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9일 ‘사람중심 미래교통 시민모임’(이하 시민모임)은 성명서를 통해 지하철 2호선 공론화 절차를 중지하고, 공론 조사의 공정성 확보를 위한 실질적 조치를 취할 것을 공론화위원회에 요구했다. 그리고 공론 조사의 공정성이 확보되지 않으면 더 이상 참여하지 않고 지하철 2호선 저지를 위한 전면 투쟁에 나서겠다는 입장도 밝혔다. 광주 지하철 2호선 공론화가 두 번째 위기를 맞고 있는 것이다.

문제는 10월 10일 여론조사 개시를 앞두고 발생하기 시작했다. 10월 25일까지 진행되는 1차 여론 조사에 유리한 결과를 얻기 위해 광주시가 무리수를 뒀다. 광주도시철도공사가 시내 곳곳에 수백 장의 현수막을 게시하고, 수만 장의 홍보물을 가가호호 뿌렸다. 건설 관련 단체들도 현수막을 게시하고 신문에 광고를 냈다.

핵심적인 문제는 게임이 되지 않는 기울어진 운동장이다. 찬성 쪽은 시민의 세금인 공공 예산으로 열 배가 넘는 홍보물을 쏟아 붓고, 공공 조직이 움직이고 있다. 반대쪽은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돈을 모으고 홍보를 하고 있다. 선거로 비유하면 관권 선거, 불공정 선거인 셈이다. 공론화위원회는 찬성하는 시민단체가 없어서 도시철도공사의 찬성 활동을 허용했다고 한다.

백 보 양보해 도시철도공사가 찬성 역할을 맡는다면, 찬반 양쪽의 홍보 활동 조건을 동일하게 했어야 했다. 도시철도공사가 시민의 세금으로 홍보 활동을 하는 만큼 반대쪽에도 그만큼의 예산을 지원해야 형평성이 맞다. 일체의 홍보를 금지하고 공론화위원회가 TV 토론회를 주관하며 공동 홍보물을 제작해 시민들에게 전달하는 방법도 있었다.

파행을 낳은 두 번째 문제는 광주시장과 공무원들의 중립 문제다. 광주시장은 도시철도 문제의 공론화를 요구한 주체다. 공론 조사의 결과에 따르겠다고 했다. 그러나 여러 차례 언론에 나와 도시철도 2호선의 추진 의지를 피력했다. 공론 조사에 영향을 주기 위한 행동으로밖에 볼 수 없다. 시장이 이렇게 의지를 표명하는 데 과연 공무원 조직이 중립을 지킬 수 있을까?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참여자치 21과 경실련, 정의당, 민주당 등에서 성명서를 발표했다. 광주시는 중립을 지키고, 공정한 공론 조사가 되어야 한다는 입장들이었다.

도시철도 2호선 문제가 공론화를 통해 추진이든 백지화든 결말이 나는 것이 지금으로선 최선이라고 생각한다. 광주 공동체와 민주주의가 한 단계 나아가는 길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처럼 공정성이 깨지면 공론화는 의미를 잃게 된다. 시민의 마음을 모으고, 갈등을 해결하기 위해 시작한 공론화가 또 다른 불신과 갈등을 낳게 된다. 민주주의는 과정의 예술이다. 누가 봐도 공정한 과정이 필요하다. 이 상황에서는 찬성 쪽으로 결정이 된다 해도 반대쪽 시민들을 설득하기 어려워진다. 또 다시 원점이 되는 셈이다.

한 달, 두 달 빨리 가려다 더 많은 시간을 허비할 수 있다. 지금까지의 16년이 그런 과정이었다. 공론화의 일부 파손된 바퀴를 고치고 난 뒤 진행해도 늦지 않다. 공론화가 파행이 되면 다른 여러 문제로 악영향이 퍼질 것이다. 걱정된다. 이용섭 시장이 여러 차례 밝힌 것처럼 광주는 지금 협력과 협치가 절실한 시간이다. 신뢰가 생명줄이다. 밀어붙이면 진행은 되겠지만 또 다른 시민들의 마음을 잃게 된다. 많은 행정 절차가 시장의 뜻을 관철하는 수단으로 인식될 것이다. 시장을 위해서도 시민을 위해서도 좋지 않은 선택이다.

민주당이 중재자, 해결사로 책임 있게 나서주면 좋겠다. 광주시장은 민주당 소속이고, 광주시의회의 절대다수를 민주당 의원들이 차지하고 있다. 이미 민주당은 성명을 통해 광주시의 중립 위반 문제를 지적한 바 있다. 그 문제가 고쳐질 수 있도록 역할을 마무리해주면 좋겠다. 문제가 있는 곳에 정치의 역할이 빛나는 장면을 꼭 보고 싶다. 파행은 막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