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정착한 북한 이탈 주민(탈북민)이 현재 3만 2000명에 육박한다. 이들이 다수 거주하는 수도권 지역에서는 지방의원을 배출할 수도 있다는 얘기가 나오기도 한다. 필자는 대학에서 남북한 관계를 강의하면서 탈북민을 초청해 학생들에게 생생한 증언을 들려주곤 한다.

탈북민 A(남·36세)는 북한에서 중학교 수학 교사로 일했다. 교사 월급이 장마당(북한의 시장)에서 쌀 한가마도 살 정도가 못돼 생활고를 걱정하다가 8년 전 중국을 통해 탈북하였다. 그는 남한에 와 같은 탈북민을 만나 연애하다가 1년 전 결혼하였다. 남한에 와 가장 행복했던 순간으로 연애 기간중 애인과 대만으로 해외 여행을 갔던 기억을 꼽았다. 북한에서는 해외는 고사하고 국내 이주도 제한을 받았기에 남한에 넘어와 여권을 받고 해외에 나갈 수 있는 것이 꿈만 같았고, 자유가 이런 것이라는 것을 실감하였다.

탈북민 B(여·48세)는 김정은 정권 출범 이후 남한으로 가족과 함께 왔다. 북한에서는 도서관 사서 겸 조사원으로 근무하였다. 그녀는 남한에서 특정한 직업은 갖지 않고 주변의 소개로 알게 된 교회에 열심히 나간다. 그런데 처음 성경을 접하고, 집에 가서 밤새 잠을 이루지 못했단다. 북한에서 평생 배워 온 김일성 숭배와 주체사상이 성경에서 말하는 하나님 유일 신앙과 너무 똑같아서 충격을 받았단다. 그녀는 교회에서 봉사일을 하며 아직 남한 사회에 적응하는 중이다.

탈북민 C(여·45세)는 초등학교 교사로 있다가 먼저 넘어온 남편을 찾아 남한으로 왔다. 아코디언 연주와 노래를 잘하는 그녀는 북한에서 이른바 ‘기쁨조’에 뽑힐 뻔 했으나, 키가 작아 탈락했다고 한다. 남한에서는 아코디언 연주와 좋은 언변으로 강연 활동을 활발히 하는 편으로, 맨 처음 강연 활동 후 받은 첫 보수(20만 원)에 감격해 집에 가서 펑펑 울었다고 한다.

이들 탈북민들을 접하면서 공통적으로 느낀 점은 살려고 무던히도 애쓴다는 점이다. 이들은 탈북 경위야 어찌됐든 인생을 걸고 넘어 온 사람들이다. 그런데 최근 남북 관계가 개선되고 김정은 위원장에 대한 우호적 평가가 부각되면서 불편하거나 불안하다는 반응을 보인다. 일부 국민들 사이에서 탈북민을 문제가 있어 넘어 온 사람들로 폄하하기고 하고, 앞으로 남북통일 과정에서 걸림돌로 여기는 분위기도 느낀다고 한다. 이는 명백히 잘못된 것이다.

북한 비핵화와 평화적 통일을 위해 김정은 정권과 협상해 나가는 것은 불가피하나, 북한 체제의 폐쇄성이나 노동당 독재 체제까지 미화될 수는 없으며, 이런 북한 체제를 피해 남한으로 탈출한 북한 주민들을 비난해서는 안된다. 우리 헌법과 관련법상으로도 탈북민은 완전한 대한민국 국민이며, 오히려 ‘먼저 온 통일’이라는 관점에서 국내에 잘 정착하도록 적극 도와줄 필요가 있다.

광주와 전남에는 1100여 명의 탈북민이 거주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이들은 국내 입국 후 하나원에서 12주 교육 과정을 수료하고, 희망 거주지로 우리 지역을 선택해 온 사람들이다. 이들 중 절반 이상이 생활 보호 대상자이며, 경제적으로 심리적으로 지역 사회에 적응하는 데 애로를 겪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하나센터나 일부 시민단체가 관심을 갖고 지원하고 있으나, 지자체 차원에서 관심을 갖고 이들의 정착과 자활을 적극 지원할 필요가 있다. 북한에 대한 직접적 교류가 어려운 현실에서 어쩌면 우리 곁에 있는 탈북민을 돕는 것이 더 중요한 일일 수 있다. 추석을 맞아 지자체가 나서 탈북민들에게 조그만 선물이라도 하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