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심과 걱정, 좌절을 가거도에서 희망으로!”

다사다난(多事多難)했던 한해를 보내는 끄트머리에 한반도 최서남단인 신안 가거도에서 자기 자신이나 지인이 보낸 편지를 뒤늦게 받는다면 어떤 기분일까?

이메일을 주로 사용하는 까닭에 손 편지 쓰기가 드문 요즘, 편지를 보관해 두었다가 1년에 한번 연말에 맞춰 발송해주는 ‘느린 우체통’이 눈길을 끌고 있다. 화제의 우체통은 신안군 흑산면 가거도에 위치한 ‘송년(送年) 우체통’.

신안군 가거도 출장소는 지난 15일 가거도 현지에서 한해를 보내는 아쉬움과 새해를 맞이하는 ‘희망의 우편엽서 보내기’ 행사를 가졌다.

이날 가거도 출장소는 올 한 해 동안 매일 ‘송년 우체통’에서 수거한 219통의 편지와 엽서 가운데 197통은 주소지로 발송하고, 지정 수취인이 없이 사연만 담은 22통은 지는 해와 함께 소각했다. ‘송년 우체통’에 넣어진 후 길게는 1년여를, 짧게는 수일간 출장소에 보관됐다가 ‘느리게’ 보내진 편지들이다. 발송된 편지중에는 미국과 일본으로 간 것도 1통씩 있었다.

신안군이 ‘송년 우체통’을 세운 때는 지난해 6월. 가거도를 찾는 관광객들이 근심과 절망·좌절 등 어렵고 힘든 사연을 편지에 담아 지는 해와 함께 떠내 보내고, 밝고 희망찬 미래를 맞이하기를 바라는 취지에서 7600만원의 예산을 들여 ‘송년 우체통’을 설치했다.

바다제비를 형상화한 ‘송년 우체통’은 너비 1.49m×폭 88㎝×높이 3.12m 크기로, 가거도 서쪽으로 팔을 내민 섬등반도에 세워졌다. 독실산 등산로 입구로 바다새(바다제비·뿔쇠오리·슴새) 번식지인 구굴도(천연기념물 제341호)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곳이다.

군은 관광객들이 ‘송년 우체통’을 많이 이용할 수 있도록 가거도 8경 등 사진을 넣은 10여 종류의 우편엽서를 제작해 숙박업소와 군 출장소·가거도우체국·쾌속여객선, 유관기관·단체 등 25곳에 비치했다. 또한 목포우체국과 사서함 사용계약을 체결해 가거도를 방문하지 않고 육지에서도 가거도 ‘송년 우체통’을 이용할 수 있도록 했다.

양모(광주시 동구)씨는 “암 투병으로 힐링을 위해 청정지역 가거도를 찾았다가 우연히 ‘송년 우체통’을 보고 내가 살아온 52년의 세월과 건강회복의 소망을 편지에 담았다”며 “편지의 소원이 꼭 이루어지리라 믿는다”고 말했다.

발송된 편지들은 밀봉돼 있어 사연을 직접 살펴볼 수는 없다. 하지만 가족들의 건강과 자녀의 취업, 남북통일 등 갖가지 사연들을 편지에 담아 ‘송년 우체통’에 넣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고경남 가거도 출장소장은 “전국 각지에서 많은 힐링객들이 가거도를 방문해 ‘송년 우체통’에 편지를 넣었다. 수거한 219통 중 90%는 가거도 현지에서, 나머지 10%는 육지에서 사서함을 이용해 보낸 편지”라며 “가족이나 지인들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보내고, 연말에 본인들이 직접 받아보는 새로운 느낌을 갖기 위한 사연들이 많을 것 같다”고 말했다.

가거도는 주민 500여명이 살고 있는 우리나라 맨 서쪽 섬으로, 목포항에서 쾌속선으로 4시간이 걸리며 연간 4만여명의 관광객이 찾고 있다.

/신안=이상선기자 ssle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