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안시성’을 보았다. 고구려 변방에 위치해 있으나 전략적 요충지였던 안시성은 당 태종 50만 대군의 공격에도 두 달여 간 항전하며 끝끝내 지켜냈다.

영화에서는 공수 양면의 실전을 방불케 하는 전투 장면과 여러 전략·무기·전법 등이 화려하게 등장한다. 1400여 년 전 상황이라 흔치 않은 영화 소재이지만 ‘안시성’은 그 자체로 견고해 보였다. ‘양만춘’이라는 성주의 리더십도 돋보였다. 무엇보다 눈에 띄는 것은 성안 주민 모두의 결사항전 의지였다.

안시성 성주가 대단한 호걸이라고는 하나 모두가 공통의 목표와 의지를 가지고 제 나름의 역할을 하지 않았다면 그 자그마한 성이 몇 배의 대군에게 버텨내기 어려웠을 것이다. 시대를 넘어 역사를 만들어내는 것은 결국 모두의 의지로 가능해 보인다.

내년 3월 13일 치를 제2회 전국 동시 조합장선거와 관련, 기부행위 제한이 시작됐다. 흔히들 선거에 출마하는 사람이 금품을 주지 않으면 되는 것 아니냐고 이야기한다. 하지만 선거는 지역 사회 분위기, 주민들의 인식 테두리에서 크게 벗어나기 힘들다.

영화 ‘안시성’을 보며 성주보다 ‘안시성 전체’를 눈여겨본 이유다.

조합장 선거에서 구성원은 바로 조합원이다. 대다수 조합이 직선제를 택하고 있다. 이는 조합원이 주인이라는 의미다. 다수에 묻혀 엑스트라라며 시의에 무관심해서는 안 되는 이유다. 물방울 하나하나가 모여 내를 이루고 바다를 만들 듯이 구성원과 그들의 사고가 시류를 형성하는 것이다.

물론 공직 선거가 아니라서 나하고 관계없는 일이라 여기는 이도 있을 것이다. 전남의 경우 인구 수 대비 20% 정도가 조합 선거인이다. 이 비율은 도시의 동 지역보다는 농어촌의 읍·면으로 갈수록 높아지며, 타 시·도에 비해서도 압도적으로 많다.

선관위가 의무 위탁을 받은 조합장 선거는 생활 주변에 제일 밀착된 선거이다. 따라서 조합장 선거 분위기는 공직 선거에까지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조합 통·폐합이 많이 진행되었다고는 하나 여전히 인력이나 범위 면에서 소규모 조합이 많다. 선거인수가 적어 금품 제공이 득표에 영향을 줄 것이라는 후보자의 잘못된 인식과 더불어 후보자와 조합원간의 친밀한 연고 관계 등에 힘입어 은밀한 금품 제공이 잔존해 있다.

2015년 실시된 제1회 전국 동시 조합장선거에서의 매수·기부 행위 건은 전체 선관위 단속 건수의 38.4%(매수 293건, 기부 762건)를 차지하였다. 특히 전남의 경우는 매수·기부 행위 건이 전체 단속 건수의 46.4%(매수 52건, 기부 112건)에 이르고 있다.

출처를 알 수 없는 궤변으로 지역 경제 활성화와 경로사상을 논하며 한 잔의 막걸리, 약간의 인사치레(돈)를 요구하는 사람들도 여전하다. 받는 사람에게도 50배 이하의 과태료를 부과하는 제도 등이 있으나, 선거 문화가 바뀌지 않으면 제도와 현실의 간극만 벌어질 뿐이다. 소규모 조합이 많은 만큼 위법 행위는 당락에까지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전남선관위는 내년 조합장 선거에서 ‘공직 선거에 준하는 공정 선거 기틀 정착’을 위해 노력할 것이다.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조합원 모두의 공명 선거 의지이다. 자정 노력이 바탕 되지 않는다면 모래성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조합장 선거를 4개월 여 앞두고 튼실한 조합을 위한 구성원으로서의 선거 인식을 지니고 있는지 함께 되짚어보자. ‘아름다운 선거, 튼튼한 우리 조합’이 이번 조합장 선거 슬로건이다. 안시성을 지켜냈던 그 먼 어느 날의 선조들처럼, 공명정대하고 아름다운 선거 과정을 통해 튼튼한 조합으로 건실하게 발전할 수 있도록 조합원 모두의 노력이 필요한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