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민족에게는 새해 첫날 서로 덕담(德談)하는 풍습이 있었다. 당(唐)나라 역사서인 ‘구당서’(舊唐書)의 ‘신라 열전’에 “신라는 새해 첫날을 중하게 여겨서 서로 축하하면서 잔치를 베푼다. 이날에는 매번 해신과 달신에게 제사 지낸다”는 기록이 있다. 새해에 서로 덕담하는 민족의 풍습은 신라만이 아니라 백제·고구려 등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새해 첫날 궁중에서는 임금과 백관이 서로 하례하는 하정례(賀正禮)를 실시했는데, 그 전에 글 잘하는 문신에게 연상시(延祥詩)를 짓게 했다. 연상시는 영상시(迎祥詩)라고도 하는데, 새해에는 나라에 좋은 일이 가득하기를 시로써 축원하는 것이다.

정월 초하루의 연상시를 입춘(立春)과 단오(端午)날에 대궐 안의 전각 기둥에 써서 붙인다. 이 기둥에 쓴 주련(柱聯)을 입춘 첩자(帖子), 단오 첩자라고 한다. 세로로 연상 시구(詩句)를 쓰고 위에는 연잎, 아래는 연꽃을 그렸다.

대궐에서 연상시를 써 붙이던 풍습이 민간에 퍼진 것이 입춘첩(立春帖)이다. 입춘첩은 춘련(春聯)이라고도 한다. 민간의 입춘첩 중에 가장 보편적인 것은 ‘입춘대길 건양다경’(立春大吉 建陽多慶)으로서 “봄을 맞아서 크게 길하고 경사로운 일이 많이 생기기를 기원한다”는 뜻이다.

전라도 해남 출신의 문신 미암(眉巖) 유희춘(柳希春:1513~1577)은 중종 8년(1513) 12월 23일 입춘첩을 써 붙였다. 입춘첩은 대문 양쪽에 서로 대구(對句)로 써서 붙이는데, 유희춘은 대문 바깥에는 ‘연풍요락사(年豊饒樂事) 가태갱안한(家泰更安閑)’이라고 써 붙였다. “새해에는 풍년이 들어 요족하고 즐거운 일이 많고, 집안은 크게 평안하고 또 편안하고 한가로워라”는 뜻이다. 안쪽 문에는 ‘방국은광대(邦國恩光大) 전원흥미심(田園興味深)’이라고 써 붙였다. “나라의 은혜가 밝고도 크고 전원에도 흥미가 깊구나”라는 뜻이다. 나라의 은혜가 크지만 벼슬을 떠나 전원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도 담은 입춘첩이었다.

미암 유희춘이 입춘첩에 ‘풍년이 들다’라는 뜻의 연풍(年豊)을 쓴 것처럼 다산 정약용의 시구에도 ‘어몽식년풍’(魚夢識年豊)이란 구절이 보인다. “물고기 꿈을 꾸었으니 풍년이 들 것을 알겠네”라는 뜻이다. ‘시경’(詩經)의 ‘소아’(小雅) 홍안지십(鴻雁之什)에 “수많은 물고기는 풍년이 들 징조라네”라는 구절에서 딴 시구다.

유희춘의 입춘첩이 집안의 평안과 나라의 부강을 함께 빌었던 것처럼 민간의 입춘첩도 마찬가지였다. “수명은 산 같이 길기를 바라며(壽如山), 재물은 바다 같이 풍부하길 바란다(富如海)”는 입춘첩이나 “부모님은 천년 수명을 누리시기를 바라며(父母千年壽), 자손은 만대번영하기를 바라네(子孫萬代榮)”라는 입춘첩은 모두 가정의 무궁한 복을 비는 것이다.

나라의 평안을 비는 입춘첩도 많다. “나라는 태평하고 백성은 편안하기를 바라고(國泰民安), 집집마다 살림이 넉넉하기를 바라네(家給人足)” 같은 구절은 나라와 가정이 두루 평안하기를 비는 입춘첩이다. “비가 순조롭고 바람이 제때 불기를 바라며(雨順風調), 시절이 태평하고 풍년이 들기를 바라네(時和歲豊)” 같은 입춘첩도 있다. 여기의 시화세풍(時和歲豊)은 시화연풍(時和年豊)과 같은 뜻이다. 정조 임금은 “입춘첩 새로 써서 풍년을 기원하노라(立春新帖願豊年)”라는 입춘첩을 썼다.

연풍(年豊), 즉 풍년이 들기를 기원하는 것은 요즘 말로 경제가 잘되기를 바라는 것이다. 그래야 백성들이 편안한, 민안(民安)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후한서’(後漢書)의 ‘염범(廉范) 열전’에는 후한의 염범이 촉군(蜀郡) 태수가 되어 금화(禁火)와 야간 통행금지 등 각종 규제를 철폐하자 백성들의 생활이 크게 나아져서 이렇게 노래했다 한다. “염숙도(염범)여, 왜 이리 늦게 오셨소. 불을 금하지 않아 백성들이 편하게 일을 하니 평생 저고리 한 벌 없던 내가 지금은 바지가 다섯 벌이나 된다오.” 새해에는 정부가 염범처럼 발상의 전환으로 경제 정책을 펼쳐 국민들의 생활이 나아지는 원년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사)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