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가 들었다고 저절로 어른이 되지는 않는다. 어른스럽다는 것은 책임감의 또 다른 말일 것이다. 요즘 세상에는 책임을 회피하고, 철들지 못한 ‘무늬만 어른’이 많다.

오는 11일 개봉하는 영화 ‘미성년’은 그런 어른들과 어른보다 더 어른 같은 열일곱살 여고생들의 이야기를 그린다.

주리(김혜준 분)와 윤아(박세진)는 같은 학교에 다니지만, 공통점은 별로 없다. 주리는 모범생, 윤아는 ‘소문이 안 좋은’ 아이다. 둘의 연결고리는 부모다. 주리 아빠 대원(김윤석)과 윤아 엄마 미희(김소진)는 잘못된 만남을 갖고, 아이까지 만든다.

주리는 엄마 영주(염정아)가 알기 전에 사태를 수습해보려 하지만, 윤아는 주리 엄마에게 이 모든 비밀을 폭로해버린다. 평화로운 가정에 날아든 벼락같은 통보는 감정을 뒤흔들고 일상을 균열 낸다.

스토리라인은 비교적 단순한 편이다. 이야기보다는 캐릭터에 주목한다. 한 사건에 반응하는 다양한 인물들을 입체적으로 담아냈다. 사태의 화근인 대원은 바람 핀 사실이 들통나자 달아나기 바쁘다. 현실 도피형이다. 주리와 윤아가 그를 쫓아가지만, 못 들은 척 허겁지겁 도망간다.

오리 집을 운영하며 딸을 홀로 키워온 미희는 딸이 타박하자 ‘너마저 왜 내 마음을 몰라주냐’며 아이처럼 엉엉 운다. 적반하장 형이다. 누가 엄마인지, 딸인지 헷갈린다.

영주는 겉으로는 울분을 삼키고 평정을 지킨다. 물론 속내는 다르다. 남편과 불륜녀에 대한 원망, 고등학생 딸이 받을 상처에 대한 걱정, 죄책감 사이에서 갈팡질팡한다.

이들뿐만 아니다. 이 영화 속에 등장하는 어른들은 대부분 ‘어른아이’다. 학생 앞에서 다른 학생 험담을 하는 교사, 딸 나이조차 모르고 도박에 빠진 남자, 병원에서 남의 사연을 캐내고 함부로 훈수를 두려다 혼쭐이 난 아주머니까지.

오히려 가장 어른스러운 행동을 하는 이들은 주리와 윤아다. 어른들이 저지른 잘못을 어떻게든 수습하려고, 책임지려 한다. 영화는 미성년자 같은 어른, 어른 같은 미성년자를 통해 어른의 자격을 생각해보게 한다.

군더더기 없이 담백한 톤을 유지하면서도 캐릭터들을 생동감 있게 그려낸 점이 영화의 강점이다.

상황이 심각한데도 웃음이 터져 나오는 코믹한 대목도 많다.

김윤석·염정아·김소진 등 베테랑 배우와 김혜준·박세준 등 신인들 간 연기 호흡도 매끄러운 편이다. 다만 결말 부분은 ‘너무 나간’ 느낌이다.

인물의 심리와 행동을 현실적으로 그려내던 전체적인 톤과도 맞지 않는다. 주제의식의 과잉으로도 비친다.

이 작품은 중견 배우 김윤석의 감독 데뷔작이다. 그는 2014년 창작극 페스티벌에서 젊은 연극인들이 만든 옴니버스 연극을 보고 연출을 결심했다고 한다.

김윤석은 “어른들이 저지른 일을 아이들이 수습하려는 모습 자체가 인상적이었다”면서 “첫 연출영화는 ‘보통’ 눈높이의 평범한 사람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비범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는 “성숙한 성장은 죽는 날까지 노력하고 배려해야지만 유지될 수 있다. 이것은 영원한 테마”라고 강조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