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전남에 눈 다운 눈 한번 오지않은 올겨울.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이 아니라 동래불사동(冬來不似冬)이라 불러야 할 것 같다. 겨울여행의 백미는 누가 뭐라 해도 눈꽃이 활짝 피어난 겨울 산행이 아닐까. 밤새 내린 눈이 소복하게 쌓여 온 세상을 하얗게 뒤덮은 모습을 보면 날씨는 추워도 마음이 포근해져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순백의 동심으로 돌아간다. 요즘처럼 공해에 찌든 도심에서는 그런 순백의 아름다움이 더욱 그리워진다. 최근에 이상난동 때문에 눈 소식을 들을 수 없어 안타까움이 더한다. 무주 구천동을 품고 있는 덕유산은 겨울산의 진수를 맛볼수 있는 곳으로 알려져 있다. 유난히 눈이 많이 내리는 곳으로 스키장을 끼고 있는데다 정상에는 새하얀 서리꽃, 눈꽃이 무리지어 화려한 자태를 뽐내고 있다. 덕이 많고 너그러운 모산이라 하여 이름 붙여진 ‘덕유산’. 경남 거창군과 전북 무주군 안성면, 설천면 걸쳐 있는 덕유산은 주봉우리인 향적봉(1,614m)을 중심으로 대봉, 중봉, 삿갓봉등 해발고도 1,300m 안팎의 봉우리들이 줄지어 솟아 장관을 이루고 있다. 덕유산 안에는 계곡이 무려 8개나 있다. 이중 북동쪽의 무주와 무풍 사이를 흘러 금강의 지류인 남대천으로 이르는 길이 무려 30km의 무주구천동은 전국적으로 알려진 명소중의 명소다. 9000굽이를 헤아린다는 계곡안에 무이구곡을 비롯해 구월담, 수심대, 학소대 등 구천동 33경과 칠련폭포, 용추폭포등이 살포시 들어앉아 있다. 덕유산은 겨울 내내 상고대가 피어 있어 눈이 오지 않더라도 때 묻지 않은 순백의 미를 언제든지 감상할 수 있다. 올해는 이상기온으로 인해 덕유산에서도 상고대가 피어나는 것을 쉽사리 볼 수 없다. 상고대는 습기를 머금은 구름과 안개가 급격한 추위로 나무에 엉겨 붙어 만들어진 서리꽃을 말한다. 서리꽃은 해발 1천m이상 고지에서 영하 6도이하, 습도 90% 이상일 때만 피어난다. 밑으로 금강 줄기가 흐르는 덕유산은 이 모든 조건을 완벽히 갖추고 있고 다른 곳에 비해 유난히 눈도 많이 내려 아름다운 상고대를 감상할 수 있다. 설경의 아름다움에 취해 정상에 오른다지만 무릎까지 빠지는 눈길을 헤치며 1천600m가 넘는 덕유산 정상을 오르는 일은 쉽지 않다. 하지만 걱정할 필요는 없다. 등산하기가 겁난다면 무주리조트에서 곤돌라를 타고 오르면 된다. 곤돌라를 타고 오르는 길은 향적봉 바로 밑에 있는 설천봉(1,530m)까지다. 산 중턱에 눈구름이 깔린 날 곤돌라를 타면 그야말로 구름위를 산책하는 선경에 들어 있는 듯한 착각까지 들게 한다. 온 세상이 은빛으로 빛나는 이상향의 세계에 들어선 것 같아 마치 꿈을 꾸는 듯 하다. 설천봉 정상에 가까워질수록 눈꽃이 활짝 핀 나무들이 바람에 흔들리는 모양새가 마치 나무라기 보다 새하얀 산호초를 연상시킨다. 잠수함을 타고 새하얀 바다속을 이리저리 여행하는 것 같다. 어디 이것 뿐이겠는가. 곤돌라를 타고 가면 등산하면서는 도저히 볼 수 없는 나무의 머리 꼭대기가 만들어내는 색다른 모습을 감상할 수 있다. 똑같은 산이지만 걸어서 올라가는 느낌과는 사뭇 다르다. 힘들여 걷다보면 전체를 여유있게 관망할 수 없지만 이렇게 곤돌라의 힘을 빌리면 겨울산의 하얀속살을 여유 있게 감상하며 올라가는 맛이 색다르다. 곤돌라를 타고 설천봉에 이르면 또 하나의 장관이 눈 앞에 펼처져 탄성을 내지르게 한다. 곤돌라 승강장 밖으로 발을 내 딛은 순간 온천지가 구름에 덮여 한치 앞도 보이지 않는다. 구름을 뚫고 어렴풋이 전망대가 보이면 천국에 온 것 같은 착각에 빠져든다. 이곳부터 향적봉 까지는 쉬엄쉬엄 20여분이면 오를 수 있다. 눈꽃 터널을 이루고 있는 나무들 사이를 걷노라면 온 마음이 새하얀 순수함으로 채워지는 것 같다. 향적봉 정상에서 천하를 내려다 보는 것 또한 잊을 수 없다. 지리산 천왕봉과 반야봉을 비롯해 속리산 줄기까지 겹겹이 펼쳐진 산의 능선들이 한눈에 들어온다. 무언가 배꼽저 밑을 관통해 들어와 가슴을 헤집고 쑥 하니 빠져나가 가슴이 탁 트이는 것 같은 느낌. 이 순간만큼은 세상의 온갖 번뇌와 시름을 잊게 된다. 덕유산 정상의 진수를 만끽한 후 걸어 내려오면서 등산길의 풍경을 감상하는 것도 좋다. 향적봉에서 구천동까지 내려오는데 약 3시간 정도. 하지만 겨울산행 장비가 없이는 절대 시도해서는 안된다. 관광곤돌라는 오전 10시부터 오후 4시까지 운행한다. 왕복 1만원. /최재호기자 lion@kwangj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