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없이 펼쳐진 코발트빛 바다와 하늘, 그 곳을 배경으로 이어지는 한려수도 물길의 비경, 해안선을 따라 독일병정들이 열병식을 하듯 죽 늘어선 물건방조어부림과 그너머 점점이 떠있는 사량도 욕지도 등 섬들. 최근 해양수산부로부터 전국에서 제일 아름다운 항구로 뽑힌 물건항과 미조항 사이에 놓인 물미해안도로는 국내에서 가장 수려한 풍광의 바다를 만날 수 있는 곳이다. 이 곳에 관광객들의 발길을 잡는 또 하나의 명소가 등장했다. 경남 남해군 삼동면 물건항 뒤편 야산 언덕배기에 코발트빛 남해바다를 굽어보며 자리잡은 ‘독일마을’. 흰색벽에 빨간지붕의 전통 독일식 집이 남해바다와 어우러져 마치 유럽에서 보내온 그림엽서의 한 장면을 연상시킨다. 이 곳은 지난 1960년 독일에 간호사·광원으로 갔던 교포들이 은퇴 후 여생을 고국에서 보내기 위해 독일인 남편 등과 함께 귀국해 터를 잡은 ‘독일 마을’이다. 당초 113채가 들어설 예정이었던 독일마을은 2003년 1월부터 입주하기 시작해 모두 21채의 집이 지어졌고, 연말까지 10여채가 더 들어서게 된다. 현재 이 곳에 사는 주민은 모두 8가구 16명(독일인 2명)이다. 이 곳에 집을 지어놓은 채 독일에 살고 있는 교포들은 연금을 받는 나이(60∼65세)가 될 때까지 독일에서 1∼2년간 더 머물다 귀국할 예정이다. 마을길로 접어들면 호젓함과 평화로움에 세상 근심이 사라진다. 주민 대부분은 교민들이지만 생활방식은 모두 독일식이다. 대문이 없고, 벨을 대신한 작은 종도 이채롭다. 〔〈【모든 분야가 그렇듯이 건축물은 실용성과 합리성을 우선하는 독일인의 사고를 그대로 반영해 1층은 차고 겸 창고나 작업실로 쓰고 2,3층은 주거용으로 설계됐다. 】〉〕독립된 주방과 벽난로를 비롯한 실내꾸밈에서 독일인의 생활을 고스란히 엿볼 수 있다. 최근에 매스컴에 소개가 되면서 주민들은 독일문화에 관심이 높은 방문객들을 위해 민박도 한다. 박미자(64)씨는 지난 66년부터 3년간 독일에서 간호사로 일하다 69년 귀국했으나 92년 독일 초청으로 다시 독일행 비행기를 탔다. 3년 예정이었으나 12년을 훌쩍 넘긴 후 지난 2003년 남편 한건섭(68)씨와 이 곳에 터를 잡았다. 텃밭을 직접 가꾸며 땀흘리는 재미에 푹 빠진 이들 부부는 독일마을에서 유일하게 선거권이 있는 ‘한국부부’. 방갈로를 두 채 따로 지어 민박객들을 받고 있다.(017-320-0638) 아침에 독일식 빵과 커피를 대접받을 수 있으며 독일문화에 대한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을 수도 있다.〔〈【 한건섭씨는 “단체장이 바뀌면서 당초 계획보다 공사가 많이 늦어지고 있어 아쉬움이 많다”며 “독일인의 생활과 문화를 체험할 수 있는 공간을 염두에 두고 마을을 조성해야 한다”고 말했다.】〉〕 33년만에 귀국한 김우자(67)씨를 따라 마을에 정착한 독일인 스트라우스 김 루드빅(75)씨는 마을 회관이 완공되면 그 곳에 독일어 라디오방송국을 열 예정이다. 김우자씨는 “독일마을이 단순한 주거공간이 아니라 한국인들이 독일문화를 체험하고 이해할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들어졌으면 좋겠다”며 “우리 마을이 한·독 문화교류의 일익을 담당했으면 한다”고 말했다. 마을 언덕앞으로 시원스럽게 펼쳐지는 남해바다도 일품이지만 해안선에 길이 1.5㎞, 너비 30m로 이뤄진 반달형 숲인 물건방조어부림은 그 자체가 이채로운 볼거리다. 이 곳은 잘가꾼 인공숲의 한 전형이다. 태풍과 염해로부터 마을을 지켜주고 고기를 모이게 해준다는 의미에서 이름 붙여진 이 숲엔 팽나무, 상수리나무, 느티나무, 이?나무, 상록수인 후박나무 등 수령 300년이 넘는 40여 수종의 나무들이 빼곡히 늘어서 있다. 〔〈【몽돌 구르는 소리가 일품인 물건리 해안에서 물놀이를 하다가 방조어부림 그늘에서 즐기는 휴식은 고단한 삶의 여정을 알게 하는데 부족함이 없다. 】〉〕천연기념물 제150호. 예까지 왔으니 한 구비만 돌면 얼굴을 내미는 ‘해오름 예술촌’을 들르지 않을 수 없다. 지난 2003년 5월 문을 연 ‘해오름 예술촌’은 독일마을에서 1㎞남짓 떨어져 있는 곳으로 연중 특별기획전시회를 열고 있다. 폐교를 개조해 만들었는데 1층에는 도자공예나 알공예 등을 체험할 수 있는 체험장이 있고, 전망이 좋은 2층에 와인 시음코너와 녹차 시음코너가 있다. 와인 시음코너에는 독일 와인이 가득 채워져 있다. 지난해 10월에는 이곳과 독일마을에서 옥토버페스트가 열렸다.〔〈【 손강영(37) 해오름예술촌 실장은 “독일와인은 청포도의 상큼함이 녹아있는 백포도주가 유명하다”며 “독일마을 주민들과 함께 독일문화를 전달하는 장으로 만들 예정이다”고 말했다.】〉〕 /최재호기자 lion@kwangj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