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사진을 보신 적이 있는지? 1980년 5월 21일 오전 10시경 금남로에서 당시 한 일간지 기자가 찍은 사진이다. 계엄군은 20일 밤 광주역(당시 ‘신역’이라 흔히 불렀음) 앞에서, 몰려드는 시민을 향해 총질을 했고 그날 밤 최소 다섯 명의 희생자가 났다. 21일 아침 시민들은 두 구의 시신을 리어카에 싣고 공수부대가 진을 치고 있는 금남로로 들어섰다.

100년 전 한반도 전역에 태극기의 만세 물결이 넘실댔듯 5·18 광주항쟁에서도 태극기는 곳곳에 등장했다. 옛 전남도청 앞 분수대광장에서 열린 ‘민족민주화대성회’에서도 대형 태극기가 보였다. 계엄군에 희생당한 열사들의 시신 위에는 어김없이 태극기가 덮였다.

혹시 기회가 된다면 이 사진을 다시 한 번 자세히 보시라. 깃봉에 달린 태극기 말고 시신을 덮은 수레에는 세 개의 태극기가 보이는데 그중 두 개는 액자로 된 태극기다. 액자로 된 태극기. 이것은 천으로 된 태극기가 없어 관공서나 사무실에서 가지고 나온 것일 것이다. 시민들은 왜 희생자의 몸에 태극기를 두르고 덮었을까? 나라를 위한 희생, 이것 말고는 설명할 말이 없다. 이 나라는 전두환 신군부 너희들의 나라가 아니라 우리가 지켜야 할 소중한 우리들의 나라였던 것이다.

옛 가톨릭센터였던 금남로 5·18민주화운동기록관에서는 2월 28일부터 ‘태극기-우리 역사의 물결’이라는 제목으로 전시회를 연다. 이 전시에서는 3·1 운동 시기의 태극기에서부터 최근의 ‘촛불 혁명 태극기’까지 총 200점의 국기를 망라해 한국의 근·현대사를 재조명한다. 전시는 크게 세 개의 주제로 구성됐다. 해방 전은 근대와 혁명 곧 저항적 민족주의 개념으로, 해방 후는 민주와 저항의 표상으로, 미래는 평화와 통일의 비전으로 태극기를 제시한다.

인류는 고대 사회부터 집단을 상징하기 위하여 동물·해·달과 같은 징표를 사용하였다. 깃발은 염색과 방적 기술의 발전에 따라 그러한 징표를 종이나 천에 표시한 데서 비롯된 것이다. 이러한 깃발이 국가를 상징하게 된 것은 프랑스 혁명 때 쓰인 삼색기가 처음이다.

프랑스 혁명에서 프랑스 국기가 태동했듯 근대의 국기는 혁명의 과정에서 잉태된 것이 많다. 태극기도 일제 강점기에는 반외세 독립 투쟁의 표상으로 휘날렸으며 해방 이후에는 반독재 민주화 투쟁과 통일 운동의 상징이 되었다.

그런 만큼 태극기는 당연히 대한민국과 애국심의 상징이다. 독재 시절에 국가주의와 권위주의의 표상으로 많이 이용된 것도 그 때문이다. 박정희 대통령 시기가 대표적이다. 그때 ‘국기에 대한 맹세’와 ‘국기 하강식’도 만들어졌던 것이다. 이 시절에는 통치자와 국가가 동일시되어 태극기의 후광을 지배자나 특정 세력이 독점하다시피 했다.

이처럼 태극기는 의외로 다양한 함의를 지니고 있다. 이 나라는 누구의 나라인가. 누가 나라를 지키는가. 진정한 애국자는 누구인가…. 박근혜 부대가 태극기에 집착하는 것도 이런 이유일 것이다.

이제 5·18기록관에 오시면 조선조 말 구례 의병장 고광순이 사용한 ‘불원복(不遠復: 머지않아 국권을 회복한다) 태극기’와 5·18 당시 신군부의 군용 트럭에 짓밟힌 ‘애처로운 태극기’도 만날 수 있다. 우리의 근·현대사는 태극기를 매개로 이어지고 있다.

태극기는 우리 역사에서 어떤 의미를 갖는가. 아무나 태극기를 흔들 수는 있지만 누구나 태극기의 주인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