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 최초의 여성으로 불리는 ‘판도라’에게 열어서는 안 되는 상자가 있었다. 금지할수록 소망하고, 금기일수록 깨지는 것은 동서고금이 똑같은 것 같다. 아름답지만 참을성 없는 여인이었던 판도라는 호기심을 이기지 못하고 열어보아서는 안 되는 상자를 열었고, 그 덕분에 인류의 모든 재앙과 불행, 질병, 고통이 인간 세상에 쏟아져 나왔다. 이제 상자에 남은 것은 희망 한 줄기.

지금 우리나라를 휩쓸고 있는 사건도, 개봉되자마자 화제가 되고 있는 영화 ‘판도라’도 결국 누군가 상자의 뚜껑을 열었기에 우리에게 알려지게 되었다. 현실을 압도하는 영화, 때로 영화보다 더 상상을 초월하는 현실 앞에서 망연자실한 적 많지만 그래도 ‘희망’이 있어서 잠시 안도해 본다.

어쩌면 판도라는 오래전부터 인류에게 공공의 적이 되어서인가. 서양미술에서 금기의 상자를 열었던 판도라를 여러 작가가 다양한 모습으로 형상화하였다.

존 윌리엄 워터하우스(1849∼1917)의 작품 ‘판도라의 상자’(1896년경)는 상자를 열고서 무차별적으로 쏟아져 나오는 모든 재앙에 놀란 판도라가 두 눈을 감고 뚜껑을 덮으려는 순간을 그린 그림이다. 이 순간이 우리가 사는 지구가 고민거리로 가득한 세상이 됨과 동시에 우리가 인생의 고난을 헤쳐 나갈 수 있는 길을 제시하는 장면이기도 할 것이다.

존 윌리엄 워터하우스는 로마에서 태어나 영국에서 활동한 화가였던 까닭에 그리스 신화와 전설, 문학을 주제로 한 그림을 주로 그렸다. 특히 문학 속에 담긴 여성들을 그림 속 주인공으로 등장시키면서 전형적인 여성의 이미지를 예술적으로 창조했다.

〈광주비엔날레 전시부장·미술사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