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월의 봄햇살이 예사롭지 않다. 불과 며칠 전까지 꽃샘 추위가 몰려온 듯 싶던 날씨가 30도를 육박하는 후텁지근한 한여름으로 돌변했다.

정읍IC를 빠져나와 김제방향으로 차 머리를 돌려 국도 29호선을 타고 정읍시 영원면 장재리에 자리한 ‘송참봉 조선동네’로 향하는 노정은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는 듯한 느낌을 준다. 시가지를 벗어나 영농을 준비하는 널찍한 들녘이 펼쳐지면서 황토현 전적지와 동학혁명 모의탑 등 유독 동학 관련 유적 푯말이 눈에 띈다. 지금으로부터 120여년전, 차를 타고 손쉽게 통과하는 고부 일대는 변혁을 꿈꾸는 농민들의 열기와 함성이 가득한 곳이었다. 정읍시청에서 직선거리로 12.9㎞ 떨어진 ‘송참봉 조선동네’는 타임머신을 타고 100년전 조선시대로 돌아간 작은 마을이다. 장작불 지피는 구들장방에서 묵으며 100년 전 선조들의 생활을 고스란히 체험할 수 있는 곳이다.

◇100년전 조상은 어떻게 살았나=마을어귀에 들어서자 수수한 한복 차림에 탕건을 쓴 촌장 송기중(65)씨가 손님을 맞는다. 이곳에서 송씨는 ‘촌장’ 또는 일명 ‘송참봉’으로 불린다.

‘송참봉 조선동네’는 서울에서 가구제조업을 하던 사업가 송기중(65)씨가 사재를 털어 고향 인근에 만든 농촌관광 휴양지 겸 농촌교육 농장이다. 광주에서 초·중학교를 마치고 서울로 올라가 가구공장을 35년정도 운영하던 송 대표는 1995년께 ‘귀향해 전통 민속마을을 만들겠다’는 결심을 했다. 이어 2005년 8월부터 본격적으로 사업에 착수해 3년후인 2008년 12월 마을 문을 열었다. 건립지는 본래 월송동(月松洞)이라는 큰 마을이 있었으나 50여년전 완전 멸실돼 논밭으로 변해 버린 곳이다. 민속마을은 3만3057.85㎡(1만여 평) 규모로, 25억원의 설립비용이 송 촌장의 주머니에서 나갔다.

송 촌장은 “어려서 정읍을 떠났지만 항상 고향과 옛 것에 대한 그리움이 컸다. 우리 주변에서 할아버지·할머니 세대의 흔적들이 하나둘 없어지고 있다. 당신들은 불편하지만 자식들을 생각하며 살았다. 할아버지·할머니는 ‘삶의 스승’이고, 삶의 방향을 제시했다”며 “도시인들이 전라도에 와서 맛있게 먹고, 편히 쉬고 ‘전라도 좋구나’ 인식할 수 있도록 보탬이 되고 싶어 선조들의 생활 방식 그대로 사는 마을을 만들게 됐다”고 취지를 설명했다. 송 촌장의 할아버지가 참봉을 지내 자연스럽게 ‘송참봉’으로 이름짓게 됐다고 한다.

이곳에서는 아궁이에 불을 때 가마솥 한 가득 쌀밥을 짓고, 장독대 옆 주막집 굴뚝에는 밥짓는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난다. 낮이면 아이들이 삼삼오오 모여 그네를 뛰고, 밤이면 구들장을 덥혀 뜨끈한 온돌방에서 잠을 청할 수 있다. 주막 뒤안에는 옹기종기 모여있는 100여개의 옹기와 초가집이 어우러져 멋진 풍경을 연출한다.

◇장작 지피는 구들방에서 하룻밤=송 촌장은 전통마을을 만들면서 100년전 옛집을 짓기 위해 헌집에서 나오는 기둥과 구들장을 구해 꼼꼼하게 다시 초가집으로 변모시킨다는 원칙을 지켰다. 이렇게 헌집 60여채를 헐어 휘어진 나무기둥에 지푸라기와 흙을 섞어 벽을 만들고, 지붕엔 짚으로 엮은 이엉에 용마루를 얹어 만든 초가집 28채를 완공했다. 마을 공사는 옛 가옥에 대한 생생한 고증이 필요해 전문 인부가 아닌 인근 마을 할아버지·할머니들이 참여했다. 앞으로 2∼3채를 더 지을 구상을 갖고 있다. 초가마다 숨바우 주막, 살구나무집, 쌍금이네, 아산댁, 달근네, 참봉집과 같은 이름표를 붙여 이채롭다.

양반가의 번듯한 기와집과 관가를 중심으로 조성된 다른 민속마을과 차별화된 초가마을이다. 전기시설도 지중화해 겉에서 보이지 않도록 배려했다. 집과 집 사이에는 꽃사과와 살구, 감나무 등을 식재했다.

송 촌장은 “이제 동네모습이 난다. 방문객들이 ‘집이 몇년 됐냐, 한 백년됐냐’하고 물어보기도 한다”고 말했다. 지금도 망건에 한복을 입고서 담배꽁초를 줍고, 잡초를 뽑고, 시설을 보수하는 등 구슬땀을 흘린다. 매년 초가 이엉을 이어야 하는데 이를 2인1조로 할 수 있는 할아버지들이 적어 애로를 겪는다고 한다. 또한 인건비와 운영비만도 한달에 3500여만원이 들어간다.

‘송참봉 조선동네’ 개관이후 가족들과 함께 초가집에서 묵으며 조선시대 서민생활을 체험하려는 도시인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1박2일’과 ‘런닝맨’ 등 예능 프로그램에서도 호평을 받았다.

어버이날을 맞아 자녀들과 함께 마을을 찾은 장복순(82·김제시)씨는 “도구통(절구통), 오강, 다듬이돌을 보니 옛 생각이 난다. 옛날에는 사기그릇 한그릇 가득 밥을 먹어도 배가 안 부르더라”며 활짝 웃었다.

초가집 숙박비는 4인가족 기준 4만원이다. 현재 크고 작은 방 41개에서 220명이 동시에 묵을 수 있다. 무엇보다 ‘두부 버섯전골’과 ‘토종닭 백숙’ 등 토종 음식도 별미다. 예약 문의 (063)532-0054

/정읍=글·사진 박기섭기자 parkks@kwangj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