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해 전 수업을 들었던 졸업생에게서 연락이 왔다. 졸업생의 연락은 언제나 반갑다. 기쁜 마음에 메일을 확인했는데, 아뿔싸. 유네스코 미디어아트 창의도시 포럼에서 발표를 부탁하는 메일이었다. 솔직히 메일은 열어본 그 순간에는 난감했다. 사회 과학을 전공한 내가 예술에 대해 아는 것은 ‘모나리자’뿐인데…. 그래도 수업에 열심히 참여했던 친구였기에 나도 모르게 수락 답장을 보내고 말았다. 내 손가락을 탓해서 뭐하랴. 정신 차리고 발표 준비에 돌입했다. 이왕 참석하는 것 적극적으로 관찰해서 뭔가 하나라도 배우고 오자 마음도 먹었다.

드디어 포럼 당일. 포럼 장소에 도착해 발표 프로그램을 확인하고 참석자들을 둘러보았다. 예술가 뿐 아니라 문화 정책 전공자, 예술 플랫폼 운영자, 미디어아트 국제 행사 기획자 등 다양한 분야에서 일을 하는 전 세계 전문가들이 포럼 참가를 위해 한 장소에 모여 있었다. 이들을 보니 묘한 안도감이 들었다. 예술가만을 위한 행사는 아니구나 하는 위안이었다.

서로 다른 배경의 사람들이 포럼 장소에 모인 만큼 생각하지도 못한 의견이 쏟아져 나왔다. 한 예술 플랫폼 운영자는 기부에만 의존해서는 성장에 한계가 있다고 말하면서, 지속가능한 미디어아트를 위해 제 3의 모델을 고민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한편 정책 전문가는 급변하는 과학 기술과 그것이 사회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이해에 도움이 될 수 있는 미디어아트 작품을 주문했고, 다른 한 예술가는 그림이나 조각과 같이 보관이 어렵기 때문에 어렵게 창작된 미디어아트를 어떻게 소장하고 보관해서 후손에게 물려줄 수 있을 것인지 고민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포럼에 참석하기 전에는 생각하지 못했던 아이디어들이었다. 미디어아트 창의도시 발전을 위해 중요한 주제임이 분명했다.

엉뚱한 아이디어는 다양성에서 나온다. 이번 포럼은 광주 미디어아트 창의도시 협의체에서 기획하고 운영을 했다. 서로 다른 생각과 이해관계를 가진 광주 지역 유관 단체들이 모여 포럼을 주최한 만큼, 포럼에는 다양한 지식을 가진 전문가와 시민들이 초청될 수 있었다. 예술을 잘 모르는 내가 초대된 것도 이런 맥락이었다. 결국 우리는 함께 모여 혼자라면 생각하지 못했을 새로운 아이디어를 나눌 수 있었다.

하지만 서로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만나서 새로운 아이디어를 공유하는 것은 전체 과정에서 절반에 지나지 않는다. 한 번의 포럼으로 나온 아이디어는 휘발성이 강하다. 제시된 아이디어는 구체적 행동으로 실행될 때 의미가 있다. 그런데 포럼에서 제시된 아이디어가 새롭다는 사실이 문제다. 예를 들어, 지속 가능한 미디어아트를 위한 제 3의 길을 찾는 것은 쉽지 않은 미션이다. 새로운 아이디어는 그만큼 실행에 어려움이 뒤따른다. 왜냐하면 보고 따라할 과거의 경험이 없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공적 실행을 위해서 필요한 것들이 있다. 첫째, 미디어 창의도시를 위해 이해당사자들은 계속 만나고 소통해야 한다. 포럼은 그 시작점일 뿐이다. 둘째, 실행 과정은 어렵고 복잡하다. 아마도 더딜 것이고, 그럴수록 사람들은 빠져나가려 할 것이다. 이런 사람들의 참여를 지속적으로 격려해야 한다. 셋째, 이런 때 유용한 것이 공통점을 찾는 것이다. 사람들이 관심을 잃어갈 때, 그래서 만남이 줄어들어 갈 때, 새로운 공통점을 찾아내야 한다. 이것은 실행 과정에 새로운 자극이 될 것이다.

다양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을 만나는 자리는 항상 즐겁다. 하지만 생산적 결과로 이어지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 포럼은 마무리 됐다. 다양한 이야기가 즐겁게 오고갔다. 그렇지만 이것은 시작에 불과하다. 광주에 사는 시민의 삶에 도움이 되는 미디어아트가 되기 위해서는 바로 다음 스텝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