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구 일신중 교감] 교육은 힘들어도 힘 나는 일이다
2019년 03월 26일(화) 00:00 가가
학교는 3월이 가장 바쁜 달이다. 신입생이 들어오고, 진급한 학생들은 새로운 친구들과 반을 이룬다. 바뀐 담임 선생님과 하루하루 생활하면서 조금씩 익숙해지는 시간이다. 1년 중 그 어느 달보다도 3월은 중요한 시기이다. ‘봄철에 비가 잦으면 가을 시어머니 손이 커지고, 곡우(穀雨)에 비가 안 오면 논이 석자 갈라진다’는 속담이 있다. 철에 맞게 비가 내리고, 시기에 맞게 손길이 고루 가야 농사가 잘 된다. 쌀독에서 인심 난다고 했으니 풍년이 되면 시어머니 손길이 후할 수밖에. 학교는 3월 농사가 일 년 농사를 가늠할 정도다. 새로운 마음과 다짐으로 만나게 되는 첫 대면, 첫 몇 마디가 학생에게 미치는 영향은 크다.
미치 엘봄이 쓴 ‘천국에서 만난 다섯 사람’은 주인공 에디를 통해 인간이 살면서 서로에게 어떻게 영향을 끼쳤는지, 생전의 다섯 사람을 천국에서 다시 만나 삶을 역산해보는 줄거리이다. 첫 번째 만난 사내는 운전 중에 야구공을 잡으려고 길에 뛰어든 어린 에디를 피하려다 사고로 죽었다. 에디는 자신 때문에 운전자가 죽었다는 사실을 천국에 오기 전까지는 몰랐다. 두 번째 만난 사람은 전투부대 상관 대위였다. 전쟁 중에 당한 부상으로 평생을 원망으로 살았던 에디는 자신을 비롯한 부하들을 살리고 전사한 대위의 사연을 듣고 ‘희생’이란 꼭 잃어버리는 것만이 아니란 것을 깨닫는다. 무관심과 학대로 미워하며 살았던 아버지와의 관계, 뇌종양으로 일찍 떠나보낸 아내 등의 이야기이다. 사소한 말 한마디, 연관이 없을 것 같은 행동 하나에 타인의 일생이 어떻게 바뀌는지 시공을 넘나들면서 보여준다. 실은 천국까지 갈 것 없이 이승에서도 악연이든 인연이든 한두 가지 결정적인 사연들을 가지고 있지 않는가.
얼마 전에 제자로부터 커피 한잔을 대접받았다. 졸업 후 처음 만났다. K상고 야간 산업체 근로 학급에서 가르친 제자다. 선한 목소리와 호리한 몸매는 그대로였는데 연 수억 매출의 세탁소 사장이었다. 내가 근무하고 있는 일곡지구에서 이름 있는 H세탁소이다. 그동안 객지로 떠다니면서도 잊지 않았다고 했다. 제자는 커피색 같은 고교 시절의 칙칙한 가난을 들려주었다.
세탁 기술을 배우고자 양동, 월산동의 세탁소를 돌아다녔는데 열다섯 번째로 찾아간 세탁소에서 자신을 받아주었다. 고교를 졸업하고 경기도 부천으로 가서는 세탁소 19곳을 찾아가 취업을 부탁했는데 거절당했다. 마지막으로 고향 사람을 만나 취업을 했고 오늘에 이르게 되었다고 했다. 아침 6시부터 밤 10시까지 수선, 세탁, 배달을 하면서 자수성가했는데 자신도 노력했지만 돌아보면 몇 사람의 인덕(人德)이 컸다고 했다. 담임 교사였던 나도 한마디 말 덕분에 그 중 한 명으로 끼게 되었다.
70년대 후반부터 각 시도마다 몇 개 고교에 부설로 만들어진 산업체 특별 학급은 낮에는 직장을 다니고 저녁 6시부터 수업이 진행된 근로 청소년 학급이었다. 광주에서는 전남방직과 일신방직을 다녔던 학생을 빼고는 대부분이 신문 배달을 했고, 자개 공장, 음식 배달, 사환으로 일하는 학생이 몇 있었다. 세탁소에 다니는 학생은 이 제자 한 명이었다. 같은 직장끼리 학생들은 잘 어울려 다니는데 이 제자는 혼자인 것 같고, 세탁소에 다니면서 부끄러워하지 않는 모습이 가상하기도 해서 격려를 해주고 싶었다. 하루는 반 학생들을 앉혀놓고 제자를 일어서게 하였다. 흐릿한 형광 불빛이 학생들의 눈꺼풀에 내려앉는 밤 종례 시간이었다. “우리 대성(제자)이는 세탁소로 출세할 것 같으니 미리 응원의 박수를 보내자.” 뜬금없는 제안에 모두가 뜨거운 박수를 쳤다.
월급이 더 많은 일자리 앞에서도, 육체적으로 덜 힘든 직장의 유혹에서도 그날 들었던 ‘세탁소로 출세할 것이다’란 말을 되뇌면서 버텨냈다고 한다. 무심코 건넨 한마디 말이 한 학생의 평생 농사를 좌우할 수 있다. 이제 제자는 세탁소 운영뿐만 아니라 지역 청소년들을 위한 ‘세탁 기술 교육원’의 꿈도 가지고 있다.
교육 현장이 어렵다. 그렇지만 30여 년 전에 건넨 격려 한마디가 ‘성공한 세탁소’가 되어 찾아왔으니 이럴 때마다 교육은 힘들어도 힘이 나는 일임을 또 깨닫는다.새봄에는 쑥국에 쌀밥을 놓고, 내가 걸어온 교직 생활과 제자가 세탁한 세월을 안주 삼아 소주 한잔 마시기로 했다.
70년대 후반부터 각 시도마다 몇 개 고교에 부설로 만들어진 산업체 특별 학급은 낮에는 직장을 다니고 저녁 6시부터 수업이 진행된 근로 청소년 학급이었다. 광주에서는 전남방직과 일신방직을 다녔던 학생을 빼고는 대부분이 신문 배달을 했고, 자개 공장, 음식 배달, 사환으로 일하는 학생이 몇 있었다. 세탁소에 다니는 학생은 이 제자 한 명이었다. 같은 직장끼리 학생들은 잘 어울려 다니는데 이 제자는 혼자인 것 같고, 세탁소에 다니면서 부끄러워하지 않는 모습이 가상하기도 해서 격려를 해주고 싶었다. 하루는 반 학생들을 앉혀놓고 제자를 일어서게 하였다. 흐릿한 형광 불빛이 학생들의 눈꺼풀에 내려앉는 밤 종례 시간이었다. “우리 대성(제자)이는 세탁소로 출세할 것 같으니 미리 응원의 박수를 보내자.” 뜬금없는 제안에 모두가 뜨거운 박수를 쳤다.
월급이 더 많은 일자리 앞에서도, 육체적으로 덜 힘든 직장의 유혹에서도 그날 들었던 ‘세탁소로 출세할 것이다’란 말을 되뇌면서 버텨냈다고 한다. 무심코 건넨 한마디 말이 한 학생의 평생 농사를 좌우할 수 있다. 이제 제자는 세탁소 운영뿐만 아니라 지역 청소년들을 위한 ‘세탁 기술 교육원’의 꿈도 가지고 있다.
교육 현장이 어렵다. 그렇지만 30여 년 전에 건넨 격려 한마디가 ‘성공한 세탁소’가 되어 찾아왔으니 이럴 때마다 교육은 힘들어도 힘이 나는 일임을 또 깨닫는다.새봄에는 쑥국에 쌀밥을 놓고, 내가 걸어온 교직 생활과 제자가 세탁한 세월을 안주 삼아 소주 한잔 마시기로 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