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은 추운 날씨 탓에 여행을 통해 진한 추억을 남기기 힘들다. 하지만 철마다 각기 다른 매력으로 아름다움을 선사하는 남도의 겨울은 온화한 기온으로 아늑한 낭만을 선사한다. 새해 남도 여행으로 좋은 추억을 만들어 보는 것은 어떨까?

◇ ‘생태투어 1번지’ 순천만=겨울 순천만은 단아하다. 해질 무렵, 혹은 새벽녘에 순천만에 드리운 노을과 안개는 화려한 군무의 탐스러운 배경이 된다.

고흥반도와 여수반도가 만들어 낸 순천만은 하루에도 여러 차례 모습을 바꾸며 마음을 뒤흔든다. 어느 시인은 순천만의 노을에 감동해 무릎을 꿇었다고 표현하기도 했다.

안개와 노을을 배경으로 순천만의 몽환적인 분위기를 더하는 게 겨울 철새들이다. 세계 5대 연안습지인 순천만은 철새들에게는 천혜의 서식지다. 이 일대에는 흑두루미, 재두루미 등 천연기념물을 비롯해 큰고니, 황새 등 150여 종의 조류가 서식한다.

최근 순천만 일대가 ‘생태투어 1번지’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순천만의 넓은 갈대 군락과 함께 때 묻지 않은 주변의 논과 칠명초, 갯벌 등은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 갈대밭을 탐방하는 길목은 겨울이면 고스란히 철새를 보는 코스로 연결된다. 물길 따라 와온해변까지 다녀오는 선상투어와 나무데크, 갈대숲을 지나 용산 전망대까지 다녀오는 도보투어 때는 철새의 화려한 날갯짓을 덤으로 감상할 수 있다.

순천만 자연생태공원 안은 다양한 체험거리로 채워진다. 갈대 열차를 타고 갈대둑길을 따라 순천만의 풍경을 감상할 수 있다. 당일 혹은 1박2일로 진행되는 순천만 생태투어는 자세한 설명과 함께 관광객들을 순천만만의 낭만의 세계로 초대한다. 별빛 트레킹 프로그램은 용산전망대에서 아름다운 일몰을 감상하고 노을과 별빛, 달빛을 받으며 갈대숲 탐방한 뒤 천문대를 방문하는 코스로 꾸며진다.

순천만에서 받은 감동의 파문은 순천 선암사로 이어진다. 선암사는 현대식으로 크게 고친 흔적이 없는 사찰이다. 문화재로 지정된 가장 오래된 해우소 외에도 절 입구 무지개다리, 승선교와 강선루, 수령 600년 된 매화나무 등이 볼거리다.

해거름의 낙안읍성은 운치를 더한다. 굴뚝에서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밥 짓는 연기와 담장 넘어 퍼지는 구수한 장국 냄새와 함께 순천 여행을 마무리해보자.(순천시청 관광진흥과 061-749-3328)

◇ 천불천탑의 성지 화순 운주사=화순 도암면 대초리에 자리한 운주사만큼 독특한 절이 있을까. 운주사는 우리에게 천불천탑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언제 어떻게 이렇게 수많은 부처들이 만들어졌는지, 기묘한 석탑은 누가 세웠는지에 대한 궁금증을 자아내는 신비로운 절이다.

운주사의 주인은 절 곳곳에 놓인 불상들이다. 크기도 다르고 얼굴 모양도 제각각이다. 홀쭉한 얼굴도 있고 동그란 얼굴도 있다. 코는 닳았고 눈매는 희미하다. 눈, 코, 입이 단순하게 선만으로 처리된 부처의 얼굴도 있다. 근엄한 표정은 찾아볼 수 없다. 하나같이 우리 이웃들의 얼굴을 보는 듯 소박하고 친근하다.

운주사에는 옛날에는 천불천탑이 있었다고 하지만 현재 남아있는 석탑은 21기, 돌부처는 100여 기다. 일제 때까지도 지금보다 4∼5배는 더 많았다고 한다. 이 가운데 단연 돋보이는 부처는 한 쌍의 ‘운주사 와형석조여래불’이다. 크기는 각각 12.7m와 10.3m로 국내의 와불 중에는 규모가 가장 크다. 이 와불이 일어서는 날이면 ‘새로운 세상’이 온다고도 전해진다.

이왕 화순까지 내려갔다면 절에서 하루 이틀 정도 머물러 보는 것은 어떨까. 쌍봉사는 연중 템플스테이를 운영하고 있다. 절 아래 숲 속 공터에서 참선을 하다 보면 바람이 지나가는 소리, 나뭇잎이 구르는 소리, 물 흐르는 소리까지 또렷이 들린다. 그렇게 한참 동안 숲의 소리를 듣고 있다 보면 어느새 자기 내면의 소리까지 들린다. 사경과 새벽예불, 트레킹, 다담 등의 프로그램이 마련되어 있다.(화순 운주사 061-374-5355)

◇ 고요한 산사의 겨울 해남 미황사=한해가 새롭게 시작되는 1월. 고요한 산사에 앉아 나 자신을 바라보며 마음속의 번뇌를 떨쳐버리고 새로운 한해를 계획하는 것은 어떨까.

해남군 송지면 서정리 달마산에 자리한 미황사는 신라 경덕왕 8년(749)에 창건되었다.

미황사에는 보물 제947호인 대웅보전, 보물 제1183호인 응진당이 있다. 소박하고 자연스런 아름다움을 간직한 대웅보전과 화려한 단청이 실려 있는 응진전. 저마다 다른 아름다움을 뽐내고 있다. 저녁 해질 무렵이 되면 미황사는 새로운 아름다움을 보여준다. 절집 뒤로 펼쳐진 암봉이 지는 햇살에 붉게 물들어 화려한 황금빛을 발한다. 미황사 앞으로 펼쳐진 바다만큼이나 아름다운 풍경이다.

미황사는 템플스테이를 통해 나 자신과 마주하기 좋은 공간이다. 절집의 하루가 시작되는 새벽녘, 달마산의 준봉과 어우러진 절집이 달빛 아래 고요한 아름다움을 만들어낼 때는 저절로 마음이 열리게 된다. 절집의 하루는 새벽 4시, 사찰경내의 모든 것을 깨우는 스님의 목탁소리로 시작된다. 사람들이 잠에서 깨어 제일 먼저 하는 것은 대웅보전에서 열리는 새벽예불에 참여하는 것이다.

새벽예불이 끝나고 잠시 휴식한 뒤에는 명상수련이 시작된다. 천천히 경내를 걸으며 잡념을 없애고 나 자신에게 집중하는 시간이다. 발바닥을 통해 전해지는 느낌 하나하나를 기억하며 걸어보자. 어느새 무거웠던 몸과 마음이 맑아진 것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담백한 아침공양을 먹은 후에는 울력이 이어진다. 울력은 여러 사람이 힘을 합해 많은 일을 끝내는 것을 말한다. 절집 곳곳을 청소하거나 많은 사람이 먹을 음식을 준비하는 공양간의 일을 돕기도 한다. 단순한 노동이지만 함께하는 즐거움이 있다.

점심공양 후에는 자유수행이 이루어진다. 참선을 하거나 차를 마시거나 산행을 할 수 있다. 미황사에서 달마산 정상으로 오르는 등산로는 동백나무가 터널을 이루고 있다. 기암괴석이 즐비한 산 정상까지 오르는 데 약 1시간 30분이 소요된다. 저녁공양과 예불을 마친 후에는 스님과 함께 차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는 다담 시간이 이어진다. 마음을 비우는 법, 수련의 궁금함 등 다양한 이야기를 주고받을 수 있는 시간이다.(해남 미황사 061-533-3521)

/김경인기자 kki@kwangj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