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일보가 발행하는 문화예술매거진 ‘예향’의 다양한 콘텐츠를 ‘굿모닝 예향’ 코너를 통해 광주일보 독자들에게 소개한다. 첫 번째 ‘굿모닝 예향’은 그림으로 만나는 서양화가 한희원의 조지아·아르메니아 여행기다. 작가가 두 나라에서 보고 느낀 풍광과 느낌을 그림과 함께 만나본다. <편집자주>

한희원 작가

언젠가 바람이 마음속으로 찾아 온 적이 있었다. 바람은 알 수 없는 그리움에 빠져들 때 아니 너무나 또렷한 그리움에 헤어나지 못할 때 찾아온다. 상처 난 사람에게 바람이 찾아오는 것은 바람에게 위로의 힘이 있어서 이다. 여행을 생각하면서 바람을 떠올렸다. 아무런 구속이나 제약 없이 아득하고 새로운 세상으로 향하는 동경. 알 수 없는 미지의 세계에서 만나는 또 다른 나. 여행은 떠밀 듯이 떠나지만 평안과 자유로 인도한다. 자유는 위로이다. 처음 만나는 산과 숲, 마을들 그곳에 사는 이방인의 몸짓과 눈빛. 아, 새로운 생명을 만나는 순간 나에게도 그 생명이 전달된다. 이번 여행은 갑자기 찾아왔다. 뜻밖의 동행 제안이었다. 전혀 알지 못하는 생소하기만 한 나라 코카서스 3국. 코카서스 3국은 조지아, 아르메니아, 아제르바이잔이라 불리는 작은 나라들이다. 소비에트 연방에 속해있다 연방이 해체되면서 독립된 러시아 남부에 위치한 나라 정도로만 알고 있는 곳이다.

이번 여행은 코카서스 3국 중 조지아와 아르메니아를 여행한다. 코카서스 3국으로 여행할 때는 보통 조지아의 수도 트빌리시에서 여행을 시작한다. 트빌리시로 가려면 러시아의 모스크바 세레메티예보 국제공항을 거치거나 터키에서 이동한다. 항로 도중에 여행지의 정보를 알려주는 페이퍼를 읽어보았다. 아, 이곳은 사람과 신이 오랜 시간 동안 만나는 신화의 땅이었다. 흑해와 카스피해 사이에서 아시아와 유럽을 연결하는 곳. 고대와 현대까지의 긴 역사 속에서 그리스, 로마, 몽골, 오스만터키, 유럽, 페르시아, 러시아 등의 각축으로 수많은 상처를 안고 있는 나라. 로마 기독교보다 먼저 기독교를 국교로 공인한 초기 기독교 신앙을 지켜온 나라.

‘룸스 호텔에서 바라 본 카즈베기 산’(조지아).

아름다운 고요 조지아의 트빌리시

조지아의 수도 트빌리시는 묘한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고도였다. 1500년의 신화가 간직된 고도의 오래되고 낡은 건물들은 따뜻했고, 수많은 역사적 부침이 있는 나라인데도 사람들은 친절했다. 상처 속에서도 신앙을 잃지 않은 사람들은 그 도시만큼이나 순박했다. 거리는 깊고 묵은 아름다움으로 여행자를 안식시킨다. 트빌리시는 현재와 과거가 므크바리강을 중심으로 공존한다. 시내에는 러시아의 시인 푸시킨이 극찬한 바크마로라는 목욕탕이 있다. 17세기 실크로드를 오가는 상인들도 이 목욕탕에서 지친 몸을 쉬었다. 조지아, 아르메니아 여행은 초기 기독교 유적을 찾는 길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트빌리시를 떠나 천 년 전 은둔의 수도사들이 기거했던 동굴수도원을 찾았다. 동굴에는 암갈색의 바위 사이로 그들의 기도가 배어 있었다. 조지아에 기독교를 전파한 나노성녀의 기도소리가 들리는 듯 했다.

다음날 유럽인들이 가장 가고 싶은 호텔인 룸스호텔로 향하였다. 호텔 정면에는 코카서스 산맥 중 가장 높은 카즈베기산(5038m)이 눈 덮인 모습으로 서 있다. 카즈베기산은 그리스 신화의 프로메테우스가 갇힌 산이다. 산 중간에는 해발 2045ｍ에 게르게티성 삼위일체 교회가 있다. 우리 일행은 호텔 룸스에서 메스피아로 출발하였다. 조지아의 스위스라 불리는 스바네티의 메스티아는 해발 2200ｍ로 유럽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마을이다. 메스티아에는 천 년 전 전쟁을 대비한 탑형의 주거용 방어 요새가 있는데 곳곳에 산재되어 중세 시대의 모습 그대로 존재하고 있다. 조지아에서 잊을 수 없는 일 중 하나는 러시아의 민요 ‘백만송이 장미’의 사연이다. ‘백만송이 장미’는 조지아의 국민화가 프로스마니에 관한 노래이다.

1862년 카프카스 산자락 마을에서 태어난 그는 수도 트빌리스로 무조건 상경한다. 그림 그리는 재주가 있어 간판을 그리는 일을 하게 되었다. 그의 작품은 프랑스 여행객의 눈에 띄어 알려지게 된다. 정식 그림을 배우지 않은 그의 그림은 원시주의라고 불리며 피카소에게도 영향을 미쳤다. 그림이 알려지게 되고 재산도 모으게 되는데 1905년 프랑스 여배우 마르가리타 데 세브가 트빌리시에 와서 노래를 부른다. 화가는 그 모습에 반해 장미 백만송이를 사서 그녀에게 청혼을 한다. 그러나 그녀는 다른 남자와 트빌리시를 떠나고 그는 죽을 때까지 그녀를 그리워하며 그녀의 초상을 그렸다. 그가 죽고 프랑스에서 회고전이 열렸을 때 늙은 여배우는 그의 그림 앞에 서서 하염없이 눈물을 흘린다. 어찌할 수 없는 사랑의 나라 조지아.

‘아르메니아 꽃의 눈물’

사도의 나라 아르메니아

우리 일행은 조지아를 뒤로하고 국경도시인 사다클에 도착하여 도보로 아르메니아에 들어섰다. 노아의 방주가 표류하다 정착했다는 아라라트산이 보이는 수도 예레반으로 가는 산길 도중에 시위대를 만나 차는 더 이상 길을 가지 못하고 멈춰 섰다. 세르쥬 사르키산 총리가 권력을 연장 하려고 하다 국민의 저항에 부딪힌 것이다. 우리 일행은 예레반으로 가는 산길에서 총리의 사퇴 성명을 들었고 시위대는 박수와 환성을 질렀다.

아르메니아는 제1차 세계대전 당시 터키에 의해 150만 명이 학살된 참혹한 역사를 겪은 나라이다. 1915년 4월 24일은 대학살 추모일로 지금도 아르메니아인들은 그날을 추모한다. 예레만 광장 중앙에 있는 호텔은 시위대로 인해 차량이 접근하지 못해 우리 일행은 도보로 시위 현장을 뚫고 호텔에 도착했다.

시위가 끝난 다음날은 4월 24일로 아르메니아 대학살 추모일이었다. 많은 시민들이 꽃 한 송이를 들고 추모 공원을 찾았다. 우리들이 찾은 추모공원은 기념탑 아래 쌓여있는 꽃의 바다에 잠겨있었다. 우리들은 모두 기도를 하고 그들의 영혼은 꽃의 바다위에 춤을 추고 있었다.

‘게르하르드 동굴 수도원’(아르메니아).

아르메니아는 예수의 제자인 바르톨로메오와 타대오가 아르메니아에 와서 기독교를 전파하였다. 최초의 그리스도교 민족이라는 자부심을 가지고 있어 아르메니아 교회를 사도 교회라 한다. AD 301년 국교로 지정되었으니 313년에 국교로 정한 로마제국보다 12년이나 앞선다.

아르메니아 여행은 성지순례의 여행이라 할 수 있다. 성 그레고리오 신부는 아라라트산이 보이는 코비랍 수도원의 지하 감옥에 13년 동안 수감되었다. 노아의 방주가 표류하면서 정박하였다는 아라라트산은 원래 아르메니아 지역에 있었으나 주변 강대국에 의해 터키로 넘겨졌다. 5165m의 설산은 페르시아 전설에 의하면 인류의 발상지이자, 노아가 제단을 쌓고 첫 포도원을 가꾸었다고 전해진다.

아르메니아는 초기 기독교 본연의 성스러움을 볼 수 있어 감동이 더 한다. 데베드 계곡을 사이에 두고 마주 보고 있는 하오파트 수도원과 사나힌 수도원, 아르메니아 기독교 총 본산이자 세계 최초의 교회인 예치마아진의 마더 성당. 마더 성당에는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을 때 옆구리를 찌른 로마병사의 창과 십자가 조각과 노아의 방주 파편이 보관되어 있어 예수가 못 박힌 현장 속에 있는 성스러움을 느꼈다.

‘게르게티성 삼위일체 교회’(조지아).

수도원 중에서 가장 깊은 감동을 준 곳은 게르하르드 수도원이었다.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를 찌른 창 게르하르드 룽기누수의 창을 보관하였다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동굴 벽에 긁힌 수많은 기도가 묻은 자국들은 영혼으로 그린 그림들이었다. 돌아오는 길에 아자트 계곡을 찾았다. 용암이 급격히 식어서 만든 육각기둥으로 규모가 거대하여 세계 최대 주상절리라 한다. 아르메니아에는 해발 1900ｍ에 있는 세반 호수가 있다. 서울시 보다 두 배가 큰 호수로 아르메니아의 생명수인 호수이다. 민물호수로는 세계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호수 중 하나이며 바다가 없는 아르메니아에서는 바다 같은 호수이다. 이곳을 가면 세반바크교회를 지나며 보랏빛 야생화를 만나고 세반 호수에서 잡은 별미인 민물가재를 시식할 수 있다.

예레반으로 돌아와 조각공원 케스케이드 콤플렉스를 찾았다. 아득하게 높은 회색 계단을 만들고 현대 조각들을 배치하였다. 신화의 눈물에서 피어난 아름다운 꽃 조지아, 아르메니아. 그들은 수많은 상처투성인 역사 속에서도 잃지 않은 순박함과 신앙심을 잊지 못할 것 같다. 조지아, 아르메니아는 흑해와 카스피해 사이에 피어난 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