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 서울 월드컵에서 4강신화를 이뤄낸 자랑스런 대한민국 축구. 당당히 국기(國技)로 자리잡은 축구는 이제 남성전유물이 아니다. 거칠고 격렬한 남성 스포츠로 여겨졌던 축구에 여성들의 도전이 거세다. 사회 각 분야에서 금녀(禁女)의 벽이 무너지듯 축구에서도 여성 동호인들이 빠르게 늘고 있어 남자 못지 않은 쾌거를 이룰 날이 멀지 않았다. 16일 오후 5시. 광주시 동구 산수동 장원초등학교 운동장에는 빨간색 유니폼을 입은 ‘빛고을 여성축구단’ 선수들이 광주 ‘6070축구클럽’과 친선게임을 벌이고 있었다. “왼쪽으로 빨리 넘겨줘” “잘했어. 빨리 앞으로 내주고” 그라운드 안과 밖에서 회원들 간에 장 탄식과 파이팅 넘치는 주문들이 뒤따른다. “빛고을! 빛고을! 파이팅!” “파이팅” 빛고을여성축구단이 후반 18분께 한골을 허용, 선수들의 고개가 떨궈지자 주장 박선의(36)의 파이팅 선창에 이어 선수들도 파이팅을 외치며 금새 활기를 되찾는다. 1골을 만회하기 위해 열심히 뛰어보지만 골운이 따르지 않는다. 경기종료 직전 최선화(33)의 칼날같은 패스를 받은 주장 박선의가 마지막 돌파를 시도해 보지만 ‘6070’ 할아버지 팀의 수비를 뚫기가 쉽지않다. “삐익∼” 전·후반 50분 경기가 끝나고 선수들은 ‘6070’할아버지들과 악수를 나누며 환하게 웃는다. 먼지와 땀방울로 뒤섞인 선수들의 얼굴에선 패배와 피곤함 보다는 건강한 미소와 활력이 넘쳐난다. “피곤하지 않으십니까” 라는 질문에 선수들은 “피곤하기는요. 날씨가 좀 더웠지만 너무 재미있어요” 라며 밝고 즐거운 모습이다. ‘광주빛고을 여성축구단’은 지난 2003년 8월 30∼50대 주부들을 주축으로 창단, 명예회원 포함 85명(정회원 44명)이 활동하고 있다. 주중에는 수요일 오후 7시∼9시까지 두암동 삼정초등학교에서 훈련을 하고, 주말과 공휴일에는 장원초등학교에서 남자조기축구팀이나 초등학교 팀들과 경기를 위주로 훈련한다. 여자축구팀이라고 해서 훈련이 약할 것이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유은영 감독(46·국민생활체육유소년축구지도자)의 지도아래 운동장 5바퀴를 돌며 기초체력을 다지고, 스트레칭, 볼 감각훈련, 드리블 훈련, 2인1조 패스 훈련, 볼컨트롤과 슈팅훈련이 끝나면 전·후반 50분 미니게임을 통해 실전감각을 익힌다. 게임이 끝나도 PK차기와 운동장 2바퀴를 돌고 스트레칭으로 마무리 한다. 지옥훈련 수준이지만 누구하나 볼멘소리를 하지 않는다. 팀내 맏언니이자 창단멤버인 이덕순(50·북구 운암동)씨는 “처음에는 운동장 1바퀴 도는 것도 힘들었지만 이제 훈련이 전혀 힘들지 않다”며 “심신의 건강은 물론이고, 생활이 부지런해졌다”고 자랑이다. 빛고을여성축구단의 ‘박지성’을 꿈꾸는 최선화(33·북구 두암동)씨는 인공지능 자연언어처리 박사논문을 준비중으로 공부할 시간도 부족하지만 토요일 오후만큼은 축구와 함께한다. “공부와 운동을 병행하는게 쉽지 않지만 주중에는 공부, 주말은 축구를 통해 건강을 가꾸며 스트레스를 털어내고 있다”며 “언니 동생들과 즐기는 이시간이 너무 행복하다”고 말했다. 이들의 축구사랑은 홈페이지에 올라온 글들에 넘치도록 담겨있다. ‘축구는 이제 내 삶의 일부분이 되어버렸다’ ‘아니 서른을 훌쩍 넘겨버린 나에게 지칠줄 모르는 열정을 불러일으킨 축구’ ‘내 생활이 생긴거다. 아이들과 남편의 들러리에서 당당하게 내 삶이 생겼다’ 등 축구를 통해 자신의 숨은 열정과 자아를 찾은 기쁨을 올려놓았다. 팀내 최고 스트라이커이자 축구전도사인 박선의(36)씨는 “그라운드에 서면 50분동안 오직 내자신과 대화할 수 있고, 모든 근심 걱정을 털어낼 수 있어 삶이 즐겁다”며“이제 축구없는 인생은 생각할 수 없다”고 말한다. 미용실을 경영하고 있는 이은주(41·광산구 월계동)씨는 가장 손님이 많은 시간인 토요일 오후를 과감히 축구에 할애하고 있다. “지금까지 가족과 주변을 위해 인생을 살았다면 축구를 통해 건강을 되찾고 나를 돌아보는 계기가 됐다”며 “3∼4시간 같이 땀흘리고 대화하다 보면 재충전이 된다”고 말했다. 이처럼 빛고을 여성축구단 회원들은 축구선수 출신이거나 운동에 소질이 있는 이들이 아닌 평범한 가정주부, 직장인이다. 축구에 관심이 있고, 자신을 위해 시간을 할애할 용기가 있는 사람들이다. 그렇다고 그녀들이 단순히 즐기기만 하는 것은 아니다. 문광부장관기와 여성부장관배, 대전시장기 등 전국대회 출전은 물론, 지방대회까지 빼지 않고 출전, 팀웍과 실력을 배양하고 있다. 최근 동구청 등 몇군데 도움을 주는 곳도 생기고 사회적 관심이 높아지자 선수들의 사기도 오르고 있다. 골키퍼 이영자(37·북구 삼각동)씨는 초등학교 선수들과 친선게임을 하다 오른쪽 다리가 부러지는 경험이 있어 몸을 사릴 법도 하지만 이날도 몇차례 결정적 순간에 몸을 날려 골을 막아낼 정도로 축구에 대한 열정이 대단하다. 부회장을 맡고 있는 이행란(45·북구 삼각동)씨와는 자매간. 이들 자매는 “모두가 하나될 수 있고, 같이 땀흘리며 개인보다는 전체를 생각하는 모습이 축구의 가장 큰 매력이다”고 입을 모은다. 성환종합건설 총무이사로 재직하고 있는 전진숙(45·북구 매곡동)씨는 “운동과는 담 쌓은 사람이었는데 축구를 시작한 후 50분 풀타임을 뛸 수 있다”며 “팀웍과 자신감은 사회생활하는데도 큰 재산이 됐다”고 자랑이다. 태극전사들의 경기가 있는 날이면 전씨의 집은 ‘사랑방’역할을 톡톡히 한다. 오온임(48·북구 운암동) 회장은 “ 러닝과 스트레칭을 통해 체력을 다지고, 친선게임과 경기를 통해 나보다는 남을 배려하는 팀웍을 배우기 때문에 축구를 좋아한다”며 “건강 단련은 물론이고 즐기며 운동할 수 있어 모두가 너무 행복해 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최재호기자 lion@kwangj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