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프랑스 지리학자인 발레리 줄레조의 ‘서울, 거대한 도시, 빛나는 도시’ 가 ‘아파트 공화국’으로 번역된 이후, ‘아파트 공화국’은 지금까지도 대한민국의 주택 문제를 상징하는 함축적 용어로 활용되고 있다. 2017년 국토교통부 발표 자료에 의하면 광주광역시 아파트 비율은 64.7%로 전국에서 가장 높은 수준이다. 이러한 지표가 말해주듯 최근 광주시 아파트 사업은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아파트 공급을 통해 주택 시장 안정화라는 순기능이 작동하였지만, 동시에 무등산 조망권 저해, 상업 지역 내 고층형 준주택 건설 공급, 주거 정비 사업에 따른 세입자 문제 등 다양한 갈등 구조 표출은 현재 진행형이다.

아파트 공화국은 삭막한 도시 경관 연출, 삶과 주거 양식의 획일화, 투기(?) 수단으로 전락한 주택 양산, 주변 환경과 상충되는 난개발 확산, 아파트 면적으로 구분하는 사회 세태라는 측면에서 비판을 받아왔다. 비판의 근원으로 아파트 자체가 문제라는 관념이 지배적이지만, ‘아파트 단지’를 원인으로 전환하면 다른 측면에서 갈등 구조 해결의 실마리를 유추할 수 있을 것이다.

‘아파트 불패’라는 다소 선정적이고 예언적인 통념에는 그만큼 두터운 수요층이 존재하고 있다는 반증이다. 왜 주민들은 아파트에 대한 수요가 높은 것일까? 아파트에 대한 높은 수요는 역설적으로 기성 시가지의 열악한 도시 및 주거 환경에 기인한다. 협소한 도로, 공원·녹지 공간의 이용 제약, 이웃 간 갈등 요소인 주차 전쟁 등이 일반 주거 지역의 현주소다. 반면 아파트 단지에 진입하면 놀이터·공원·체력 단련 센터 등 편리한 공공 공간, 일정 규모 이상의 주차 공간과 개방감, 24시간 가동되는 안전 시스템을 경험할 수 있다. 아파트 단지는 도시 주거 환경이 삭막한 사막에서 양호한 주거 서비스를 개인 비용으로 지불하고 이용하는 오아시스라고 볼 수 있다.

서구 국가들은 2차 세계대전 이후에 전후 복구 사업을 통해 주거지와 연계하는 공공 시설을 확보하고 마을 내 다양한 커뮤니티 시설을 공급하는 재정 확대 정책을 추진하였다. 그 결과 마을 내 커뮤니티 시설을 바탕으로 양호한 주거 환경이 지속적으로 공급되는 가성비 높은 사회 기반이 구축되었다.

그러나 우리는 국토 인프라를 구축하고 수출 중심의 압축 성장 정책을 추진하였으므로 마을 단위의 주거 환경을 개선하고 정비하는 사업들은 후순위 정책이 되었다. 공공은 아파트라는 주택 상품을 통해 시민의 주거 서비스 수요를 개인들이 시장에서 매매토록 하는 정책을 장려하였다. 주민들이 당연히 누려야 할 여가, 휴식, 체육 서비스 등에 대한 공공 지원 정책은 미흡했다.

따라서 기성 시가지 내에 아파트 단지와 같은 주거 환경 서비스를 얼마나 효율적으로 공급할 수 있느냐가 아파트 문제 해결의 근본적인 처방일 것이다. 고층의 아파트를 건설할 수 있도록 용도 지역을 전환할 경우, 신규 아파트 단지가 마을의 커뮤니티 시설이 될 수 있도록 개방하고 교류하는 것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 단지 주변 담장을 지양하고 주차장 일부를 마을과 공유하는 방법 등을 포함해서 말이다. 그리고 기성 시가지 내 보석 같은 공간인 학교 시설과 아파트 단지의 커뮤니티 시설은 교류와 소통, 효율적 관리라는 관점에서 마을과 협력하고 연대할 수 있도록 법 제도적 측면에서 뒷받침되어야 할 것이다. 여기에는 당연히 교육권 확보와 시설 안전성을 감안한 내용이 검토되어야 한다.

결국 아파트 선호의 수요를 다른 주택 유형으로 전환하기 위해서는 도시 환경의 개선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이런 차원에서 생활 밀착형 SOC(사회 간접 자본) 사업은 마을의 주거 환경을 개선하고 아파트 단지와 같은 기능들을 기존 마을에 도입하는 차원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 아파트 단지와 같은 자족적인 기능이 마을에서 구현되기 위해서는 도시 공간에 대한 적극적인 투자, 주민 편의 시설의 지속적인 확충 그리고 시민의 자율적인 도시공간 관리에 보다 많은 재정 투입이 이뤄져야 할 것이다. 이러한 과정이 응축되어 사회 트렌드와 조응할 때 우리 도시와 마을들은 ‘단지 공화국’ 에서 비로소 탈피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