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해가 저물어 간다. 해가 가면 어린이는 한 살을 더한다. 하지만 나이 든 사람은 한 해가 가면 한 해가 줄어든다. 나도 어느덧 해가 바뀌면 한 살이 빠져나가는 느낌이다. 앞으로 살아온 날보다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이다. 시간은 흘러가는 물과 같아서 한 번 지나가면 되찾을 수가 없다. 순간순간 항상 깨어 있어야 한다.

며칠 전 산에 올랐다. 돋아나는 새싹과 꽃이 만발하는 봄날도, 왕성한 생명력을 간직한 여름도, 마음까지도 물들게 하는 단풍도 사라져 버린 계절은 삭막하고 대지에는 낙엽이 많이 뒹굴고 있었다. 모든 것이 멈추어버린 것 같았다. 하지만 대지 아래서는 따뜻한 온기를 깊이 간직하고 다가올 봄날을 위해 활발히 움직이고 있을 것이다.

나이가 들수록 감정이 무뎌져 마음이 움직이지 않지만, 떨어져 버린 낙엽의 잔상에서 떠오르는 것은 남북 관계의 변화였다.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지난 4월 27일 남북 정상회담을 갖고 ‘한반도의 평화와 번영, 통일을 위한 판문점 선언’을 발표했다. 두 정상은 공동 선언문에 서명을 한 후 발표에서 “한반도에 더는 전쟁은 없을 것. 평화의 시대가 열렸다”라며 냉전의 산물인 분단과 대결을 하루빨리 종식시키고 화해와 번영의 새로운 시대를 열고 남북 관계를 개선하고 발전시켜 나가야 한다는 의지를 선언했다.

양 정상은 지난 9월 18일부터 20일까지 평양에서 “역사적인 판문점 선언 이후 남북 당국 간 긴밀한 대화와 소통, 다방면적 민간 교류와 협력이 진행되고, 군사적 긴장 완화를 위한 획기적인 조치들이 취해지는 등 훌륭한 성과들이 있었다”고 평가했다. 또 민족 자주와 민족 자결의 원칙을 재확인하고, 남북 관계를 민족적 화해와 협력, 확고한 평화와 공동 번영을 위해 일관되고 지속해서 발전시켜 나가기로 하였으며, 현재의 남북 관계 발전을 통일로 이어갈 것을 바라는 온 겨레의 지향과 여망을 정책적으로 실현하기 위하여 노력해 나가기로 했다.

인상적인 것은 민족의 영산 백두산을 양 정상이 함께 오르는 것이었다. 그동안 백두산을 우리 산이라고는 하였지만, 남의 나라 땅인 중국을

통해서만 가야 하는 것이었다.

이와 함께 문 대통령은 첫날 만찬사에서 “다정한 연인처럼 함께 손잡고 군사 분계선을 오갔던 김 위원장과 나 사이에 신뢰와 우정이 있다”고 했으며, 김 위원장도 환영사에서 “남북 관계에 꽃 피는 봄날과 풍요한 결실만이 있도록 문 대통령과 제반 문제를 허심탄회하게 논의하겠다”고 했다.

지금까지 남북 간에는 전과 다르게 많이 가까워진 느낌이다. 하지만 지금도 북미 간에는 상호 불신의 폭은 넓고 깊이는 심하다. 냉탕과 온탕을 오가며 밀고 당기는 줄다리기를 하고 있어서 때로는 비관도 낙관도 하기 힘든 실정이다.

비핵화, 남북 통일을 논하면서 항상 목표와 총론에서는 일치하지만, 구체적인 사안에 대해서는 의견 접근이 어려운 실정이다. 이것은 누구의 방법이 좋고 합리적이지 못해서가 아니라 지금까지 불신과 갈등이 낙엽처럼 쌓여 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든다.

우리 생애 중에서 한 해가 신속하게 빠져나가고 있다. 나이 든 사람들은 한 살이 줄어든다. 시간은 영원한 것이 아니다. 모두가 염원하는 비핵화와 통일의 그날을 위하여 매 순간 후회 없이 잘 살아야 하는 까닭이 바로 여기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