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옥주 광주수필문학회 회장] 다시 생각하는 사람 ‘인’(人)의 의미
2018년 09월 13일(목) 00:00 가가
표의 문자(表意文字) 중에서도 대표적인 글자가 한자(漢字)다. 한자는 사물의 상형(象形)을 기본으로 몇 가지 구성 원칙에 따라 글자를 만들고 글자마다 뜻을 부여했다.
사람들은 ‘인’(人)자를, 땅 위에 두 다리로 버티고 서있는 사람을 상징한 상형 문자로 보고 있다. 글자의 모양만으로 그대로 수긍해 버리기엔 뭔가가 찜찜하다. 설 수 있는 사람만을 사람으로 인정한 듯 싶어서다.
산(山) 자는 산의 형상이요, 내(川) 자는 내의 상형이다. 산과 내는 작아도 커도 산이고 내의 모습에 변화가 없지만, ‘人’ 자는 다르다. 인간은 생멸의 변화가 무쌍하고 성장 과정도 길고 복잡하다.
옛날에는 서보지도 못하고 죽은 사람이 허다했다. 내 어릴 적만 해도 흔한 일이었다. 다소 억지스럽기는 하나, ‘人’ 자의 형태로 직립하지 못한 갓난아이 같은 경우는, 사람이되 사람도 아니다. 때문에 ‘人’ 자가 땅 위에 서 있는 사람의 모습이라는 풀이가 허허롭게 느껴진다. 그렇다면 ‘人’ 자를 상형이 아닌 의미적으로 해석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다.
즉 ‘人’ 자를 두 성의 합일(合一)에 의해 탄생한 존재로 보는 것이다. 사람이 태어나기까지는, 이성 간 믿음과 사랑의 바탕 위에 어떤 희망을 전제로 탄생한 생명체의 상징이 바로 ‘人’이다. 두 획 사이엔 애초에 주종이 없다. ‘人’ 자를 사회적 글자로 보는 이유다.
그런데 최근 최성현 수필가의 ‘시코쿠를 걷다’를 다시 읽으며 새삼스럽게 ‘人’ 자의 다른 풀이에서 흥미를 느꼈다. 처음 읽을 때 그냥 지나쳤던 얘기다. 나이 들면 그만큼 성찰과 사유도 여유를 가지고 다양하게 생각하는지 모르겠다.
일본 시코쿠에는 ‘88개 영장(靈場)’이라는 88개의 사찰이 있다. 모두 쿠카이(空海·홍법대사)가 연 산문이다. 그 본산은 와카야마(和山현) 고야산(高野山)에 있으며 일본 진언종의 성지다. 시코쿠의 88영장은 순례자들을 위해 일련 번호를 붙여 놓았다. 그 연장 거리가 최성현의 수필집에는 1200㎞, 고바야시 시게루(小林 茂)의 ‘四國 88カ所’라는 책에는 1440㎞로 기록되어 있다.
놀랍게도, 이 사찰들을 순례하기 위해 일본 전역은 물론 세계 불자들의 발길이 그치지 않는다. 다는 아니더라도 내세의 극락정토에 들기를 염원하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전용 순례 버스로, 자가용차로, 자전거로, 순례 방법도 다양하다.
순례는 원래 걸어서 하는 것이 원칙, 도중에 죽은 사람들도 꽤 있다. 힘든 길에 노인들이 많은 탓이다. 죽음도 홍법대사의 인도라 믿어 내세가 가까워졌다 느낀 사람일수록 더 열성적이며, 죽는다는 사실도 그렇게 두려워하지 않은 것 같다.
나는 다카마쯔한국교육원에 근무할 때, 아내와 관광 겸 호기심으로 순번 무시하고 단 한차례 돌았을 뿐인데 5년이나 걸렸다. 50회도 넘은 순례자를 만날 때가 있어 그저 놀랄 뿐이다. 최성현 수필가가 이 영장들을 순례하며 기록한 수필집이 ‘시코쿠를 걷다’이다.
작가는 어느 젠콘야도(善根宿·순례객들을 위한 무료 숙소나 싼 가격의 숙소)에서 다카나 요코라는 중년의 순례자와 만나 대화를 나눈다.
요코는 ‘人’의 두 획을 부부의 상징으로 본다. 위의 긴 획은 남자, 아래에 바치고 있는 짧은 획은 여자라는 것이다. 아래 획을 없애면 윗획은 저절로 무너져 남자는 여자 없이는 오래 살지 못하고 홀로 남겨졌을 때의 여명(餘命)은 2년이라 했다. 반대로 남자가 먼저 죽었을 때의 여자는 평균 17년이나 더 산단다. 검증을 거친 바 없는 나름대로의 심리학(?)적 해석이다. 2년과 17년, 무려 15년이란 차의 이유가 뭘까? 아래 막대는 위 막대가 없어지면 금방 고개를 쳐들고 똑바로 일어서게 된단다.
그 글을 읽으며 나는 요즈음의 세태와 ‘人’ 자를 포개 보고 씁쓸히 웃었다. 그 ‘황혼 이혼’이란 슬픈 풍조 때문이다. 황혼 이혼은 대부분 여자 쪽에서 바라고 요구한 모양이다. 오죽했으면 그럴까 싶지만 얼마 남지 않은 여생, 홀로 걷는 황혼 길의 외로움, 서산일락 앞에서 이혼이라니….
좋은 인연이었다고 다시 만나기를 바라고 빌어도 ‘어디서 무엇으로 다시 만날지’ 모르는 다음 세상, 주종 없이 살았던 세월을 약 삼아 조금만 더 참아볼 일이다. 피야 식었을지라도 앞서 갈 이를 위해 눈물 한 방울쯤은 남겨두어야 그간의 정이요, 의리일 터다.
사랑의 시효는 3년을 넘지 못한다 한다. 동행 50~60년이면 달궈졌다 식어버리기 20번도 더했을 세월이다. 17년의 매력 때문에 아내의 마음이 흔들릴까 은근히 겁이 난다.
사람들은 ‘인’(人)자를, 땅 위에 두 다리로 버티고 서있는 사람을 상징한 상형 문자로 보고 있다. 글자의 모양만으로 그대로 수긍해 버리기엔 뭔가가 찜찜하다. 설 수 있는 사람만을 사람으로 인정한 듯 싶어서다.
옛날에는 서보지도 못하고 죽은 사람이 허다했다. 내 어릴 적만 해도 흔한 일이었다. 다소 억지스럽기는 하나, ‘人’ 자의 형태로 직립하지 못한 갓난아이 같은 경우는, 사람이되 사람도 아니다. 때문에 ‘人’ 자가 땅 위에 서 있는 사람의 모습이라는 풀이가 허허롭게 느껴진다. 그렇다면 ‘人’ 자를 상형이 아닌 의미적으로 해석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다.
즉 ‘人’ 자를 두 성의 합일(合一)에 의해 탄생한 존재로 보는 것이다. 사람이 태어나기까지는, 이성 간 믿음과 사랑의 바탕 위에 어떤 희망을 전제로 탄생한 생명체의 상징이 바로 ‘人’이다. 두 획 사이엔 애초에 주종이 없다. ‘人’ 자를 사회적 글자로 보는 이유다.
놀랍게도, 이 사찰들을 순례하기 위해 일본 전역은 물론 세계 불자들의 발길이 그치지 않는다. 다는 아니더라도 내세의 극락정토에 들기를 염원하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전용 순례 버스로, 자가용차로, 자전거로, 순례 방법도 다양하다.
순례는 원래 걸어서 하는 것이 원칙, 도중에 죽은 사람들도 꽤 있다. 힘든 길에 노인들이 많은 탓이다. 죽음도 홍법대사의 인도라 믿어 내세가 가까워졌다 느낀 사람일수록 더 열성적이며, 죽는다는 사실도 그렇게 두려워하지 않은 것 같다.
나는 다카마쯔한국교육원에 근무할 때, 아내와 관광 겸 호기심으로 순번 무시하고 단 한차례 돌았을 뿐인데 5년이나 걸렸다. 50회도 넘은 순례자를 만날 때가 있어 그저 놀랄 뿐이다. 최성현 수필가가 이 영장들을 순례하며 기록한 수필집이 ‘시코쿠를 걷다’이다.
작가는 어느 젠콘야도(善根宿·순례객들을 위한 무료 숙소나 싼 가격의 숙소)에서 다카나 요코라는 중년의 순례자와 만나 대화를 나눈다.
요코는 ‘人’의 두 획을 부부의 상징으로 본다. 위의 긴 획은 남자, 아래에 바치고 있는 짧은 획은 여자라는 것이다. 아래 획을 없애면 윗획은 저절로 무너져 남자는 여자 없이는 오래 살지 못하고 홀로 남겨졌을 때의 여명(餘命)은 2년이라 했다. 반대로 남자가 먼저 죽었을 때의 여자는 평균 17년이나 더 산단다. 검증을 거친 바 없는 나름대로의 심리학(?)적 해석이다. 2년과 17년, 무려 15년이란 차의 이유가 뭘까? 아래 막대는 위 막대가 없어지면 금방 고개를 쳐들고 똑바로 일어서게 된단다.
그 글을 읽으며 나는 요즈음의 세태와 ‘人’ 자를 포개 보고 씁쓸히 웃었다. 그 ‘황혼 이혼’이란 슬픈 풍조 때문이다. 황혼 이혼은 대부분 여자 쪽에서 바라고 요구한 모양이다. 오죽했으면 그럴까 싶지만 얼마 남지 않은 여생, 홀로 걷는 황혼 길의 외로움, 서산일락 앞에서 이혼이라니….
좋은 인연이었다고 다시 만나기를 바라고 빌어도 ‘어디서 무엇으로 다시 만날지’ 모르는 다음 세상, 주종 없이 살았던 세월을 약 삼아 조금만 더 참아볼 일이다. 피야 식었을지라도 앞서 갈 이를 위해 눈물 한 방울쯤은 남겨두어야 그간의 정이요, 의리일 터다.
사랑의 시효는 3년을 넘지 못한다 한다. 동행 50~60년이면 달궈졌다 식어버리기 20번도 더했을 세월이다. 17년의 매력 때문에 아내의 마음이 흔들릴까 은근히 겁이 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