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는 몇 가지 특성을 가지고 있는데 그 중 하나가 사회성이다. 사회 구성원간에 약속된 기호의 의미가 있다. 어느 한 개인이 바꿀 수 없고 바꿔지지도 않는다. 그렇다고 고정불변도 아니다. 사투리도 많이 쓰면 표준어가 되고, 표준어도 안 쓰면 소멸된다. 잘못 쓰인 단어의 뜻도 다수의 언중(言衆)이 반복적으로 사용하면 자리를 잡는다.

‘적당(適當)’이란 말은 ‘꼭 들어맞다, 알맞다’는 뜻이지만 지금은 ‘대충’이란 뜻으로 더 쓰인다. ‘적당주의’란 말까지 만들어지면서 ‘적당히 하라’고 하면 ‘대충 하라’는 뜻으로 받아들인다. ‘낙하산’이란 단어도 이 추세로 계속 쓰이면 ‘전문성이나 능력에 관계없이 권력이나 뒷배경으로 한 자리 차지한 사람’을 뜻하게 될 것이다. 어처구니(맷돌의 손잡이) 없는 일들이 반복되고 있음에도 시치미(매 이름표) 떼는 일이 다반사(차와 밥)다. 우리의 일상생활에서도 집안의 이모는 점점 사라지고, 식당에서 상차림을 도와주는 여성분들이 이모가 되고 있다. 신랑 대신 ‘자기’라고 부르더니, 이제는 ‘오빠’가 떡 자리 잡고 있다.

인칭 대명사 중에 ‘당신’이란 말은 상대방을 조금 높인 의미가 기본이다. 부부간에 ‘여보 당신’할 때는 알콩달콩 부르는 호칭이 되고, 조상이나 종교적인 의미로 쓰일 때에는 아주 높임말이 되기도 한다. 그렇지만 언쟁이나 시비가 붙게 되었을 때에는 상대방을 얕잡아 가리키는 의미로 쓰여 폭발의 불씨가 되는 말이기도 하다. “언제 봤다고 당신이냐”, “뭐, 당신?” 이 정도로 쓰이면 상황은 걷잡을 수 없게 된다.

‘선생’과 ‘선생님’도 대상이나 상황에 따라 의미의 깊이가 달라진다. 학생을 가르치는 교사를 선생이라 하고 여기에 접미사 ‘님’을 붙여 존칭의 ‘선생님’이 된다. 하지만 ‘선생님’은 관습적 평범한 존칭어이고, ‘선생’은 선각지생(先覺之生)의 준말로 먼저 깨달아 덕망과 학식을 갖춰 한 시대의 사표가 된 큰 인물을 가리키는 극존칭어로 해석하기도 한다. 그래서 선생으로 추앙받는 인물은 매우 드물다. 김구 주석이라 부르기도 하지만 존경의 의미를 담아 김구 선생으로 더 쓰인다. 2천여 년의 황제 제도를 폐지한 신해혁명의 손문도 국부, 대총통 대신 손문 선생이다. ‘율곡 선생’처럼 사용할 때에는 성명이나 별호에 붙여 쓰지 이름에 붙여 쓰지 않는다.

연초에 서울시 교육감 ‘희연 쌤’이 교육계 조직 문화를 바꾸겠다면서 몇 가지 방안을 내놓았다. 그 중 한 영역이 수평적 조직 문화인데 구성원간의 호칭을 ‘○○쌤, ○○님’으로 통일하고, 교직원 학생 모두 하절기에 반바지, 샌들 차림을 허용한다고 발표했다. 여론이 들끓자 “학생이 선생님을 부르는 호칭은 변경할 계획이 없고, 교직원끼리만 적용할 방침이었다”고 물러서는 해명을 내놓았다. 이렇게 지침을 내리지 않아도 학교 현장에서 ‘선생님’이라는 존칭이 사라져가고 있다. 이미 ‘○○쌤’이 대세이다. 수업시간은 물론이고 교무실이나 복도 등 어디에서도 이 호칭이 들린다. 그리고 교원과 직원간에 위화감을 없애고 친근한 조직 문화를 위해서라면 상호 ‘선생님’이라 부르면 될 것이다. 이 호칭 사용도 상당히 보편화되어 있다.

사회가 각박해 질수록 언어는 격음화 현상이 생기고 더욱 거칠어진다. 지역과 거리, 국경을 넘어 지상의 어느 곳과도 실시간 쌍방 소통이 가능한 오늘날 약자나 기호, 조어가 수시로 생성소멸하고 있다. 세대간의 장벽뿐만 아니라 동 세대간에도 의미를 잘 모르는 말이 쓰이고 있다. 시류를 거스를 수는 없지만 언론이나 공공기관 특히 학교 현장이나 교육 기관에서는 바르게 쓰도록 지속적으로 교육하고 중심을 잡아 주어야 한다.

엉클 톰 같기도 하고, 강아지 이름 같기도 한 ‘쌤’. 표준어도 아니고 존칭의 의미도 희박한 ‘쌤’을 이름과 함께 붙여 쓰라는 이 지침. 교육부는 교육청에, 교육청은 단위 학교에 많은 권한을 주고 자율적 판단을 존중하겠다고 말하면서 호칭 하나, 복장 모양까지 정해준다는 것은 전형적인 상급 기관의 수직적 조직 문화 발상이 아닌가 싶다. 지난해 9월에는 염색, 파마를 자유롭게 하여 “아침이 설레는 학교, 하교가 아쉬운 학교를 만들겠다.”고 하더니, 금년 초에는 ‘○○쌤’이라 부르고 반바지, 샌들을 허하노라 한다. 지금 우리 교육계에 더 심각하고 큰 문제가 산적해 있을 것인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