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 기다리지 않은 5월, 아니 차라리 오지 말았으면 하는 5월이 익어 간다. 어린이에겐 희망, 어버이에겐 효성을 바치는 기쁨과 환희의 달, 그야말로 찬란한 5월이다. 그러나 장미보다 붉게 물든 봄을 기다리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 5월 당사자들과 애국 시민들이다. 양식 있는 사람들은 80년 그날에 함께하지 못했다는 죄책감에 5월이 되면 5월 증후군을 앓는다. 학업에 전념해야 할 학생들, 평범한 시민들을 길거리로 뛰쳐나오게 한, 천형의 땅을 엄습한 80년의 광풍. 군홧발에 짓뭉개진 그날의 악몽과 주먹밥 공동체의 환희를 어찌 잊을 수 있으랴!

평범하게 살고 싶었던 필자도 온 가정이 풍비박산이 났다. 필자가 부상당하고, 남동생이 연행당하고, 어머니는 실성하고, 여동생은 유가족과 결혼하여 죽고…. 어디 필자만의 상처인가? 헌혈하던 금희, 목욕하던 광범이, 말 못하던 경철이, 27일 새벽을 밝히던 종필이, 가슴이 잘리고 수많은 총알을 맞아야 했던 그녀 …. 슬픔과 분노, 아니 기가 막혀 차마 눈물마저 흘릴 수 없었던, 하나님도 부처님도 외면해 버린 그날이었다. 진실은 암매장당한 채 39년의 세월이 떠났다. 그러나 행여 행방불명이 된 자식이 돌아올까 봐, 이사도 안 간 채 대문을 열어 놓고 기다리는 어머니의 애환이 있고, 구 전남도청의 원형 보존을 외치는 광주 시민들의 함성이 푸르른 하늘에 메아리치는 한, 광주의 5월은 아직도 겨울 공화국에 얼어 있다.

2019년 5월 18일. 5·18 민주화운동 39주년 기념식장. 80년 5월 27일 새벽, 번뇌하는 시민들에게 “시민 여러분, 지금 계엄군이 쳐들어오고 있습니다. 여러분의 아들딸들이 죽어가고 있습니다. 어서 빨리 도청으로 와 주십시오. 민주주의를 지켜 주십시오”라고 절규했던 박영순 여사가 등장하여 그날을 회상케 했다. 또한 고등학교 1학년으로서 5월 27일 마지막 새벽을 지키다 산화한 안종필 열사의 조카가 “삼촌이 이루고자 하는 세상을 꼭 이루겠다”는 결의를 하여 숙연해졌다.

문재인 대통령은 “5월 영령과 광주 시민에게 죄송하다. 부끄럽다”면서 한동안 말을 잇지 못하고 울먹였다. 39년 전에 광주와 함께하지 못했다는 고백에 진정성이 묻어 있었다. 대통령도 울고, 역사도 울고, 참석자도 울어 버렸다. 80년 5월에 침묵한 하나님과 부처님도 울지 않았을까?

5·18을 왜곡 폄훼한 의원들을 징계하고 광주를 방문하라는 요구를 묵살하고, 올해 기념식에는 한국당의 황교안 대표가 참여했다. 계란이라도 맞아서 화제의 주인공이 되고 싶었을 줄 모르나, 시민들이 현명하게 대처하는 바람에 ‘광주의 꿈’도 포기한 채 분향도 하지 못하고 떠났다.

한국당 대표와 의원들이 물러난 광주를 채운 사람들은 누구였을까? 바로 태극기 부대였다. 그들은 80년 5월의 공수부대, 아니 점령군처럼 시내를 활보하며 구호를 외쳤다. 광주 시민들에겐 발포 명령과 기총소사로 들렸을 것인데, 그들은 그들의 문화를 향유하며 광주를 할퀴고 쓰나미처럼 지나갔다. 그분들도 분단된 조국의 희생양이다. 그래서 살아있다는 게 고통스럽다.

법적으로도 역사적으로도 검증된 5월 광주에 대한 매도가 횡행하고 있어 안타깝다. 광주는 그래서 지금도 너무 슬프다. 지역 감정과 역사 왜곡을 부추겨서 이익을 추구하는 사람은 누구인가? 또한 우리 역시 5월에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살아가고 있는가? 40주년인 2020년 전까지는 철저한 진상 규명이 이루어져 불면의 역사를 잠들게 해야 한다. 그게 바로 살아 남은 자의 의무 아닌가? 그래서 묻는다. “우리는 역사에 빚진 사람인가 빛을 낸 사람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