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들어 한여름 무더위가 연일 맹위를 떨치고 있다. 38도에 육박하는 찜통 더위속에서 ‘푹푹 찐다’는 표현이 절로 실감난다.

광주 근교 머지않은 거리에 바쁜 와중에도 잠시 짬을 내 땀을 식힐만한 명소가 자리하고 있다. 한여름 100여일간 핀다는 배롱나무(백일홍)로 널리 알려진 담양군 고서면 산덕리 후산마을에 위치한 ‘명옥헌 원림’(鳴玉軒 苑林·명승 제58호)이다. 바깥 공간과 구분 짓는 담장이 있으면 ‘園林’, 담장 없이 바깥과 소통하고 있으면 ‘苑林’이라고 한다.



◇꾸밈없고 소박한 민간정원= 명옥헌 원림은 자연을 거스르지 않고 그대로 담아내 소쇄원과 더불어 조선시대 아름다운 민간정원으로 꼽힌다.

이곳은 조선중기 문인 명곡 오희도(1583∼1623)의 넷째 아들 장계 오이정(1619∼1655)이 관직에 진출했으나 천연두에 걸려 미처 뜻을 다 펴보지도 못한채 세상을 떠난 선친을 기리기 위해 만든 정원이다. 정자옆 계곡에서 흐르는 개울물 소리가 마치 옥구슬(玉)이 부딪치는 소리처럼 들린다(鳴) 해 ‘명옥헌’ 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정면 3칸·측면 2칸의 명옥헌 옆으로 졸졸 흐르는 계곡의 물을 받아 작은 연못을 꾸몄다. 네모난 연못 한 가운데에는 동그란 작은 섬이 있는데 이런 디자인은 당시 사람들의 ‘하늘은 둥글고 땅은 네모지다’는 우주관, 천원지방(天圓地方) 사상을 담은 것이다.

마을앞 주차장에서 바라보면 명옥헌은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마을을 가로질러 5분여 걸은 후 언덕을 넘어서면 ‘아! 예쁘다’하는 탄성이 절로 나올 정도로 붉은 빛깔이 시선을 잡아끈다.

연못 주위에는 전국에서 온 많은 남녀노소 사진작가들이 촬영에 열중하고 있었다.

서울에서 다음카페 ‘빛을 찾아서 다니는 사람들’ 회원 7명과 함께 온 임익장(71)씨는 “이렇게 아름다운 명승이 있는지를 미처 몰랐다. 백일홍 반영도 아름답고, 매미소리와 풍경이 잘 어울린다”고 말했다.

◇100여일간 릴레이로 붉은 꽃 피워=탁한 연못에 반영된 붉은 빛깔 수면 위를 많은 소금쟁이들이 장난치듯 모였다 흩어지기를 반복한다..

“…한 꽃이 백일을 아름답게 피어 있는 게 아니다/수없는 꽃이 지면서 다시 피고/떨어지면 또 새 꽃봉오릴 피워올려/목백일홍 나무는 환한 것이다/꽃은 져도 나무는 여전히 꽃으로 아름다운 것이다…”(도종환 시 ‘목백일홍’ 중에서)

백일홍은 7∼9월 한여름에 100여일간 피기때문에 얻은 이름이다. 또 멀리 중국에서 시집온 까닭에 자미화(紫微花)라고도 하며, 가느다란 줄기가 약한 바람에도 살랑살랑 흔들리기에 ‘간지럼 나무’라고 부르기도 한다. 특히 줄기가 매끄럽고 미끄러워 일본에서는 원숭이도 미끄러지는 나무라는 뜻에서 ‘원숭이 미끄럼나무’라고 부른다고 한다. 하지만 배롱나무(백일홍) 꽃이 100일간 지속해서 피는 것은 잘못 알려진 것이다. 백일홍 꽃이 7월부터 9월까지 3개월여를 이어달리기로 피고지기 때문에 백일을 피는 꽃으로 착각하는 것이다.

명옥헌 정자에 앉아 난간에 기댄채 원림을 내려다 보면 붉은 빛깔이 눈앞에 가득 펼쳐진다.

하지만 명옥헌 일대는 피서객뿐만 아니라 한여름 곤충들의 보금자리이기도 하다. 시선을 낮춰보면 ‘아시아 실잠자리’가 짝짓기를 하고, ‘홍점알락나비’와 ‘나비 잠자리’가 너울너울 날아다닌다.

염천(炎天)과 폭염(暴炎), 땡볕… 어떤 단어로도 지금의 무더위를 표현할 수 없지만,그래도 가을은 한발 한발 다가오고 있으리라.

/글·사진=송기동기자 song@kwangj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