콜라보라시옹!

희대의 독재자 히틀러가 유럽 정복을 획책하던 1940년 10월 30일, 당시 프랑스 필리프 페탱 총리가 독일 히틀러 총통과 정상회담 후 라디오 연설에서 “오늘 나는 협력의 길로 들어선다”고 선언하였다. ‘콜라보라시옹(Collaboration)’은 협력을 의미하는 프랑스어다.

광주 금남로에 위치한 5·18민주화운동기록관은 민족문제연구소와 공동으로 프랑스의 과거사 청산이 어떻게 이뤄졌는지를 살펴보는 특별한 전시, ‘라 콜라보라시옹’을 열고 있다.

12월 15일까지 계속되는 이 전시는 ‘콜라보라시옹의 주역들’, ‘공공의 적’, ‘경찰 조직의 콜라보라시옹’, ‘문화예술계와 언론계의 나치 부역’, ‘경제계의 나치 부역과 강제 동원’, ‘가자, 전선으로! 독일군과 함께’ 등 8개 섹션으로 나누어 ‘협력’이란 ‘미명’으로 대중을 현혹했던 나치 부역자들의 민낯을 보여주고 있다. 국가 차원의 협력을 선택한 비시 정부 지도자들, 나치 찬양의 나팔수가 된 언론인과 문화예술인들, 나치즘의 파수꾼을 자처한 파리의 ‘콜라보들(협력자들)’의 다른 이름은 부역자다.

부역자(附逆者)!

그렇다. 반역, 국가와 민족과 정의와 인권에 반역하여 불의에 빌붙은 자들이다. 왜 우리 역사에서 4·3항쟁, 여순항쟁, 5·18민중항쟁이 일어나고 수많은 양민이 희생됐는가. 그것은 친일 부역자들과 기득권 세력의 패악질 때문이다.

우리는 친일 부역자 청산에 실패하고 5·18학살 책임자 처벌도 못하고 있지만 프랑스의 과거 청산은 공소 시효나 무조건적 화해가 없다. 2차 세계대전 종전 직후부터 프랑스는 나치 협력 혐의로 모두 35만여 명을 조사했고, 12만 명 이상을 법정에 세웠다. 이 가운데 1500여 명이 처형됐으며 3만8000여 명이 수감됐다. 1945년에는 약식 재판으로 처형된 사람도 9000여 명에 달했다. 지난 1964년 프랑스는 전쟁 중 민간인에 저지른 반인도적 범죄에 대해 공소 시효를 없애 1994년 유대인 처형에 관여한 폴 투비에는 종신형을, 1998년에는 모피스 파퐁은 10년 금고형을 선고받기도 했다.

우리는 어떠했는가.

35년간 식민 지배를 받고도 단 한명의 친일파도 처단하지 못했고, 해방 후나 한국전쟁 시기 양민 학살자들도 처벌하지 못했다. 5·18 가해자들에 대한 처벌 또한 미흡하기 짝이 없다. 5·18로 인한 민간 피해자는 모두 5000명을 넘어서고 있다(5·18 당시 사망자 155명, 부상 후 사망자 110명, 행방불명인정자 81명, 부상자 2461명, 연행구금 부상자 1145명, 연행 구금자 1447명, 재분류 및 기타 118명 등). 엄청난 인명 피해가 발생했는데도 처형된 사람은 단 한명도 없었고, 대법원 선고 형량대로 옥살이를 한 사람도 없다. 전두환을 포함해 겨우 16명이 그것도 가볍게 죗값을 치렀을 뿐이다. 사실상의 5·18 총지휘자 전두환도 무기 징역을 선고받았지만 1997년 12월, 751일 만에 풀려나 멀쩡히 살고 있다.

김영삼, 김대중 두 대통령의 합작으로 전두환의 석방과 사면을 결정했을 때 우리 광주시민들은 피눈물이 났지만 용인해 주었다. 그것은 ‘동서화합’, ‘화해’라는 ‘미명’을 쓰고 나타났다. 화합과 화해는 어떤 조건에서 가능할까. 정략이 아니라 진실과 고백과 참회에 바탕을 둘 때 가능할 것이다.

파리의 ‘끝나지 않은 과거청산’과 광주의 ‘이제야 시작하는 5·18 청산’.

우리는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져야 한다. 프랑스의 모습에서 우리는 과연 무엇을 배울 것인가. 인간이 변하지 않는 한 역사는 진보하지 않는다. 광주시민과 양심 세력이 다시 일어나 전두환을 광주와 민족사 앞에 고개 숙이게 해야 하지 않겠는가.

다시 한 번 5·18 해결의 첫 번째 원칙, ‘진상 규명’의 절실함을 되새겨 본다. 세월은 흘러가도 산천은 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