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리 유치원 명단 공개로 세상이 떠들썩하다. 비리를 폭로한 박용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이번 국정감사의 스타가 되었다. 소송을 걸겠다는 사립유치원장들의 분노에는 아랑곳없이, 박용진 의원의 통장으로 국민들의 후원금이 쏟아져 들어온다고 한다. 그런데 이 사건 뒤에는 1년이 넘도록 비리 유치원들을 추적해온 ‘정치하는 엄마들’이 있었다.

지금 세간에 떠도는 많은 이야기들은 이미 작년 2월, 국무조정실 부패척결추진단이 밝힌 것들이다. 다만 그때는 어떤 유치원이 그런 비리를 저질렀는지 그 이름을 아무도 몰랐다. 국무조정실, 교육부, 보건복지부 어디에서도 그 명단을 공개하지 않았다. ‘정치하는 엄마들’이 작년 12월부터 국무조정실, 전국 17개 시도교육청, 100여 곳의 교육지원청에 정보 공개를 청구했지만 무시당했다. 결국 올해 5월 행정 소송에 나선 후에야 국무조정실은 명단을 내놓았고, 박용진 의원실도 그제서야 움직여 이번 명단 공개 사태가 벌어진 것이다.

‘정치하는 엄마들’은 19대 국회의원이었던 장하나 씨가 한 언론사에 ‘엄마들이여 정치합시다’라는 제목의 글을 쓰고, 그 끝에 자신의 페이스북 주소를 적어둔 것에서 시작했다.

“정치적으로 너무도 많은 문제가 있는데 대표적인 시민단체들이나 여러 노동조합에도 엄마들은 존재하지만 엄마들의 문제로 싸우는 사람은 없었다. 국회의원 재선에 실패하고 혼자 힘으로 엄마들을 조직할 수 없었던 차에 ‘한겨레’ 토요판 연재를 시작하는 첫 글에서 엄마 당사자들의 세력화를 제안하며 모이자고 했다.” 이번 사건에 대한 인터뷰에서 장하나 씨가 한 말이다. 작년 4월 22일 생판 모르던 엄마들이 처음 만난 자리에서 각자 자기 얘기를 하며 많이 울었다고 한다. 그 울음을 담금질해 내어놓은 결실이 이번 사건이기에 그 의미가 더욱 값지다.

이번 사건은 시민운동의 현주소를 되돌아보게 한다. 시민단체나 노동조합에도 엄마들이 많지만 엄마들의 문제로 싸우는 사람은 없었다. 그것을 시민단체나 노동조합의 잘못이라고 탓할 수 있을까? 생활 곳곳에서 느끼는 시민들의 불편을 보다 적극적으로 대변하라고 시민단체에게 요구한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될 수 있을까? 대표적인 시민단체들도 이삼십 년의 세월을 지나는 동안 힘이 많이 빠졌다. 회비 수입이 줄어 한두 명의 상근자도 유지하기가 벅차다. 관공서의 보조금을 받고 각종 위원회나 거버넌스 기구에 참여하면서부터는 감시견의 역할을 제대로 못한다는 비난도 받는다. 평소에는 ‘정치적 중립’을 내세우던 대표들이 선거 때만 되면 정치권으로 들어가 한 자리씩 차지하는 모습을 보아온 시민들로서는 시민단체들을 그다지 신뢰할 수 없다.

자업자득이다. 권력을 비판하고 감시한다며 누워서 침을 뱉은 대가이다. 권력에 대한 비판과 감시는, 그 권력을 잘 쓰겠다는 의지와 함께 하지 않는 한 권력에 대한 멸시로 이어져 정치적 무관심을 키우고, 결국 시민들을 권력으로부터 소외시킨다. 행정과 정치를 제대로 하지 않는다면 언제나 비리는 터지게 마련이고, 시민단체들의 사냥감은 즐비하다. 단체들이 권력을 물어뜯는 모습을 바라보며 시민들은 정치와 멀어지지만, 그 단체의 대표들은 오히려 정치와 더 가까워진다. 그들은 시민들의 정치적 혐오감에 기대어 ‘정치적 중립’을 내세우면서도 결코 ‘정치적 영향력’만큼은 포기하지 않았다. 권력을 비판한다면서 시민들을 정치에서 멀어지게 하고, 또 그런 시민들을 대변한다며 헌신과 희생의 전리품처럼 권력을 가져갔다.

‘정치적 중립’을 내세운 시민단체들이, 정치적 무관심에 기대어 권력을 농락해온 보수 정당들의 조연은 아니었는지 이제는 되돌아볼 때가 되었다. 독재에 맞서 ‘민주화 운동’을 할 때에는 그런 거리두기가 필요했지만, 지금은 정당 활동에 참여해 정부를 통제할 수 있도록 적극 도와야 할 때다. 비판과 감시만으로는 정부를 운영할 수도, 법을 만들 수도 없기 때문이다. 관료와 행정의 볼모가 되지 않고 어떻게 그들을 이끌 수 있는 리더십을 만들어갈지, 시민사회가 고민해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