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청량리에서 직업소개소를 통해 완도 신의도 염전을 소개받은 김모씨. 그의 소식을 염전 주인이 가족에게 알렸지만 김씨를 찾아오는 사람은 없었다. 노숙을 하다 직업소개소를 통해 신의도로 온 또 다른 김모씨의 가족은 염전 주인에게 “임금을 주지 않아도 좋으니 데리고만 있어 달라”며 각서까지 써줬다.

또 신의도 염전에서 일을 한 최모씨, 조모씨 등 6명의 임금은 가족 명의로 월급이 입금됐고, 한 지적장애 3급의 염전 노동자의 임금, 기초생활수급비, 장애인연금은 그의 가족이 관리하고 있었다.

지난 2월 전국을 떠들썩하게 했던 ‘염전 노예’ 사건의 이면에는 가족의 무관심이 도사리고 있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강압적인 신체 구속보다 더 무서운 장애인에 대한 사회적 편견과 가족의 외면이 화를 키웠다는 것이다.

11일 신안군은 “지난 9일 서울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염전지역 장애인 인권침해 조사결과 보고 및 대책마련 토론회’에서 이 같은 조사 내용이 발표됐다”고 밝혔다.

흔히 ‘염전지역 장애인 인권침해 사건’으로 불리는 염전 장애인 노동 문제는 지난 2월 신안군 신의도의 한 염전에서 임금을 받지 못한 채 중노동과 폭행에 시달리던 한 남성이 어머니에게 ‘살려 달라’는 편지를 보낸 일을 계기로 세상에 알려지게 됐다.

이에 따라 26개 장애인단체로 구성된 ‘염전노예 장애인사건 재발방지를 위한 공동대책 위원회’와 국회 장애인복지포럼, 새정치민주연합 을지로위원회 등이 그동안 실태조사를 펼쳤고, 대책마련 토론회를 연 것이다.

이날 토론회에서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피해자 가족 현황 파악이 가능한 총 61명의 피해자 중 부모, 형제가 있는 경우가 47명(77.1%)으로 나타났다. 이 중에는 피해자가 염전에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가족들이 방치하거나 또는 가족들이 피해자를 자발적으로 염전에 맡기고 그 임금을 받아간 사례도 많았다.

그동안 잘못 알려진 것처럼 감금과 폭력이 난무하는 ‘노예’의 수준이 아니라 대부분 가족이 있으며 염전에서 일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아는 경우도 많았다는 것이다.

일부 폭력도 확인됐다. 또 피해자 중 원활한 응답이 가능한 55명 중 폭언·폭행 피해 경험이 있는 경우는 53명(96.4%)에 달했다.

이들의 염전 유입 경로로는 직업소개소를 통해 염전으로 유입된 경우가 조사에 응답한 54명 중 34명(62.7%)으로 가장 높게 나타났다.

조사 대상자들 중 휴대전화를 가지고 있는 사람은 16명(25.4%)으로 조사됐다.

경찰 등의 조사가 본격화되자 일부 추악한 염주들의 행태도 드러났다.

경찰 조사가 시작되자 한 염전 주인은 500만원을 최모씨(지적장애 2급)의 속옷에 꿰매주고는 무작정 버스에 태워 인천으로 보내버렸다. 고향이 인천인 것만 기억하던 최씨는 경찰에 의해 발견되어 17년 만에 가족을 찾을 수 있었다.

재발 방지를 위한 해결 과제도 제시됐다.

이문희 한국장애인단체총연맹 사무차장은 “장애인을 외면하지 않도록 장애인 가족을 위한 지원책이 늘어야 하고, 적정한 직업훈련과 직업소개가 이뤄질 수 있도록 장애인 고용정책도 근본적으로 바꿔야 한다”고 지적했다.

/신안=이상선기자 ssle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