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11월 21일 독일 아헨에서 머물고 있던 나는 한국에서 걸려온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한전공대 마스터 플랜을 수립하는 AT 커니 컨설팅사 대표였다. 그는 한전공대 입지 선정 공동위원장을 수행할 의향이 있는지 물어왔는데, 이미 2017년 빅스포(BIXPO) 한전공대 포럼, 2018년 한전공대 국제기획자문위원회에 참여하면서 깊은 관심을 가져온 터였기에 나의 대답은 흔쾌히 ‘YES’였다.

2017년 빅스포 포럼을 가득 메운 인파를 보며 학교 설립에 대한 뜨거운 관심에 적지 않게 놀랐었다. 다소 의아했지만 총장으로 재직했던 아헨공대를 떠올려보니 이내 이러한 반응을 이해할 수 있었다. 아헨은 인구 30만의 중소 도시인데, 아헨공대가 지난 20년간 3만 개가 넘는 일자리를 만들며 지역 발전에 기여해왔다. 한전공대 설립도 그 시작부터 이미 학문적 영역을 넘어서는 이슈였던 것이다. 그렇게 입지 선정의 객관성과 투명성이 얼마나 중요한지 다시 실감했다.

입지 선정은 전남과 광주가 각 세 곳의 후보지를 제안하면서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기준위원회가 심사 기준을 수립했는데, 1단계에서 지자체별 후보지를 각 1곳으로 압축하고 2단계에서 최종 1곳을 선정하기로 하였다.

심사위원회는 지난 1월 23일부터 3일간 진행되었다. 첫째 날은 지자체가 제안한 후보지에 대한 프리젠테이션을 진행했고, 둘째 날은 심사위원들이 직접 6곳의 입지에 대한 실사를 진행했다. 마지막 날에는 심사를 완료하고, 최종 평가 결과는 집계하지 않은 채 위원들의 입회 하에 위원장이 직접 봉인했다. 그렇게 전달된 결과가 지난 28일 국가균형발전위원회에서 지자체의 입회 하에 최종 확정되어 발표된 것이다.

다시 돌이켜봐도, 입지 선정이 굉장히 짜임새 있게 진행되었다는 느낌을 받는다. 특히 구성위원회가 지역과 이해관계가 전혀 없는 위원들로 기준위원회와 심사위원회를 구성한 점, 심사위원회에 교육과 연구, 도시계획, 경제 등 다양한 배경을 보유한 전문가들이 위원으로 참여한 점, 마지막으로 위원들이 외부로부터 철저히 차단된 채 심사를 진행했다는 점에서 이번 한전공대 입지 선정 절차는 한전 뿐 아니라 다른 기관들이 벤치마킹해도 될 정도의 공정함과 객관성이 담보되었다고 자신한다.

한전공대는 이제 막 대학이 들어설 입지를 결정하는 첫 걸음을 디뎠을 뿐이다. 앞으로 넘어야 할 과제들이 수두룩하다. 세계적 석학을 총장으로 모셔 와야 하고, 캠퍼스도 설계해야 하고, 어느 학과를 만들지도 고민해야 하고, 안정적인 학교 운영을 위한 재정 조달 방안도 수립해야 한다.

그것뿐 만이 아니다. 신생 대학인 한전공대를 사람들에게 알리는 마케팅 전략도 수립해야 하고, 글로벌한 한전공대를 만들어갈 역량 있는 교직원도 채용해야 하는데, 어느 것 하나 쉽게 넘어갈 수 있는 것들이 없다.

이제 기후 변화, 자원 고갈 같은 에너지 문제는 인류에게 가장 큰 이슈이고, 이러한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는 미래 인재를 양성하는 것은 더 이상 선택이 아니라 필수적인 시대적 요구가 되었다. 이러한 관점에서 한전공대 설립과 운영에 관련된 모든 기관과 사람들(미래의 교직원, 학생, 중앙 및 지역정부, 그리고 한전까지) 모두가 한전공대가 성공적으로 설립되어 미래 에너지 산업을 이끌어가겠다는 목표에 빠르게 도달할 수 있도록 뜻을 모으고 중요한 역할을 수행해 주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