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 파워' 광주 대지하촌마을

새해가 시작된 1월의 어느날. 옹기종기 모여 앉아 이야기꽃을 피우고 있는 마을회관 소통방에 낯선, 젊은 이방인이 들어서자 시선이 쏠린다. 젊은이들 못지 않은 화합과 소통으로 마을공동체의 본보기가 되고 있는 광주시 남구 대촌동 대지하촌 마을이다.

54가구에 70여 명의 주민들이 살고 있는 마을의 평균 연령은 자그마치 78세다. 올해 아흔 둘이 된다는 친구사이인 할머니 두 분도 소통방에 함께 모였다.

추운 겨울이다보니 마을 활동은 딱히 없고 그렇다고 집에만 있기에 적적해 모인 어르신들을 위해 마을 통장이 영상을 준비해 보여준다. 올해 52세인 마을 통장 송운근씨는 대지하촌마을 주민들의 아들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다. 마을의 대소사를 도맡아 하는 마을의 ‘일꾼’이자 어르신들을 즐겁게 해주는 ‘재롱꾼’이다.

미술교실을 통해 배운 화투패 그림을 자랑하며 즐거워하는 대지하촌마을 주민들. 마을 앞 600년 된 정자나무는 주민들 놀이터이자 교육의 장이다.

이날 본 영상은 지난해 10월과 11월 마을에서 진행됐던 ‘금요할매장터’ TV 상영 녹화본과 가위춤 초청 공연때의 모습이었다. 화면에 비친 모습에 어색해하면서도 이내 웃음과 함께 다시 이야기꽃이 시작된다.

대지하촌마을은 시내와 인접한 곳이라 생활권은 도시와 가깝지만 생업은 대부분 농사로, 전형적인 시골마을 성격 그대로다. 평균연령 78세인 할머니들 마을이 웃음 가득 활기찬 마을이 된 건 7년 전부터다. 농업기술센터에서 시행하는 ‘농촌건강 장수마을’ 시범사업 공모에 선정되면서 다양한 활동이 시작됐다. 오랫동안 마을에 방치됐던 폐자재와 쓰레기를 치우고 도로변에 수수와 해바라기를 심으면서 마을을 가꿔나갔다. 그림그리기와 풍물, 요리 등 다양한 주민 교육사업도 진행했다. 논을 임대해서 공동 경작을 하고 수수는 공동 수확하면서 수익을 냈다.

평생 호미나 곡괭이만 들었던 할머니들 손에 붓을 쥐어주면서 그림을 그리는 즐거움도 갖게 했다. 할머니들은 커다란 종이에 화투패 그림을 하나씩 그려 완성했고 화제가 되어 여러 곳에서 전시를 갖기도 했다.

“시골마을이 다 그렇듯 본래부터 마을 공동체라는건 형성돼 있었어요. ‘울력(운력)’이라고 해서, 마을에 무슨 일이 생기면 전부 나와서 함께 해결해 나가는 식이지요. 마을 앞에 방치됐던 쓰레기들을 치우면서 본격적으로 마을이 예쁘게 꾸며지기 시작한 것 같아요. 그즈음 광주시에서 ‘마을 공동체’사업도 시행되었고 공모에 선정되면서 다양한 활동도 할 수 있게 된 겁니다.” (송운근 통장)

화투패 그림으로 전시를 하고, 마을 벽화그리기에 동참하고, 풍물을 배워 대회에 나가 수상을 하고, 가위춤을 배워 초청공연을 하는 등 70~80대 할머니들이라곤 믿기 어려울 정도의 활동을 이어가고 있는 대지하촌마을 주민들은 지난해부터 또다른 일을 시작했다.

10~11월 매주 금요일 마을앞 도로변에서 진행한 ‘금요 할매장터’다. 텃밭에서 손수 키운 야채들을 저렴하게 판매하고 찾아오는 고객들에게 막걸리나 국수, 부침개 등 먹거리를 제공하면서 축제 분위기를 만들었다. 추운 겨울이 지나면 봄부터 다시 할매장터를 재개할 계획이다.

송운근 통장은 “앞으로도 주민들과 함께 마을 앞을 더 꾸미고 할매장터를 활성화하는 것은 물론 팜스테이같은 체험학습도 할 수 있는 ‘기운 넘치는’ 마을을 만들어 나가겠다”고 전했다.

광주 화정4동 화사마을 ‘화사한 마을 극단’ 배우들이 공연한 연극 ‘이수일과 심순애’. <화사마을 제공>

◇문화 꽃피운 '광주 화정4동 화사마을'

고층 아파트 사이로 오래된 주택 단지를 고수하고 있는 광주시 서구 화정4동은 ‘배우’들이 모여사는 마을이다.

대부분 30~40년된 원주민들이 살고 있는 주택밀집 지역으로 눈에 띄는 활동이 없었던 화사마을은 지난 2015년 전국 최초 마을극단인 ‘화사한 마을 극단’을 꾸리면서 시선을 받았다. 문화가 꽃피는 마을공동체가 형성된 것이다.

현재 15명의 단원들로 구성된 극단은 비록 아마추어지만 매년 2차례씩 정기적으로 공연을 올리며 프로 못지 않은 열정을 보여주고 있다.

마을극단을 꾸린 장본인은 주민자치회장으로 활동하고 있는 안해옥 단장(51) 이다. 안 단장은 서구청에서 주도하는 ‘주민주도형 마을만들기’ 사업에 당당히 선정되는 결과를 안았다. 독창적인 아이디어와 과감한 추진력은 주민들의 우려까지 보기좋게 빗나가면서 성공적인 평가를 받고 있다.

안해옥 자치회장은 “우리마을은 도시권 이면서도 마을에 젊은층은 그리 많지 않다”며 “하지만 젊은이들 열정 못지 않고 참여도도 높다. 동네가 깨끗해진 것은 물론 9개의 자생단체들이 적극적으로 활동한 덕에 이름처럼 ‘화사한 마을’이 되어가고 있다”고 전했다.

유채·해바라기 축제를 통해 마을의 활기를 되찾고 있는 여수 반월마을. <반월마을 제공>

◇유채꽃으로 한마음 '여수 반월마을'

여수시 율촌면 반월마을은 유채꽃이 마을을 하나로 만들었다. 40호 세대 60여명이 살고 있는 반월마을은 노을이 멋진 와온해변 부근에 있는 작은 마을로 반농반어로 생활한다. 12년여 전부터 15만평의 마을공터에 유채를 심었던 것이 ‘제주 유채꽃보다 낫다’는 말이 나오면서 ‘마을공동체’의 계기가 됐다.

반월마을 박판규 이장의 주도로 유채꽃을 마을 축제로 자리잡기 위한 움직임이 시작됐다. 3년전부터 자체 기금을 모아 처음으로 유채꽃 축제를 열었다. 마을 주민들과 출향민, 선후배들이 십시일반 모은 것이 4000여만원에 달했다. ‘제1회 율촌면 반월들녘 유채꽃향연’은 성공적으로 치러졌고 이후 4월이면 마을축제를 기다리는 관광객들이 늘어갔다.

유채꽃 축제의 성공은 마을에 변화를 가져왔다. 주민 모두가 더 아름다운 마을이 되기를 바랐고 많은 이들이 찾는 활기찬 마을이 되기를 꿈꿨다.

“마을 축제를 열면서 더 자주 모일 수 있었던 것 같아요. 마을의 발전을 위해 머리를 맞대는 거죠. 하천 정비를 하고 바닷가에 산책로 겸 자전거길을 만들고 1km 데크길도 생겼어요. 마을공동체 사업이 모태가 되어 마을이 발전하고 주민들이 하나가 된 것 같아 누구보다 기쁘게 생각합니다.”

/이보람 기자 boram@kwangju.co.kr·사진=나명주·최현배 기자 mjn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