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반지의 제왕’에서 거대한 탑의 불타는 눈으로 형상화된 ‘사우론’은 땅의 구석구석을 내다볼 수 있고, 만물을 꿰뚫어 볼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땅의 중심에 우뚝 서서 모든 것을 알 수 있는 절대적인 존재와 같은 ‘사우론의 눈’이 보성에도 있다.

보성에 가면 광활한 농경지 한가운데 지상부터 300m 높이까지 촘촘하게 우리나라 대기를 관측하는 ‘종합기상관측탑’(이하 종합기상탑)을 볼 수 있다. 이 종합기상탑은 높이 307m로 63빌딩(249m)보다 높고, 에펠탑(324m)보다 약간 낮으며, 아시아에서는 두 번째로 높다.

종합기상탑이 이렇게 높은 이유는 무엇일까? 온도와 습도, 바람 등 대기 환경이 높이에 따라 어떻게 변하는지를 알아야 집중 호우 등 위험 기상을 이해하고 예측할 수 있기 때문이다. 기존의 기상 관측 장비는 주로 지상만 관측하므로 위험 기상 발생 원인을 파악하기에는 부족하였다. 종합기상탑은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지상부터 최고 300m까지 11개 층에서 1분 간격으로 기상 관측 자료를 생산한다. 이 자료는 국지적으로 발생하는 위험 기상 원인 연구에 중요하게 활용되고 있다.

종합기상탑은 삼각형 구조의 철탑으로 둘레는 12m이며, 총 중량은 670t으로 세 방향의 지선으로 지지되고 있다. 기어식 엘리베이터를 갖추었고, 규모 7.0의 지진과 72.5㎧의 풍속에도 견디게 설계되었다. 74개의 관측 장비가 설치되어 바람, 기온, 습도, 온실 가스 농도 등 기상·기후 요소를 관측할 수 있다. 관측 자료를 활용하여 대기 특성 분석 등의 연구를 수행 중인데, 특히 해륙풍, 서리, 집중 호우, 안개 등 국지적인 기상 현상을 정량적으로 분석함으로써 기상 예측 기술 개발에 기여하고 있다.

종합기상탑에서 관측된 자료를 활용하여 보성 지역의 온도 특성을 분석하였다.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것과 같이 최고 온도는 지상 부근에서 나타났고, 높이 올라갈수록 온도가 낮게 관측되었다. 그러나 봄과 가을에는 지상이 아닌 중간 고도(약 100m)에서 최고 온도가 나타났다. 풍속도 여름과 가을, 겨울에는 높은 고도에서 강하게 관측되었으나, 특징적으로 봄철에는 60~180m 사이에서 높은 값이 관측되는 특징을 보였다. 이런 보성 지역의 기상학적 특성은 보성이 해안가에 위치하여 해륙풍을 영향을 강하게 받기 때문인 것으로 추정된다. 국립기상과학원은 보성 표준관측소에서의 지속적인 관측과 연구를 통해 해안 지역의 기상학적 특성을 밝혀나갈 예정이다.

종합기상탑을 보유한 보성은 기상 관측의 정확도 향상과 관측 기술의 표준화를 위해 세계기상기구(WMO)에서 정한 표준기상관측소로 지정되었다. 보성 표준기상관측소는 우리나라 관측 장소 중 규모가 가장 크며(약 15만 4000㎡) 세계기상기구 측기 및 관측법 위원회의 시험 관측소(Testbed)로도 지정되어 운영 중이다.

넓은 간척지에 조성된 보성 표준기상관측소는 드론 관측 실험 수행을 위한 최적지이다. 특히 종합기상탑 관측 자료를 이용하면 기상 관측 드론의 성능을 검증할 수 있다. 우리나라는 3면이 바다이고 산악 지역이 많아 상대적으로 기상 관측의 사각 지역이 많은 편인데, 보성 표준관측소에서 검증된 기상 관측 드론을 활용하면 이러한 관측의 공백을 해소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이외에도 보성 표준기상관측소는 최적화된 관측 환경과 기준 관측 장비를 갖추고 국산 기상 장비의 성능 개선과 개발을 위한 실험을 지원하고 있다. 국내에서 개발된 강우량 측정기에 대한 실험을 진행하였으며, 현재는 안개를 관측하는 시정계의 성능 평가를 수행하고 있다.

기상 예보는 현재와 과거의 정보를 가지고 미래를 예측하는 일이다. 그래서 현재 기상 상황의 감시와 관측은 매우 중요하다. 보성 표준기상관측소는 종합기상탑을 기반으로 한 다양한 관측 장비의 검증 및 표준 관측 기술 개발, 관측 자료를 이용한 국지 기상 현상의 이해를 통해 기상 예보의 정확도를 높이는데 기여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