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이 지났지만 한낮의 볕이 아직은 따갑기만 하다. 하지만 바다처럼 푸른 하늘과 살랑살랑 불어오는 가을 바람은 어디론가 떠나고 싶게 마음을 간질인다. 가을의 주인공이 단풍이라지만 아직은 그 색을 갖추기에는 시간이 더 필요하다. 하지만 봉우리를 틔우기 위해 가을을 기다려온 꽃들이 있다. 국도변에 핀 코스모스를 따라 가을 꽃들을 찾아 떠나보자.

학원농장 메밀꽃밭

◇ ‘하얀가을’ 고창 학원농장

“끝없이 펼쳐지는 하얀 메밀꽃밭에서 가을의 정취를 만끽하세요.”

지난봄 청보리 물결이 장관이 이뤘던 고창 공음면 선동리 학원농장은 어느새 솜털처럼 하얀 메밀꽃이 능선을 뒤덮었다. 이제 막 꽃망울을 터뜨리기 시작한 메밀밭은 마치 흰 소금을 뿌려 놓은 듯한 장관을 연출한다.

이효석의 소설 ‘메밀꽃 필 무렵’으로 유명한 강원도의 봉평이 울창한 숲을 배경으로 핀 메밀꽃으로 유명하다지만 호남평야의 광활한 들판에 자리한 학원농장의 메밀밭에는 비할 바 아니다.

1960년대 초반 미개발 야산 10만 평을 개간해 농사를 짓기 시작한 학원농장은 지난 2003년 본격적으로 메밀을 심게 됐다. 이후 온 들판이 소금을 뿌린듯한 흰 꽃 천지가 되었고, 삽시간에 소문이 퍼져 해마다 가을이면 농장 안팎의 길이 메일만큼 많은 관광객이 찾는다.

이제 막 꽃망울을 터뜨리기 시작한 메밀밭은 마치 흰 소금을 뿌려 놓은 듯한 장관을 연출하고 있다. 곧 남은 메밀꽃 봉우리들이 흐드러지게 피어 절정을 이룰 것으로 전망된다. 오는 17일부터 다음달 3일까지는 메밀꽃 축제도 진행된다.

농장의 잘 정돈된 산책로를 따라 넓은 메밀꽃밭 속을 거닐다 보면 자연스레 꽃과 동화되게 된다. 메밀은 본래 양봉용으로 쓰이는 밀원식물이다. 때문에 꿀 향기가 온 농장을 휘감는다. 꿀 냄새를 맡으며 걷는 길은 황홀경 그 자체다. 도시에서는 볼 수 없는 멋진 경관에 보는 이들은 누구나 시인이 되고 사진작가가 된다.

학원농장 해바라기꽃밭

메밀밭 뒤쪽에 자리 잡은 노란 해바라기꽃밭도 초가을 학원농장의 그림 가운데 하나다. 가을 햇살을 따라 고개를 돌리며 서있는 해바라기가 동화 속 세상을 만든다. 초가을 흰 구름이 두둥실 떠 있는 날은 말할 나위가 없습니다.

◇ ‘붉은가을’ 함평 꽃무릇

꽃무릇은 9월을 가장 정열적으로 수놓는다.

하지만, 그 매혹적인 색과는 달리 꽃말은 쓸쓸하기만 하다. 왕관처럼 화려한 꽃이 지고 나서야 잎이 나와 꽃과 잎이 만나지 못하는 것을 비유해 ‘슬픈 추억’이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어쩌면 가을의 정서와 가장 잘 어울리는 꽃이라 할 수 있다.

들판이 아니라 단풍나무 그늘 아래 숨어 무리를 지어 핀다고 하여 이름 붙은 꽃무릇. 불갑산 앞뒤로 기대있는 용천사와 영광 불갑사, 그리고 고창 선운사는 3대 꽃무릇 자생지로 손꼽힌다.

그중 함평은 한국의 백경 중 일경에 속하는 약 40만 평의 꽃무릇군락과 산제비 나비, 꽃무릇 공원을 자랑한다. 이곳을 배경으로 지난 2000년부터 매년 9월 꽃무릇 축제가 열리고 있다. 올해도 어김없이 17∼18일 이틀간 꽃무릇 공원에서 꽃무릇 큰잔치가 열릴 예정이다.

용천사를 찾아 들어가는 초입에서부터 이파리 없이 꽃대만 쑥 올라와 있는 꽃무릇과 인사를 나누게 된다. 4㎞에 이르는 모악산 등산로와 용천사 진입 도로인 신해선 양옆에 꽃무릇 꽃길 조성되어 찾는 관광객으로 하여금 탄성이 나오는 천혜의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있다.

지난해 이미 가본 사람이라면 흐벅지게 피어있는 장관을 생각하며 설레게 되고, 초행길이라면 그 붉은빛에 기대를 잔뜩 품게 된다. 고즈넉한 산길을 따라 걸으면 야트막한 산자락에 열을 맞춘 듯 잘 정돈된 꽃무릇이 시선을 사로잡는다. 그리고 가을 하늘 아래 유난히 붉다.

/김경인기자 kki@kwangj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