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이 바꾼 섬 年 50만명 찾는 세계 7대 명소로
2010년 10월 14일(목) 00:00 가가
예술의 낙원, 나오시마를 가다 (上)
일본 출신의 세계적인 건축가 안도 다다오가 설계한 지추미술관 전경. 땅속으로 숨어든 듯한 독특한 컨셉이다. 〈ⓒ photo by Fujitsuka Mitsumasa·나오시마 지추미술관 제공〉
일본 중남부 해안의 세토나이카이(瀨戶內海) 해상국립공원에 자리한 나오시마(直島). 20여 년 전까지만 해도 주민 200여 명에 불과한 작은 섬이었다. 하지만, 이제 나오시마는 180도 변신했다. 매년 전 세계에서 50만 명의 관광객이 몰려들고 있으며 최근엔 세계적인 여행전문지 ‘콩드 나스트 트래블러(Conde Nast Traveler)’지가 선정한 ‘죽기 전에 가보고 싶은 7대 명소’에 이름을 올렸다.
여기에는 땅속에 미술관과 호텔을 결합한 독특한 컨셉의 지추(地中)미술관과 베네세 하우스, 이우환 미술관, 오하라 미술관 등 크고 작은 미술관들을 한데 묶은 ‘나오시마 프로젝트’를 빼놓을 수 없다. 한적한 섬마을에서 일약 예술 1번지로 거듭난 나오시마와 오카야마현(岡山縣)의 미술관들을 2회에 걸쳐 소개한다.
가가와현(香川縣)에 속해 있는 나오시마에 가려면 우노 항이나 다카마쓰 항에서 페리를 타야 한다. 지난 9월28일 오전, 우노 항에는 평일임에도 불구하고 여행객들로 붐볐다. 특히 푸른 눈과 금발의 외국인 모습이 눈에 많이 띄었다. 이 날 하루만 해도 3천여 명이 나오시마 행 페리에 몸을 실었다.
15분 후 선착장에 내리면 설치작가 야요이 구사마의 거대한 빨간 호박이 여행객을 반긴다. 선착장 뒤편으로 칙칙한 미쓰비시 제련소 건물이 들어서 있지만 야요이의 작품 때문인지 산뜻한 인상을 풍긴다. 여기서 해안도로로 10분쯤 차로 가야 그 유명한 지추미술관이 나온다. 개관 시간이 1시간이나 남았지만 매표소 앞은 입장권을 끊으려는 관람객 행렬이 길게 늘어서 있었다.
매표소에서 미술관으로 가는 길에는 지추미술관이 클로드 모네 재단으로부터 직접 구해 심은 수련과 각종 꽃, 나무들로 풍성한 ‘지추 정원’이 나온다. 수련을 심은 이유는 미술관의 대표작 가운데 하나가 바로 클로드 모네의 ‘수련’ 연작이기 때문이다.
지추미술관은 이름 그대로 바다를 한눈에 굽어 보는 언덕에 보일 듯 말듯 숨어 있다. 지난 2004년 지추미술관은 ‘자연과 인간의 소통’을 모토로 문을 열었다. 세계적인 건축가 안도 다다오 특유의 노출콘크리트 스타일로 지어진 미술관은 건물 자체가 하나의 예술작품이다. 긴 복도로 이어지는 동선과 기하학적으로 분할된 공간은 관람객의 침묵을 유도, 마치 예술을 기리는 신전 같은 엄숙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더욱 흥미로운 건 클로드 모네(Claude Monet), 월터 드 마리아(Walter De Maria), 제임스 터렐(James Turrell)의 작품 9점만을 위해 미술관이 지어졌다는 사실이다. 이들 작품의 공통점은 자연과 빛을 주제로 했다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자연광선을 끌어들인 공간에 전시된 모네와 월터 드 마리아의 작품은 색다른 감동을 준다. ‘수련의 방’에는 모네 그림 5점이 걸려 있다. 수련의 색상이 빛을 받으며 시시각각 바뀌는 듯한 환시를 불러 일으킨다.
월터 드 마리아의 ‘Time/Timeless/No time’(2004년)은 지름 2.2m의 검은 돌로 만든 구와 27개의 황금빛 나무 오브제가 조화를 이루는 작품이다. 계단으로 이어진 공간에 자리한 작품은 해가 뜰 때부터 질 때까지 다른 모습으로 다가오며 경건한 느낌을 자아낸다. 빛을 소재로 만든 제임스 터렐의 ‘Open Sky’(2004년)와 ‘Open Field’는 관람객이 직접 전시장 안으로 신발을 벗고 들어가 신비함을 체험하는 작품이다. 흰색유니폼을 입은 직원이 전시장별로 관람인원을 8명씩 제한하는 데 이는 최대한의 감동을 이끌어내기 위해서다. 이 같은 독특한 분위기는 관람객들에게 번잡한 일상에서 벗어나 자신을 되돌아 보는 성찰의 시간을 선사한다.
이처럼 한적한 섬이 각광받기까지에는 한 기업인의 노력이 숨어 있다. 일본의 출판 교육 기업인 베네세 그룹의 후쿠다케 소이치로 회장이다. 평소 미술품 수집에 관심이 많았던 그는 1987년 10억 엔을 들여 섬의 절반을 사들인 후 ‘나오시마 프로젝트’의 첫발을 내디뎠다.
지추미술관에서 가까운 곳에 있는 베네세 하우스는 1992년 안도 다다오가 설계한 호텔과 미술관 등 4개의 건물로 구성돼 있다. 미술관에는 브루스 나우먼의 네온 설치작품 ‘100 live and Die’를 비롯해 야니스 쿠넬리스, 야스다 겐, 리처드 롱, 데이비드 호크니, 앤디 워홀 같은 거장의 작품이 즐비하다. 전시장뿐 아니라 해변 곳곳에도 작품이 설치돼 있다. 베네세 하우스 동쪽 입구에 설치된 야요이 구사마의 ‘(노란)호박’을 비롯 박 칼 아펠, 니키 드 생팔의 생동감 넘치는 조각, 댄 그레이엄의 미니멀한 설치작품, 스기모토 히로시의 사진 등 18개의 작품이 환상적으로 어우러져 있다.
특히 지난 6월 지추미술관 들머리에 둥지를 튼 이우환 미술관으로 인해 나오시마는 한국인들에게 더욱 각별한 곳이 됐다. 현재 한국과 일본을 오가며 왕성하게 활동중인 재일작가 이우환(74)씨는 크리스티 경매 등 국제무대에서 명성을 떨치고 있는 작가로 개관과 동시에 관광객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후쿠다케 회장의 전폭적인 지원으로 세워진 이우환 미술관은 아름다운 세토내해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전망 좋은 곳에 들어서 있다. 약 300평 규모의 미술관 역시 안도 다도오의 설계로 주변 지형에 맞춰 설계한 자연친화적 건물이다. 천장 없이 하늘로 뚫린 삼각형의 공간과 세 개의 전시실에는 점과 선의 선적인 추상작업의 변천과정을 엿볼 수 있는 작가의 초창기부터 현재의 작품들이 오밀조밀하게 펼쳐져 있다.
‘나오시마의 프로젝트’에서 빼놓을 없는 또 하나의 ‘작품’은 ‘이에(家) 프로젝트’. 지난 1998년 시작한 이에 프로젝트는 마을 사람들이 떠난 빈 집을 복원해 현대미술작품으로 변신시킨, 일종의 아트 하우스 프로젝트다. 미야지마 다쓰오 등 현대미술가의 작품과 낡고 오래된 집의 기억을 버무려 일본의 전통과 미학을 보여준다.
다시 선착장으로 돌아가는 길에는 오타케 신로의 ‘I ♥ 湯’ 목욕탕 프로젝트를 꼭 챙겨봐야 한다. 실제 영업하는 공중목욕탕을 일본 전역에서 가져온 잡동사니 같은 물건으로 꾸며 지역민과 관람객이 직접 소통하는 공간으로 탈바꿈시켰다.
지도에서나 만날 수 있었던 섬, 나오시마. 황폐하고 쓸쓸했던 마을은 자연과 건축, 미술이 스며들어 사람들로 북적거리는 ‘예술의 낙원’으로 되살아났다. 버려진 섬에서 글로벌 관광명소로 부상한 나오시마는 세상을 바꾸는 예술의 힘을 생생하게 보여주는 기적의 현장이다.
/나오시마=박진현 선임기자jhpark@kwangju.co.kr
가가와현(香川縣)에 속해 있는 나오시마에 가려면 우노 항이나 다카마쓰 항에서 페리를 타야 한다. 지난 9월28일 오전, 우노 항에는 평일임에도 불구하고 여행객들로 붐볐다. 특히 푸른 눈과 금발의 외국인 모습이 눈에 많이 띄었다. 이 날 하루만 해도 3천여 명이 나오시마 행 페리에 몸을 실었다.
지추미술관은 이름 그대로 바다를 한눈에 굽어 보는 언덕에 보일 듯 말듯 숨어 있다. 지난 2004년 지추미술관은 ‘자연과 인간의 소통’을 모토로 문을 열었다. 세계적인 건축가 안도 다다오 특유의 노출콘크리트 스타일로 지어진 미술관은 건물 자체가 하나의 예술작품이다. 긴 복도로 이어지는 동선과 기하학적으로 분할된 공간은 관람객의 침묵을 유도, 마치 예술을 기리는 신전 같은 엄숙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더욱 흥미로운 건 클로드 모네(Claude Monet), 월터 드 마리아(Walter De Maria), 제임스 터렐(James Turrell)의 작품 9점만을 위해 미술관이 지어졌다는 사실이다. 이들 작품의 공통점은 자연과 빛을 주제로 했다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자연광선을 끌어들인 공간에 전시된 모네와 월터 드 마리아의 작품은 색다른 감동을 준다. ‘수련의 방’에는 모네 그림 5점이 걸려 있다. 수련의 색상이 빛을 받으며 시시각각 바뀌는 듯한 환시를 불러 일으킨다.
월터 드 마리아의 ‘Time/Timeless/No time’(2004년)은 지름 2.2m의 검은 돌로 만든 구와 27개의 황금빛 나무 오브제가 조화를 이루는 작품이다. 계단으로 이어진 공간에 자리한 작품은 해가 뜰 때부터 질 때까지 다른 모습으로 다가오며 경건한 느낌을 자아낸다. 빛을 소재로 만든 제임스 터렐의 ‘Open Sky’(2004년)와 ‘Open Field’는 관람객이 직접 전시장 안으로 신발을 벗고 들어가 신비함을 체험하는 작품이다. 흰색유니폼을 입은 직원이 전시장별로 관람인원을 8명씩 제한하는 데 이는 최대한의 감동을 이끌어내기 위해서다. 이 같은 독특한 분위기는 관람객들에게 번잡한 일상에서 벗어나 자신을 되돌아 보는 성찰의 시간을 선사한다.
이처럼 한적한 섬이 각광받기까지에는 한 기업인의 노력이 숨어 있다. 일본의 출판 교육 기업인 베네세 그룹의 후쿠다케 소이치로 회장이다. 평소 미술품 수집에 관심이 많았던 그는 1987년 10억 엔을 들여 섬의 절반을 사들인 후 ‘나오시마 프로젝트’의 첫발을 내디뎠다.
지추미술관에서 가까운 곳에 있는 베네세 하우스는 1992년 안도 다다오가 설계한 호텔과 미술관 등 4개의 건물로 구성돼 있다. 미술관에는 브루스 나우먼의 네온 설치작품 ‘100 live and Die’를 비롯해 야니스 쿠넬리스, 야스다 겐, 리처드 롱, 데이비드 호크니, 앤디 워홀 같은 거장의 작품이 즐비하다. 전시장뿐 아니라 해변 곳곳에도 작품이 설치돼 있다. 베네세 하우스 동쪽 입구에 설치된 야요이 구사마의 ‘(노란)호박’을 비롯 박 칼 아펠, 니키 드 생팔의 생동감 넘치는 조각, 댄 그레이엄의 미니멀한 설치작품, 스기모토 히로시의 사진 등 18개의 작품이 환상적으로 어우러져 있다.
특히 지난 6월 지추미술관 들머리에 둥지를 튼 이우환 미술관으로 인해 나오시마는 한국인들에게 더욱 각별한 곳이 됐다. 현재 한국과 일본을 오가며 왕성하게 활동중인 재일작가 이우환(74)씨는 크리스티 경매 등 국제무대에서 명성을 떨치고 있는 작가로 개관과 동시에 관광객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후쿠다케 회장의 전폭적인 지원으로 세워진 이우환 미술관은 아름다운 세토내해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전망 좋은 곳에 들어서 있다. 약 300평 규모의 미술관 역시 안도 다도오의 설계로 주변 지형에 맞춰 설계한 자연친화적 건물이다. 천장 없이 하늘로 뚫린 삼각형의 공간과 세 개의 전시실에는 점과 선의 선적인 추상작업의 변천과정을 엿볼 수 있는 작가의 초창기부터 현재의 작품들이 오밀조밀하게 펼쳐져 있다.
‘나오시마의 프로젝트’에서 빼놓을 없는 또 하나의 ‘작품’은 ‘이에(家) 프로젝트’. 지난 1998년 시작한 이에 프로젝트는 마을 사람들이 떠난 빈 집을 복원해 현대미술작품으로 변신시킨, 일종의 아트 하우스 프로젝트다. 미야지마 다쓰오 등 현대미술가의 작품과 낡고 오래된 집의 기억을 버무려 일본의 전통과 미학을 보여준다.
다시 선착장으로 돌아가는 길에는 오타케 신로의 ‘I ♥ 湯’ 목욕탕 프로젝트를 꼭 챙겨봐야 한다. 실제 영업하는 공중목욕탕을 일본 전역에서 가져온 잡동사니 같은 물건으로 꾸며 지역민과 관람객이 직접 소통하는 공간으로 탈바꿈시켰다.
지도에서나 만날 수 있었던 섬, 나오시마. 황폐하고 쓸쓸했던 마을은 자연과 건축, 미술이 스며들어 사람들로 북적거리는 ‘예술의 낙원’으로 되살아났다. 버려진 섬에서 글로벌 관광명소로 부상한 나오시마는 세상을 바꾸는 예술의 힘을 생생하게 보여주는 기적의 현장이다.
/나오시마=박진현 선임기자jhpark@kwangju.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