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는 대통령 선거 때부터, 지방 선거 전까지 지방 분권 개헌을 야심차게 추진하였으나, 결국 별다른 결실을 맺지 못했다. 정치권의 비협조적 태도도 문제였으나, 무엇보다도 지방자치단체와 그 구성원들인 주민들의 분권화에 대한 열망이 크지 않다는 것이 더 큰 문제였다. 오랫동안 중앙 집권적인 체제를 유지해 왔던 점, 재정 자립이 어려워서 중앙 정부의 지원에 의존하는 데 익숙해져 있다는 점, 중앙 정부로부터 받아온 돈이라서 주민들의 감시도 심하지 않으니 굳이 자립의 필요성을 느끼지 않았다는 점 등이 지방자치단체나 주민들을 중앙 집권적 통제에 익숙하게 만들어 왔지 않나 싶다.

서울이나 수도권에서 필요한 차량 5부제를 지방의 소도시까지 똑같이 시행하게 해도 군말 없이 시키는 대로 하는 것이 그동안 지방자치단체들이 보여온 행태였다. 수도권은 교통 체증에 시달리지만, 지방 소도시에 살면 막히는 일 없이 차를 잘 활용할 수 있다. 그러니 우리 동네에 와라, 이렇게 홍보하고 그것을 경쟁력으로 삼아야 할 지방자치단체들이 중앙 정부의 정책이라면 가치 판단도 않고 받들어 왔다. 도대체 자치 의식이 없었다는 것이다.

이 대목에서 우리는 이런 질문을 던지고 답을 찾아봐야 한다. 지방 자치가 과연 필요한가? 자치를 하는 이유는 지방에 무엇이 필요한지는 지방이 더 잘 안다는 것이다. 전국의 시군에 일률적으로 도서관을 하나씩 짓자, 이렇게 하는 것보다는 도서관을 먼저 짓든, 체육관을 먼저 짓든 그 지방에서 사정을 더 잘 아는 사람들이 알아서 하라는 것이 지방 자치이다. 소위 지방 주민들의 공공재 수요는 지방자치단체가 더 잘 파악할 수 있다는 의미이다.

어떤 사람들은 지방 자치가 비효율적이라고 지적하기도 한다. 돈이 많이 든다는 점에서는 비효율적일 수도 있다. 그런데 주민들이 원하는 것을 공급하느라 돈이 더 든 것이라면, 오히려 이 경우가 더 효율적인 것으로 봐야 한다. 민주주의라는 가치를 실현하는 데에도 지방 자치가 보다 더 주민들의 의견을 존중하게 될 것이라는 점에서 더 잘 어울린다.

지방 자치를 활성화하는 데 있어 가장 큰 장애는 재정면에서의 분권이 미약하다는 점이다. 정부 예산의 근간인 조세 수입 비율은 국세가 80%, 지방세가 20%로 불균형이 크다. 불균형을 완화시키기 위해 중앙 정부는 지방에 지방 교부세나 보조금 등으로 재원을 나눠주고 있는데 이 과정에서 지방은 중앙에 예속될 수밖에 없다. 이런 종속 관계가 지속되는 한 지방자치단체가 자율적으로 결정하고 집행하는 지방 자치가 실현되기 어렵다.

지방 재정 학자들과 지방자치단체들이 한 목소리로 국세 일부를 지방세로 넘겨달라고 주장하고 있는 것도 이런 맥락에서 나오는 말이다. 그런데 국세를 지방세로 넘기면 문제가 해결될 것인가? 새 정부의 대선 공약에는 지방세 비율을 40%까지 올리겠다고 하는데 만약에 그렇게 된다면, 지방자치단체는 재정 수입 면에서 매우 큰 변화가 나타나게 된다.

세원이 많아서 지방세를 많이 걷을 수 있는 지방자치단체에게는 매우 유리하지만 경제력이 약해서 어차피 조세 수입이 별로 없는 자치단체에게는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자치단체간 조세 수입의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심화되고 가난한 자치단체들은 재원 부족으로 공무원 급여를 못 주는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다.

필자가 작년에 연구한 바에 의하면 국세를 지방세로 넘겨주는 대신 지방 교부세를 줄인다면 서울, 경기 등의 수도권과 비수도권의 광역시 등은 재정 수입이 증가하지만 비수도권의 도 지역은 재정 수입이 대폭 감소할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전남은 2015년 기준으로 1조 원 가까이 재정 수입이 감소하는 것으로 분석되었다. 이처럼 지방세 확충의 영향은 각 지방의 경제력에 따라 크게 차이가 나고, 오히려 재정 수입의 감소를 초래할 수도 있기 때문에 국세의 지방세로의 이양은 그만큼 신중해야 한다. 재정 분권도 필요하지만, 재정면에서의 지역간 균형도 매우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