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복군 출신으로 박정희 정권과 맞서 싸웠던 장준하 선생은 “모든 통일은 선(善)”이라고 말했다. 우리 민족이 안고 있는 수많은 문제의 원인이 분단에 있다는 인식에 기초한 말이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모든’이라는 표현은 이제 수정해야 한다. ‘모든’ 통일이 선이 아니라 ‘평화롭고 번영하는’ 통일이 선이라고 바꿔야 한다.

분단 체제를 끝내고 남과 북이 새롭게 하나의 나라로 재탄생한다는 것은 과거로 돌아가자는 것이 아니다. 미래로 나아가자는 것이다. 미래는 퇴행일 수 없다. 따라서 통일 한국은 분단 상태인 지금보다 더 평화롭고 잘사는 나라여야 한다. 평화롭고 잘사는 나라는 경제적으로 풍요로우면서 동시에 모든 국민의 삶의 질이 높아지고, 행복을 추구할 수 있는 나라다. 그러기 위해서는 복지가 중요하다. 남과 북의 모든 시민에게 인간으로서 누려야 할 복지 혜택이 골고루 돌아갈 수 있을 때 통일은 의미 있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다행스럽게도 우리나라의 통일은 그런 방향으로 나아갈 것으로 전망된다. 가장 먼저 생각해볼 수 있는 것은 군사 지출을 줄여 생기는 재정을 복지 지출로 돌리는 것이다. 우리나라처럼 분단 상태에서 통일을 이룬 독일은 통일 이후 병력을 절반 정도 줄인 경험이 있다. 마찬가지로 우리나라도 통일을 이룬다면 그렇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복지 재정에 큰 도움이 된다.

그리고 통일은 경제 발전에 굉장히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다. 통일이 되면 미개발 상태인 북한 지역에 대한 사회 간접 자본 건설 붐이 일게 된다. 도로와 철도를 놓아야 하고 통신망을 깔아야 한다. 공항이나 항만도 모두 새로 정비해야 한다. 장기적으로 경제에 큰 활력을 불어넣을 것이다. 뿐만이 아니다. 통일이 되면 8천만 인구의 새로운 내수 시장이 형성된다. 수출 의존도를 낮추고 내수 경제를 일으켜 균형적인 경제 구조를 만들 수 있다. 북한의 천연자원과 우수한 노동력을 활용하는 것 또한 무시할 수 없는 경제적인 이점이다. 일자리 창출은 덤이다. 이러한 경제 발전은 복지의 튼튼한 밑바탕이 될 것이다.

통일은 점진적으로 이뤄질 것이다. 따라서 남과 북의 복지 통합도 정치와 경제, 사회와 문화의 통합에 발 맞춰서 급하지 않게 진행될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지금부터 우리나라의 복지를 통일에 대비해 정비할 필요가 있다.

통일이 되면 3천만 명에 가까운 새로운 복지 수요가 생긴다. 이는 복지 재정에 대한 압박 요인이기도 하지만 군비 축소, 경제 발전 등과 함께 새로운 복지 시스템을 만드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 복지 통합은 남과 북이 진정으로 하나 되는 윤활유 구실을 하게 될 것이다. 그런 경험을 하는 과정에서 통일 한국의 시민들은 지금보다 더 복지에 대한 공감대를 넓히게 될 것이 틀림없다. 그렇다면 통일은 우리나라 복지의 수준을 질과 양 모든 측면에서 한 단계 더 높이게 될 기회 요인이 되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전망은 모두 통일이 평화롭게, 그리고 점진적으로 진행된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통일은 남과 북 시민의 자발적인 의사에 기초에 추진되어야 한다. 그럴 수도 없겠지만 절대 남과 북 시민의 어느 한쪽이라도 반대하는 통일을 추진할 수는 없다. 그리고 급격한 통일 추진이 가져올 폐단과 부작용을 고려해 통일 속도를 조절할 필요가 있다. 그런 점에서 우리나라 현 정부가 정치 통합보다 경제 통합을 앞세우고 있는 것은 매우 적절하다. 먼저 남북 경제 공동체를 구성하고, 공동의 번영이라는 토대 위에 정치적인 통합을 이루는 것이 바람직하다. 여기에다가 한 단계 더 수준 높은 복지의 통합까지 이뤄낸다면 평화롭고 번영하는 통일 한국의 꿈은 더는 꿈으로만 그치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