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는 과거와 현재와의 끊임없는 대화다.”

명쾌한 한국사 강의로 스타강사 반열에 오른 설민석 역사 선생의 말이다. 그의 역사강의를 들으면 역사 속 지혜와 교훈이 귓속에 쏙쏙 박히는 듯하다. 흥행하는 영화나 역사적 이슈를 주제로, 비하인드 스토리를 더해 야사적으로 입담을 풀어갈 때 흥미진진함은 친구들과 떡볶이집에 둘러앉아 ‘송중기가 어쩌니 저쩌니…’ 수다를 늘어놓는 재미보다 결코 덜하지 않다.

단재 신채호 선생께서는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 라고 말씀하셨다. 미국의 어느 철학자는 “과거를 기억하지 못하는 자는 과거를 되풀이 한다”라고 말했다. 역사는 단지 과거가 아니라 현재의 스승이고 미래의 거울이다.

“이 연주창 목도리에 지질방석에 옴두루마기를 입고 염병 삼 년을 앓다가 남의 집 대문 앞에서 물 한 모금 못 얻어 마시고 거적을 쓰고 뒈질 놈”

어느 소설에 묘사된 가장 긴 욕이란다. ‘착할 선(善)’을 실천할 학생의 입장에서는 차마 옮겨 적기 힘든 욕설이지만, 일본의 역사왜곡 행태와 되풀이되는 관료들의 망언을 보며 인내해야 하는 우리 국민들의 심정이 저 욕과 같지 않을까.

소설에서는 부유한 집안이 사는 한 마을에 그 부잣집 잘못으로 어려움이 찾아온다. 하지만 그 부잣집은 사과는커녕 얼굴 한 번 내비치지 않았고, 마을사람들이 이 같은 저주 섞인 욕을 했다. 우리나라와 가장 가까이 있으면서도 단 한번 진정 어린 반성을 할 줄 모르는 일본이야 말로 이 욕을 들을 대상자와 다를 바 없다는 것에 반박할 대한민국 국민이 어디 있겠는가.

영화 ‘귀향’은 차마 온전히 볼 수가 없었다. 나라를 강탈하고 민족혼을 말살시키기 위한 일본의 만행, 그 역사의 그늘 아래서 꿈틀대는 민족의 설움과 아픔이 생생이 전해져왔다.

일제강점이 한국의 근대화에 이바지했다는 망언을 비롯해 ‘독도영유권 왜곡 주장’, ‘임나일본부설’ 등 일본의 우경화와 점점 치밀하게 확산되고 있는 역사왜곡은 지하에 계신 김구 선생님께서 ‘버럭’ 노하실 일이다.

중국은 어떤가. 중국은 2002년부터 막대한 돈과 수많은 학자를 동원해 중국 동북 3성 지역(헤이룽장성·지린성·랴오닌성)의 역사와 문화를 체계적으로 연구하는 ‘동북공정’을 추진 중에 있단다. 고구려는 독립된 나라가 아니라 중국의 지배를 받은 지방정권이었다고 왜곡, 결국 우리 민족 최초의 국가 고조선을 비롯한 고구려와 백제의 뿌리인 부여, 역사상 가장 강대했던 고구려, 그리고 뒤를 이은 발해 등 모두 중국의 역사가 되어버리는 것이다.

한반도를 둘러싼 역사왜곡 실상이 이럴진대 국내에서는 이념적 대결양상에 갇혀 역사교과서를 두고 갑론을박이 지루하게 이어지고 있는 듯하다. “이념이 밥 먹여주는 것 아니다”란 대다수 보통사람들의 푸념 섞인 불만에도 귀기울일 일이다. 미국 발전의 근간을 이룬 프래그머티즘을 타산지석(他山之石)으로 삼으면 어떨까.

청소년들의 빈약한 역사의식에 대한 설문조사 결과나 비판적 지적들이 언론을 통해 자주 이야기되곤 한다. 나도 예외는 아니지만 남다른 문제의식을 갖고 역사의식을 높이려 노력하는 편이다. 너와 내가 ‘우리’가 되고 곧 사회를 이루는 중심이므로 나 한 사람의 역사의식 여하가 얼마나 중요한 지 간과해서는 안 될 일이다.

“네가 만약 이 늙은 어미보다 먼저 죽는 것이 불효라고 생각한다면 이 어미는 웃음거리가 될 것이다.”

안중근 의사가 옥중에서 사형집행을 기다리고 있을 때 그의 어머니 조마리아 여사가 아들에게 쓴 편지의 일부분이다. 어머니의 헤아릴 수 없는 큰 마음을 보고 한없이 부끄럽기만 했다. 한순간 충동으로 지면을 빌려 역사의식을 운운하고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수능이라는 교육현실의 굴레에 갇혀 숲을 보지 못할 수는 있다. 하지만 유명 연예인들에 대한 허망한 관심 못지않게 스스로 주체적 역사의식을 강화할 수 있도록 노력하자고 친구들에게 읍소하고 싶다.

선조들이 값지게 물려주신 금수강산과 우리의 고귀한 역사를 온전히 지켜나가는 것이 후손의 도리이고 우리의 책무 아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