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윤식 광주시 건축주택과장] 건축, 공간의 기억법
2019년 01월 29일(화) 00:00 가가
오랫동안 사용하던 노트북이 간혹 말썽을 일으킨다. 오래된 노트북이라 그러려니 했는데 결국 포맷해야 했다. 모든 자료를 백업하고 포맷하는데도 혹시나 하는 생각에 조마조마했다. “포맷은 컴퓨터에 문제가 생기면 전원을 ON-OFF 하는 것처럼 가볍게 하시면 됩니다. 자료는 D드라이브에 저장하면 백업할 필요도 없고 오히려 초기화할수록 컴퓨터 성능이 좋아집니다.” 수리 기사는 컴퓨터의 문제가 생기더라도 센터에 오지 말고 포맷으로 해결하라는 것이었다.
문득 컴퓨터를 처음 사용하던 때가 생각났다. 지금이야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장치 등이 익숙하지만 30년 전만 해도 생경한 이름들이었다. 그 때 모든 것을 지워버리고 백지상태로 돌려놓는 포맷은 두려운 일이었다. 플로피 디스크를 포맷 하기 전에 몇 번을 고민하고 정말 해야 되는 것인지 재삼 확인하곤 했다. 아마도 포맷이 나의 어떤 기억을 완전히 삭제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컸던 까닭일 게다.
인간은 살아가는데 필요한 정보를 기억으로 저장하며, 저장된 기억을 연결해 사고하고 움직이는 존재이다. 지금은 굳이 기억하지 않아도 컴퓨터가 그런 기억들을 소환해준다. 심지어 페이스북은 과거에 포스팅한 글과 사진들을 ‘오늘 아침’에 공유하라고 부추기기까지 한다. 나는 언제부턴가 기계적인 기억에 의존하지 않고 나만의 시냅스로 촘촘하게 연결된 아날로그 기억으로 살고 있다. 때로 건축 행정가에게도 가장 좋은 건축의 소재는 자신의 감각으로 연결된 기억이니까.
사람만 기억을 가지고 있지는 않다. 김명식은 ‘건축은 어떻게 아픔을 기억하는가’에서 “기억을 지속시켜주는 것은 공간뿐이다. 지나간 일, 사건은 시간의 개념으로 되돌아 오지 않지만 공간은 지속적인 기억을 제공해 준다”고 했다. 고문으로 악명 높은 남영동 대공분실, 서대문 형무소 등 고통의 기억과 대면하는 일은 괴롭지만 다시 치유로 되돌아오게 할 수 있는 것도 결국 공간이라고 이야기한다.
‘민주·인권 도시’ 광주에도 아픔이 새겨진 건물들이 있다. 5·18 민주화운동 최후 항전지였던 옛 전남도청 별관은 국립 아시아문화전당 건립 당시 보존이냐 철거냐로 홍역을 앓았다. 현재 일부 건물이 철거되고 그 자리에 옛 건물을 연상케하는 철골만 남아 있다. 문재인 정부는 이 부분을 포함해 옛 전남도청 전체에 대한 복원을 약속했고 지난 6개월 동안 연구 결과를 통해 시민군이 상황실로 사용했던 1층 서무과와 2·3층 도지사실 등을 복원한다. 아시아문화전당 입구로 사용하기 위해 일부를 헐어버린 도청 별관 건물도 원형대로 본관과 이어진다. 다만, 1·2층은 전당 입구로 계속 사용할 수 있도록 복원은 3·4층 중심으로 이뤄질 예정이다.
전일빌딩도 5·18 당시 진압군의 헬기 기총 소사가 남긴 총탄의 흔적을 간직하고 있다. 2017년 전일빌딩 리모델링 기본 계획에 오월 역사의 흔적이 새겨진 건물 원형을 철거하는 계획안이 마련돼 논란의 중심에 서기도 했다. 안전 C등급을 받은 건물의 노후와 주차장 확보 문제로 총탄 흔적이 집중된 7층~10층이 철거 위기에 놓였던 것이다. 시민단체와 줄다리기 끝에 5·18 역사성을 살려 총탄의 흔적을 원형 보존하고 5·18 추념 공간 등으로 조성하기로 했다.
건축물을 파괴하는 행위는 그날의 흔적과 기억을 포맷시키는 것과 같다. 건축도 현재의 가치를 증명하기 위해서는 과거의 흔적과 기억을 끌어 올 수 밖에 없다. 관건은 건축물을 파괴하지 않고 어떻게 과거를 투영하는 현재의 시대 가치를 담을 것인가이다. 과거를 현재의 눈으로 재해석하는 것은 시대 가치를 읽고 상상하는 데서 출발한다. 건축의 시대 가치는 과거의 가치가 현재 우리의 의식 속에 자리잡을 수 있을 때 역사의 흐름을 함께 공유하게 되는 것이다. 기억된다는 것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재활성화되는 것이며, 건축의 내용적인 측면도 지속될 수 있는 것이다.
어느새 정보화 시대라는 말조차도 낡은 옷처럼 느껴진다. 먼 미래에 도래할 것 같았던 낯선 인공 지능이 어느 순간 삶 깊숙이 들어와 있다. 4차 산업 혁명은 ‘디지털 혁명을 기반으로 물리적, 디지털, 생물학적 공간의 경계가 희석되는 기술 융합의 시대’로 정의한다. 건축 분야에서도 4차 산업 혁명 시대에 경계를 뛰어넘어 세대와 시대를 아우르는 건축 공간의 기술이 절실히 요구되고 있다. 건축 공간이 지속성을 갖기 위해서는 시대 가치와 건축 기술, 과학 기술이 융합하고 맞물려질 때 가능하다.
현재 진행형의 아픔을 간직한 역사적 건축 공간들이 그날의 기억과 공명하면서 미래를 담는 공간으로 부활하기를 기대해 본다.
인간은 살아가는데 필요한 정보를 기억으로 저장하며, 저장된 기억을 연결해 사고하고 움직이는 존재이다. 지금은 굳이 기억하지 않아도 컴퓨터가 그런 기억들을 소환해준다. 심지어 페이스북은 과거에 포스팅한 글과 사진들을 ‘오늘 아침’에 공유하라고 부추기기까지 한다. 나는 언제부턴가 기계적인 기억에 의존하지 않고 나만의 시냅스로 촘촘하게 연결된 아날로그 기억으로 살고 있다. 때로 건축 행정가에게도 가장 좋은 건축의 소재는 자신의 감각으로 연결된 기억이니까.
전일빌딩도 5·18 당시 진압군의 헬기 기총 소사가 남긴 총탄의 흔적을 간직하고 있다. 2017년 전일빌딩 리모델링 기본 계획에 오월 역사의 흔적이 새겨진 건물 원형을 철거하는 계획안이 마련돼 논란의 중심에 서기도 했다. 안전 C등급을 받은 건물의 노후와 주차장 확보 문제로 총탄 흔적이 집중된 7층~10층이 철거 위기에 놓였던 것이다. 시민단체와 줄다리기 끝에 5·18 역사성을 살려 총탄의 흔적을 원형 보존하고 5·18 추념 공간 등으로 조성하기로 했다.
건축물을 파괴하는 행위는 그날의 흔적과 기억을 포맷시키는 것과 같다. 건축도 현재의 가치를 증명하기 위해서는 과거의 흔적과 기억을 끌어 올 수 밖에 없다. 관건은 건축물을 파괴하지 않고 어떻게 과거를 투영하는 현재의 시대 가치를 담을 것인가이다. 과거를 현재의 눈으로 재해석하는 것은 시대 가치를 읽고 상상하는 데서 출발한다. 건축의 시대 가치는 과거의 가치가 현재 우리의 의식 속에 자리잡을 수 있을 때 역사의 흐름을 함께 공유하게 되는 것이다. 기억된다는 것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재활성화되는 것이며, 건축의 내용적인 측면도 지속될 수 있는 것이다.
어느새 정보화 시대라는 말조차도 낡은 옷처럼 느껴진다. 먼 미래에 도래할 것 같았던 낯선 인공 지능이 어느 순간 삶 깊숙이 들어와 있다. 4차 산업 혁명은 ‘디지털 혁명을 기반으로 물리적, 디지털, 생물학적 공간의 경계가 희석되는 기술 융합의 시대’로 정의한다. 건축 분야에서도 4차 산업 혁명 시대에 경계를 뛰어넘어 세대와 시대를 아우르는 건축 공간의 기술이 절실히 요구되고 있다. 건축 공간이 지속성을 갖기 위해서는 시대 가치와 건축 기술, 과학 기술이 융합하고 맞물려질 때 가능하다.
현재 진행형의 아픔을 간직한 역사적 건축 공간들이 그날의 기억과 공명하면서 미래를 담는 공간으로 부활하기를 기대해 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