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일하여서/ 오남매 자식들을 키우고 가르친/ 내가 자랑스럽다// 어느 곳 한 군데 성한 곳 없는 몸이지만/ 아픈 몸 이끌고 한글학교에 다니는/ 내가 자랑스럽다// 이름 석 자도 못 쓰던 내가/ 책을 읽고 영어 수학도 배우니/ 내가 자랑스럽다// 가는 세월 잡지는 못하지만/ 죽는 날까지 공부하면서 살려는/ 내가 자랑스럽다// 죽어서 가는 세상 있다면/ 거기서도 공부했다고 말할 수 있는/ 내가 자랑스럽다” <효덕동 이계월, ‘내가 자랑스럽다’>

며칠 전 김대중컨벤션센터에서 열린 광주평생교육진흥원 성과 보고회 행사장 입구에서 만난 시다.

막 글을 배운 아이의 서툰 글씨체로 한 자 한 자 써내려간 그 속에는 일생을 관통하는 삶의 자세와 마음이 오롯이 담겨 있다. 지금까지 접해본 그 어떤 시 못지않게 단순하고 명쾌하면서도 그 자체가 하나의 감동이고 교훈이다. 그 흔하디 흔한 수사나 세련된 기교도 없이 자신의 삶을 진솔하게 통째로 아우른 이 시 앞에서 그 무슨 말을 더하랴. 붙박이가 되어 한참이나 발걸음을 옮길 수 없었다. 한평생 자식을 기르고 난 뒤에 뒤늦게 배움의 길에 들어선 자신이 자랑스럽다는 옹골진 자부심이 독자를 압도하고도 남을 만큼 너무도 값지고 당당해서다.

그간 문자를 해득하기까지 암호와도 같은 온갖 문자의 홍수 속에서 얼마나 가슴 치며 답답해 하셨을까? 진즉 배운 사람들이 너무도 쉽게 읽고 쉽게 쓰는 모습 앞에서는 또 얼마나 몸을 낮추며 서럽게 작아지셨을까? 거기에다가 배우고 싶은 허기진 열망은 또 어떻고. 이런저런 생각을 더해 끝내 헤아리지 못할 추측만 했을 뿐 저 깊이 감추어진 삶의 깊이와 수준까지는 실로 가늠하기 어렵다. 단지 자꾸만 희미해져 가는 두 눈을 쥐어뜯으며 풀기 힘든 지독한 암호를 풀려고 몸부림치는 한 여인의 모습이 이슬 맺힌 실루엣으로 크게 다가올 뿐이다.

기적! 이것은 분명히 기적이다. 남들에겐 그저 지극히 평범하기만 한 읽기, 쓰기겠지만 세상이 새롭게 깨어나 들어오기 시작하니 그렇다. 감히 쳐다보지도 말라며 완벽하게 자신을 소외시켰던 거리의 간판들이 친숙하게 다가오고, 이웃집 대문 옆에 걸린 문패의 기호가 하나씩 하나씩 살아있는 의미로 풀리는 순간을 생각해 보라. 이런 것이 기적이 아니면 무엇이 기적이란 말인가. 또 문자가 적힌 쪽지를 들고 낯선 길을 나서는 자신이 어찌 대견스럽고 자랑스럽지 않겠는가.

문학의 언저리에서 어설프게 서성대고 방황하면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에 밥줄 댄 채 서툰 폼 잡으며 우쭐우쭐 살아온 나! 60 평생 넘게 살아 오면서 이분만큼의 고통스러운 간절함으로 매달렸던 일이 있었던가. 결코 교만하지 않은 담백함으로 다음 세상까지 가서 내놓고 자랑할 만한 일은 정녕 무엇인가. 자랑은커녕 부끄러운 일들이 먼저 앞서니 소중한 세월을 허송한 것은 아닌지.

불현듯 까막눈이셨던 숙모님 한 분이 안쓰럽게 떠오른다. 마지막 순간까지 충장로 거리의 그 많은 가게를 다 찾아다니면서도 간판은 그저 가게의 위치를 가늠케 하는 표지 정도로만 인식한 채 고단하게 한평생 살다 가신 분이다. 숙모님이 단 한 번만이라도 당신의 이름 석 자를 읽고 쓰고 가셨더라면 참 좋았을 것을.

당신이시여! 학령기가 되어 당연하게 글을 배우고, 한 줌도 안 되는 지식 자랑하며 살아온 사람에게 겸허한 성찰의 기회를 준 보답으로 당신의 시를 다시 되돌려드립니다.

‘혼자 일하여서/ 오남매 자식들을 키우고 가르친/ 당신이 자랑스럽습니다// 어느 곳 한 군데 성한 곳 없는 몸이지만/ 아픈 몸 이끌고 한글학교에 다니는/ 당신이 자랑스럽습니다// 이름 석 자도 못 쓰던 당신이/ 책을 읽고 영어 수학도 배우니/ 당신이 자랑스럽습니다// 가는 세월 잡지는 못하지만/ 죽는 날까지 공부하면서 살려는/ 당신이 자랑스럽습니다// 죽어서 가는 세상 있다면/ 거기서도 공부했다고 말할 수 있는/ 당신이 더욱 자랑스럽습니다’

왜냐하면 당신은 우리들의 위대한 어머니요, 숙모요, 서러운 누이들과 동격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