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4일 새벽을 깨우며 서울행 버스에 올랐다. 5·18 유가족과 부상자, 구속자, 시민단체 회원들이 자유한국당에 5·18 민주화운동 조사위원의 빠른 추천으로 진상 규명에 협력할 것을 촉구하기 위해서였다. 국회 앞에서 농성을 하는 사이에 미뤄 온 조사위원을 추천했다는 소식에 안도하며 자유한국당 앞 농성을 양보(?)하고 연희동으로 향했다.

자주 들리는 곳이지만 이번 항의 방문은 의미가 있었다. 전두환을 ‘민주주의의 아버지’로 미화시킨 이순자의 망언이 나온 뒤였기 때문이다. 전두환 부부의 집 앞에서 한 맺힌 5월 가족들은 외쳤다. “국민들의 명령이다 전두환은 재판에 출석하라” “광주 학살 책임지고 전두환은 사죄하라” 대답이 없다. 집회를 정리하며 ‘임을 위한 행진곡’을 힘차게 부르는 5월 가족들의 눈가에 맺힌 눈물을 잊을 수 없다.

오랜 산고 끝에 태어난 자식이라 건강하고 믿음직한 옥동자가 탄생했을 거라는 국민들의 기대는 여지없이 깨졌다. 보수 논객 지만원 씨를 추천하지 않은 것은 다행이지만 한국당이 추천한 인물들은 국민 정서와 맞지 않으며, 진상 규명이라는 대명제와는 어울리지 않는 면면들이다. 더욱 가관스러운 것은, 한국당이 권태오 전 민주평통 사무처장, 이동욱 전 조선일보 기자, 차기환 전 수원지법 판사 등 3명을 추천하면서 내놓은 논평이다. “5·18 민주화운동과 관련해 왜곡되거나 은폐된 진실을 균형 되고 객관적으로 규명해 국민통합에 기여할 적임자”라는 자화자찬이다.

1988년 5공 청문회가 열릴 때도 죽은 사람은 많은데 쏘라고 시킨 사람은 없어서 청문회 무용론까지 등장했던 기억을 잊지 않고 있다. 세월호 진상 규명을 방해하기 위한 음모도 국민들은 기억하고 있다. ‘때리는 시어머니보다 말리는 시누이가 더 밉다’는 말이 있다. 여론이 무섭다면 제대로 된 사람들을 추천하든지, 아예 포기하는 게 역사에 대한 도리가 아닐까? 언론에서 충분히 검증하고 국민적인 합의가 이뤄지면 대통령께서 임명하겠지만 참으로 통탄할 일이다. 죽음의 공포를 뚫고 80년 5월 27일 새벽을 지킨 영령들이 편히 잠들 수 있는 소박한 꿈마저 훼방을 놓아야 속이 후련하다는 말인가?

39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크게 달라진 것은 없다. 몇 번의 정권 교체가 있었고 남북의 화해와 통일에 대한 열망이 솟구치고 있지만 삶의 질과 인권은 크게 개선되지 않았다. 기나긴 역경 속에서 변한 게 있다면 80년 당시 혈기 왕성했던 20대는 중장년이 되고, 자식과 남편을 뺏긴 어머니들은 서서히 늙고 죽어간다는 슬픈 현실. 5월 가족과 시민들도 상경 투쟁을 끝내고 가족과 함께 평범하게 살고 싶은 소망이 왜 없겠는가?

그래서 부탁한다. 우리의 슬픔을 희망으로 보듬어 주진 못할망정 침을 뱉지는 말아 달라고. 역사의 시계를 멈추게 하려는 자들이여, 더 이상 5월 광주의 숭고함을 오염시키려 하지 말라. 누가 찬란한 역사를 훼손하려 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