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해를 마감하는 즈음 바라보는 낙조는 낭만과 서정, 감사와 후회 등 여러가지 의미로 다가온다. 시뻘건 불덩이가 하늘과 바다를 온통 붉게 물들이며 수평선 아래로 사라지는 장관속에 지난 한해의 묵은 상념도 함께 담아 보낸다면 가뿐하고 새로운 마음으로 새해를 맞을 수 도 있지 않을까. 】〉〕 진도는 중앙기상대가 꼽은 최고의 낙조전망대를 가지고 있다. 한반도에서 가장 늦은 해넘이를 볼 수 있는 데다 떠나기 못내 아쉬운 석양이 가장 오래 머무는 곳이다. 오후 4시 40분. 전남 진도군 세방면 세방리 낙조전망대에서 바다쪽을 바라보면 20여개의 섬들이 바둑돌처럼 점점이 떠있다. 주지도(손가락섬), 양덕도(발가락섬), 양도, 불도, 상갈도, 하갈도, 가사도…. 등 기기묘묘한 섬 들이 붉게 타들어 간다. 수온이 낮아 해무가 적게 끼면 낙조가 온전히 보이기 때문에 겨울철에도 관광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오후 5시. 태양은 힘을 잃고 바다 쪽으로 점차 고개를 떨구며 푸른 하늘은 서서히 물들어 간다. 마지막까지 혼신의 힘을 다한다. 자신을 불사르며 세상을 벌겋게 물들인다. 저무는 해는 얼마 남지 않은 며칠이라도 허투로 보내지 말라는 부드럽지만 엄한 훈계를 하는 듯 하다. 세밑, 저 해를 보며 한 해를 보내고 희망찬 닭울음을 들어도 좋을 듯 하다. 점차 태양은 힘을 잃고 푸른 하늘은 붉은 빛이 완연하다. 태양이 먼 섬 자락에 걸렸다. 태양 주위는 온통 붉은색이다. 태양이 섬 너머로 반쯤 숨었다. 노을이 옅어지면서 하늘 빛은 분홍으로 바뀌었다. 태양 빛으로 검붉게 변한 바다도 연푸른 색조로 다시 바뀌었다. 지난 한 해동안의 일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간다. 분노했던 일, 기뻤던 일, 슬펐던 일…. 이제 얼마 남지 않은 태양이 입적한 노스님의 온화한 미소를 머금은 듯한 모습으로 완전히 섬 뒤로 자취를 감췄다. 연분홍 하늘은 점차 검은빛으로 바뀌고 바다도 덩달아 검은 물결이 일렁거린다. 이상덕(35·수원시 매탄동)씨는 “전국에서 낙조가 가장 유명하다는 세방리까지 왔는데 완벽한 낙조를 보지는 못했지만 과연 장중하네요”라며 “가족들과 같이 손을 꼭 잡고 올 한 해동안 미진했던 일들을 훌훌 털어버리고 새로운 다짐을 했다”고 말했다. 세방리 낙조전망대에서는 관광객 20명 이상 모이면 공연이 펼쳐진다. 진도군이 지난해부터 마련하는 ‘찾아가는 민속공연’이다. 구성진 판소리와 춤사위가 펼쳐지고 관객도 소리꾼도 모두 벌겋게 익어간다. 공연이 무르익을 때 쯤 낙조도 절정이다. 공연과 해가 하나가 되어 한 눈에 들어온다. 낙조엔 홍주가 빠질 수 없다. 풍류를 아는 이들은 낙조와 닮은 홍주를 준비한다. 피보다 붉고 진한 홍주는 진도의 민속주로 쌀, 보리에 지초라는 약초뿌리의 성분을 넣어 숙성시켰다. 홍주가 한잔 들어가면 얼굴이 붉어지고 두잔째에 세상마저 붉어 보인다. 주당들은 홍주 폭탄주를 마시며 컵 속에 오색낙조를 담그기도한다. 〔〈【 ◇주변의 낙조 포인트 ▲해남 땅끝마을-낙조의 명소로는 해남 땅끝 마을(일명 송호리 갈두부락)도 빼놓을 수 없다. 한반도의 남쪽 끝에 위치한 땅끝 마을은 마을을 둘러싼 사자봉 아래에 자리잡고 있다. 북위 34도 17분 30초. 누구나 이 땅 끝에 서면 가슴이 요동침을 느끼게 된다. 저 망망한 바다가, 푸른 물결이, 수평선 위로 떠오르는 해가 저마다의 가슴에 진한 감동을 선사하기 때문이다. 사자산 꼭대기에 있는 전망대에서는 다도해의 절경이 한눈에 다가선다. 이곳에서는 날씨가 맑은 날이면 제주 한라산이 어슴푸레 바라보인다. 전망대 아래 바다로 내민 사자봉 언저리에는 이곳이 땅 끝임을 알리는 토말비가 서 있고 거기서 한참 내려간 곳에는 기념비가 서 있다. 발아래 다도해의 전경이 펼쳐지고, 바둑돌처럼 점점이 떠 있는 무인도 사이로 빨려들어 가는 붉은 낙조가 일품이다. ▲조도- 유명하되 알려지지 않은 섬 조도. 상·하조도, 관매도 등 유인도 35개와 무인도 119개로 이루어진 조도는 수십년전 원양어업을 하기 위한 중간지로서 역할을 했다. 다도해 국립공원에 포함됐지만 자연 그대로를 간직하고 있다. 상조도 도리산 전망대에 오르면 하늘과 바다에 머리를 맞댄 섬들이 기다리고 있다. 세방리 낙조가 화려하고 날카롭다면 도리산 낙조는 아낙네의 몸매처럼 넉넉하고 푸근하다. 】〉〕 /최재호기자 lion@kwangj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