높은 뮤지컬을 볼 수 있게 된 것은 그동안 기부 형태로 진행되어 왔던 ‘공연장 가는 날’ 행사를 광주시교육청이 직접 예산을 편성하여 지원한 덕분이다. 앞으로 예산 지원을 늘려 보다 많은 학생과 선생님들이 이런 좋은 공연을 보고 감동을 나누었으면 하는 바람이 크다.

잠시도 가만히 있지 못하는 중2 남학생들도 거의 세 시간이나 진행된 뮤지컬 공연에 완전히 몰입했고, 재미를 느꼈고, 얼굴이 상기되어서 공연장을 나섰다. 문화예술회관의 선선한 바람에 열기를 식히며 우리는 서로의 소감을 이야기 했다. 안중근 의사의 영웅적인 삶 자체가 감동적이기도 하지만, 연기, 노래, 춤, 무대 연출 등 종합 예술로서의 뮤지컬에 큰 매력을 느꼈다는 학생, 주말에 선생님과 함께 공연장을 오게 된 것 자체가 즐겁다는 학생, 역사 수업에 뮤지컬을 어떻게 활용할 수 있을지를 고민해 본다는 역사 선생님 등 우리는 각자의 위치와 수준에서 느꼈고, 생각하고, 나누었다.

학생들에게 고등학교에 가면 교육청에서 주관하는 중국 항일 유적지 답사가 있다고 귀띔해 주고, 역사 선생님에게는 광주교육연수원에서 교사 대상으로 매년 추진하는 해외 항일 독립운동 유적지 탐방을 적극 추천하였다.

6·25와 5·18을 구분하지 못해 아빠에게 혼나고 한겨울에 집 밖으로 쫓겨난 적이 있다는 한 남학생에게, 오늘은 아빠에게 안중근 의사에 대해 자신 있게 설명해드리라고 말하며 발길을 돌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