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 점령한 지상변압기 어떡하나
2025년 02월 06일(목) 19:25 가가
법원 “보행권 침해로 장애인 차별” 판결에 한전 ‘전전긍긍’
광주·전남 4164개 인도에 설치
통행 폭 최소 1.5m 유지 지침 속
기준 미달 수두룩해 대책 고심
한전측 “현실적으로 이설 어려워”
목포시는 현황 전수조사 방침
광주·전남 4164개 인도에 설치
통행 폭 최소 1.5m 유지 지침 속
기준 미달 수두룩해 대책 고심
한전측 “현실적으로 이설 어려워”
목포시는 현황 전수조사 방침
법원이 인도에서 보행자 통행을 방해하는 지상변압기는 장애인 차별이라는 판결을 내리자 한국전력공사(이하 한전)에 ‘비상’이 걸렸다.
지금까지 인도에 설치한 4000여개의 지상변압기를 전부 손봐야 하는 실정이 됐을뿐 아니라 막대한 설치 비용 때문에 변압기를 옮겨 설치하기도 어렵기 때문이다.
6일 한전 광주전남본부에 따르면 광주·전남에 설치된 지상변압기는 모두 6990개이며, 이 중 4164개(59.5%)가 인도에 설치돼 있다. 다섯 개 중 세 개는 인도에 설치된 것이다.
지상변압기를 인도에 설치할 땐 국토교통부 ‘보도 설치 및 관리 지침’에 따라 보행로의 유효폭을 최소 2.0m 이상 확보해야 하며, 지형상 부득이한 경우에는 1.5m 이상을 보행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하지만 6일 오전 광주일보 취재진이 둘러본 광주시 곳곳에서는 변압기에 가려 보행 구간 폭을 1.5m는커녕 1m조차 확보 못 한 구간이 수두룩했다.
광주시 서구 치평동 5·18기념공원 인근에 있는 한 인도는 변압기에 가려져 보행 구간이 69㎝밖에 남아있지 않았다. 이곳 인근의 다른 변압기도 보행구간 72㎝만을 남겨 두고 보행로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었다.
광주시 서구 치평동 전남중학교 인근 인도도 변압기를 제외한 보행로 폭이 92㎝에 불과한 경우가 줄지어 있었으며, 서구 쌍촌동 쌍촌청소년문화의집 인근 인도도 변압기와 상가 건물 사이로 고작 60여㎝ 보행 구간만 남겨놓는 사례가 잇따랐다.
일부 인도에서는 최근 쌓인 눈이 좁은 구간에 단단히 얼어붙으면서 시민들이 엉금엉금 보행로를 걸어야 하기도 했다.
시각장애인들은 “변압기 등으로 보행로가 급격히 좁아지면 불편한 것이 이만저만이 아니다”고 호소하고 있다.
길이 좁아지면 어디에 부딪힐지 몰라 심리적 긴장감이 커지고, 지팡이를 수차례 더 짚어 가며 보통 때보다 조심히 통과하는 등 불편이 크다는 것이다. 더구나 좁은 길을 통과하는데 집중하다가 곧바로 나타난 사거리를 못 알아채 차도로 뛰어들뻔 하는 등 위험도 증가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김민석 광주시각장애인복지관 권익옹호팀장은 “변압기뿐 아니라 가로수, 전동킥보드 등으로 보행로가 2m 이하로 좁아지는 경우가 많은데, 그럴 때마다 시각장애인들은 위험을 무릅쓰고 좁은 길을 통과해야 한다”며 “인도가 좁고 굴곡져 있는데다 점자블록도 없으면 한없이 걸음 속도가 느려지고 심리적으로도 답답하다”고 말했다.
또 수동 휠체어의 폭이 65㎝정도 수준이라는 점에서 일부 인도에서는 휠체어 이용자들은 좁은 길을 통과하기 어려워 차도를 통해 우회하는 등 교통사고 위험도 키우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전 측은 변압기 설치가 필요한 ‘전선 지중화 사업’ 자체가 상가 등 전기 수요가 밀집된 곳에서 이뤄지다 보니 지자체와 협의 하에 변압기를 좁은 인도에 설치하는 사례가 종종 있다는 입장이다. 사업 시 인근에 상가가 형성되고 건축 허가도 나 있는데 무작정 전기 공급을 끊어버릴 수 없는 노릇이라 ‘어쩔 도리가 없다’는 것이다.
나아가 변압기 이설 작업을 할 경우 설치 비용만 전신주보다 3~5배 이상 비싸고 지하 공사, 기존 변압기 철거 공사까지 해야 해 신규 설치보다 더 많은 비용이 든다는 점도 문제다.
한전 광주전남본부 관계자는 “비용 등을 고려했을 때 좁은 인도에 설치된 기존 변압기를 모두 이설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다”며 “판결문을 받아본 뒤 구체적인 대응 방침을 정할 것이며, 변압기에 모서리 보호(완충) 장치를 설치하는 등 안전 조치 방안을 폭넓게 검토할 것”이라고 해명했다.
광주시 서구 관계자는 “보도 설치 기준이 엄격하게 적용되지 않던 과거에 설치된 변압기에서 최소 보행로 폭을 갖추지 못한 사례가 많다”며 “현재는 최소 보행로 폭을 확충하지 못하면 도로점용허가를 아예 내 주지 않는데, 이 때문에 광주 내에서 전선 지중화 사업을 못 하는 지역이 대부분이다”고 설명했다.
이어 “보행로 폭 문제가 있는 변압기에 대해서도 도로 점용 허가는 매년 연장해 주고 있는데, 이는 당장 변압기를 옮기거나 대체할 수 있는 대안이 없기 때문”이라며 “장기적으로 차로를 줄이고 보행로를 넓히는 등 전반적인 도시 계획과 정책이 개선될 수 있으면 문제를 해결할 수 있겠지만, 현재로서는 한전에 안전장치 추가를 요청하는 것이 한계”라고 밝혔다.
한편 목포시는 6일 한전과 함께 변압기 현황에 대한 전수조사를 거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광주시는 아직 전수조사 등 계획이 없다는 입장이다.
A씨 측 법률대리인인 ‘공익변호사와 함께하는 동행’ 소속 이소아 변호사는 “목포와 한전의 전수조사 결과와 조치 상황을 확인한 후 타 지자체에도 개선을 권고할 예정이다”며 “추후 개선이 되지 않는 사항이 지속적으로 확인되면 집단 소송도 고려할 것”이라고 밝혔다.
/글·사진=유연재 기자 yjyou@kwangju.co.kr
/목포=박영길 기자 kyl@kwangju.co.kr
# 지상변압기란=송·배전선을 전신주 없이 지하로 매설(전선 지중화)했을 때, 지중 고압선로를 통해 송전되는 고전압 전류를 일반 가정에서 쓰는 220~380V의 저압으로 바꿔주는 장치다.
지금까지 인도에 설치한 4000여개의 지상변압기를 전부 손봐야 하는 실정이 됐을뿐 아니라 막대한 설치 비용 때문에 변압기를 옮겨 설치하기도 어렵기 때문이다.
6일 한전 광주전남본부에 따르면 광주·전남에 설치된 지상변압기는 모두 6990개이며, 이 중 4164개(59.5%)가 인도에 설치돼 있다. 다섯 개 중 세 개는 인도에 설치된 것이다.
하지만 6일 오전 광주일보 취재진이 둘러본 광주시 곳곳에서는 변압기에 가려 보행 구간 폭을 1.5m는커녕 1m조차 확보 못 한 구간이 수두룩했다.
광주시 서구 치평동 5·18기념공원 인근에 있는 한 인도는 변압기에 가려져 보행 구간이 69㎝밖에 남아있지 않았다. 이곳 인근의 다른 변압기도 보행구간 72㎝만을 남겨 두고 보행로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었다.
일부 인도에서는 최근 쌓인 눈이 좁은 구간에 단단히 얼어붙으면서 시민들이 엉금엉금 보행로를 걸어야 하기도 했다.
길이 좁아지면 어디에 부딪힐지 몰라 심리적 긴장감이 커지고, 지팡이를 수차례 더 짚어 가며 보통 때보다 조심히 통과하는 등 불편이 크다는 것이다. 더구나 좁은 길을 통과하는데 집중하다가 곧바로 나타난 사거리를 못 알아채 차도로 뛰어들뻔 하는 등 위험도 증가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김민석 광주시각장애인복지관 권익옹호팀장은 “변압기뿐 아니라 가로수, 전동킥보드 등으로 보행로가 2m 이하로 좁아지는 경우가 많은데, 그럴 때마다 시각장애인들은 위험을 무릅쓰고 좁은 길을 통과해야 한다”며 “인도가 좁고 굴곡져 있는데다 점자블록도 없으면 한없이 걸음 속도가 느려지고 심리적으로도 답답하다”고 말했다.
또 수동 휠체어의 폭이 65㎝정도 수준이라는 점에서 일부 인도에서는 휠체어 이용자들은 좁은 길을 통과하기 어려워 차도를 통해 우회하는 등 교통사고 위험도 키우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전 측은 변압기 설치가 필요한 ‘전선 지중화 사업’ 자체가 상가 등 전기 수요가 밀집된 곳에서 이뤄지다 보니 지자체와 협의 하에 변압기를 좁은 인도에 설치하는 사례가 종종 있다는 입장이다. 사업 시 인근에 상가가 형성되고 건축 허가도 나 있는데 무작정 전기 공급을 끊어버릴 수 없는 노릇이라 ‘어쩔 도리가 없다’는 것이다.
나아가 변압기 이설 작업을 할 경우 설치 비용만 전신주보다 3~5배 이상 비싸고 지하 공사, 기존 변압기 철거 공사까지 해야 해 신규 설치보다 더 많은 비용이 든다는 점도 문제다.
한전 광주전남본부 관계자는 “비용 등을 고려했을 때 좁은 인도에 설치된 기존 변압기를 모두 이설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다”며 “판결문을 받아본 뒤 구체적인 대응 방침을 정할 것이며, 변압기에 모서리 보호(완충) 장치를 설치하는 등 안전 조치 방안을 폭넓게 검토할 것”이라고 해명했다.
광주시 서구 관계자는 “보도 설치 기준이 엄격하게 적용되지 않던 과거에 설치된 변압기에서 최소 보행로 폭을 갖추지 못한 사례가 많다”며 “현재는 최소 보행로 폭을 확충하지 못하면 도로점용허가를 아예 내 주지 않는데, 이 때문에 광주 내에서 전선 지중화 사업을 못 하는 지역이 대부분이다”고 설명했다.
이어 “보행로 폭 문제가 있는 변압기에 대해서도 도로 점용 허가는 매년 연장해 주고 있는데, 이는 당장 변압기를 옮기거나 대체할 수 있는 대안이 없기 때문”이라며 “장기적으로 차로를 줄이고 보행로를 넓히는 등 전반적인 도시 계획과 정책이 개선될 수 있으면 문제를 해결할 수 있겠지만, 현재로서는 한전에 안전장치 추가를 요청하는 것이 한계”라고 밝혔다.
한편 목포시는 6일 한전과 함께 변압기 현황에 대한 전수조사를 거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광주시는 아직 전수조사 등 계획이 없다는 입장이다.
A씨 측 법률대리인인 ‘공익변호사와 함께하는 동행’ 소속 이소아 변호사는 “목포와 한전의 전수조사 결과와 조치 상황을 확인한 후 타 지자체에도 개선을 권고할 예정이다”며 “추후 개선이 되지 않는 사항이 지속적으로 확인되면 집단 소송도 고려할 것”이라고 밝혔다.
/글·사진=유연재 기자 yjyou@kwangju.co.kr
/목포=박영길 기자 kyl@kwangju.co.kr
# 지상변압기란=송·배전선을 전신주 없이 지하로 매설(전선 지중화)했을 때, 지중 고압선로를 통해 송전되는 고전압 전류를 일반 가정에서 쓰는 220~380V의 저압으로 바꿔주는 장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