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해가 지는 것을 43번이나 보았어.”

프랑스 작가이자 비행사인 생텍쥐페리(1900∼1944)의 대표작 ‘어린 왕자’에 나오는 인상적인 대목이다. 어린왕자가 사는 소행성 B-612호는 워낙 작은 별이기 때문에 의자 방향을 조금만 돌려놓아도 언제든지 해지는 광경을 바라볼 수가 있다. ‘지구별’에서는 비행기를 타지 않는 이상 하루 한차례만 해가 뜨고, 지는 모습을 볼 수 있을 뿐이다.

2013년, 한해의 끄트머리에서 전북 부안 변산으로 해넘이를 보기 위해 길을 나선다.

◇내·외변산 볼거리 다채로워=서해로 불쑥 튀어나와 있는 변산반도는 많은 관광명소와 호랑가시나무·꽝꽝나무·미선나무 군락 등 희귀식물 등을 품고 있어 1988년 국립공원으로 승격됐다.

흔히 변산반도 내부의 남서부 산악지를 내변산, 바깥쪽 바다를 끼고 도는 지역을 외변산이라고 부른다. 산은 산대로, 바다는 바다대로 독특한 맛을 준다. 더욱이 지난 2009년에는 변산반도 테두리를 따라 걷는 ‘부안 마실길’(길이 17.5㎞)도 조성됐다. ‘바다와 대화하고, 갯벌과 벗하며’ 걷는 도보 길이다.

내변산에는 직소폭포와 울금바위와 같은 절경 외에도 내소사, 개암사 등 유서깊은 사찰이 자리하고 있다. 또 외변산에는 해식단애(海蝕斷崖)의 절경을 이루는 채석강(전북도기념물 28호)이 대표적이다.

변산은 최고봉인 의상봉 높이가 해발 509m에 불과하지만 바위와 숲이 어우러져 어느 산 못지않게 산행의 묘미를 제공한다. 바다를 가까이에 끼고 있기 때문에 날 좋은 날은 서해쪽 시야가 탁월하다.

◇솔섬, 서해안 3대 일몰 명소=솔섬은 부안군 변산면 도청리에 자리한 전북 학생 해양수련원 앞바다에 있는 자그만 섬이다. 섬 잔등에 그리 크지 않은 토종 소나무들이 옹기종기 자리하고 있다. 강화도 장화리, 충남 안면도의 꽃지와 더불어 서해안의 3대 일몰 명소로 꼽히는 곳이다.

변산반도는 서해로 돌출한 지형과 해안 일주도로 덕분에 어느 장소나 해넘이를 볼 수 있다. 하지만 망망대해로 떨어지는 일몰보다 솔섬 너머로 지는 일몰은 한 폭의 그림을 제공한다. 일몰 무렵 수십 명의 사진작가와 가족단위 탐방객들이 이곳을 찾는다. 두꺼운 방한복을 차려입은 사진작가들은 삼각대 위에 카메라를 세팅하고, 부부나 연인 등 탐방객들은 어깨 위에 담요 등을 두른 채 서녘 하늘을 응시한다.

서편 하늘을 가로지르는 불마차는 바다를 향해 서서히 내려간다. 솔섬은 실루엣으로 변하고, 하늘빛 역시 시나브로 붉게 물든다.

연말에 보는 해넘이는 새로운 의미를 부여한다. 매일같이 뜨는 해였지만 12월의 일몰은 하루, 하루가 아쉬운 까닭이다.

영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1939년 작품)에서 주인공 스칼렛 오하라는 “내일은 내일의 해가 떠오른다”며 새로운 출발을 다짐한다. 다사다난(多事多難)한 묵은 해보다 좋은 일만 가득한 새해를 꿈꿔본다.

**여행 메모

광주 시내에서 부안 솔섬까지는 90여㎞로, 1시간 30여분이 소요된다. 광주 톨게이트∼장성JC∼고창JC를 지나 서해안 고속도로로 바꿔탄 후 줄포 톨게이트로 빠져나온다. 전북 학생해양수련원에 들어서면 바로 눈앞에 솔섬이 놓여있다. 주말인 12월 28일(부안 기준) 해지는 시각은 오후 5시 27분이다.

/글·사진=송기동기자 song@kwangj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