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 고창에는 사회복지법인 ‘희망샘학교’가 있다. 가정 이탈이나 학교 부적응 학생을 보호자나 학교장의 위탁을 받아 가르치고, 가정법원에서 소년보호시설 감호 위탁 처분을 받은 청소년들이 생활하기도 한다. 대안 교육을 겸한 교호시설(敎護施設)이다. 기간은 6개월이지만 보호자나 수탁기관의 요청으로 더 연장할 수 있으며 재학생인 경우에는 재적 학교의 출석이 인정된다.

주말에 민수(가명)가 생활하고 있는 희망샘학교에 다녀왔다. 들판에는 공룡알 같은 하얀 원형 볏짚더미가 보이고, 언덕배기 밭에는 끝물 배추가 널려있는 한적한 곳이었다. 황사와 미세먼지로 지쳐서인지 매섭게 찬 날씨가 더 좋았다. 궁금했다. 학교 이름처럼 민수의 가슴에 희망의 샘물은 어느 정도 고였을까. 민수는 김장 무를 뽑아 나르는 봉사 활동을 하고 있었다. 지난해 이맘때 민수 외할아버지 장례를 치르고 처음이니 1년 만에 만난 셈이다.

상담실에서 짜장면과 탕수육을 놓고 마주 앉았다. 반갑다는 인사가 서툴러서 쑥스러워했지만 대화는 술술이었다. 법률 용어도 상당했고, 지도 교사에게 개긴 사건도 자랑했으며, 모범생으로 선정되어 베트남까지 다녀왔다고 했다. 여행 가이드(베트남 여행의 영향인 듯), 직업 군인 등 진로에 대해서도 먼저 꺼냈다. 차라리 소년원으로 보내주라고 대들던 천방지축은 아니었다. 핏덩이 때부터 외조부모가 키운 민수는 친권을 포기한 엄마 이야기도 했다. 아빠가 돌아가시고, 세 번 재혼하여 동생이 4명인데 또 네 번째 새 아빠가 나타났기에 동생이 몇 명이나 늘어날지 모르겠다고 한숨이었다. 탕수육은 식어가고 짜장 면발은 굳어갔다. 소년원의 분류심사원에 두 번이나 위탁되었고, 이에 낙심한 외할아버지는 스스로 세상을 떴다.

민수는 특성화 고등학교인 A공고 1학년이다. 지난 3월 초에 한번 등교하여 담임 선생님 잠깐 만나고 교과서를 받아 사물함에 넣고 나온 것이 학교생활의 전부이다. 반복된 비행으로 가정법원의 위탁 처분을 받아 희망샘학교로 간 것이다. 얼굴조차 기억할 수 없는 학생이지만 A공고에서는 교과서를 보내주고, 시험지를 희망샘학교로 가지고 가서 시험을 치르게 하여 이제 2학년 진급을 앞두고 있다. 사실 민수는 지난 10월 위탁기간이 종료되었으나 또 다른 비행이 있어서 보호자와 가정법원의 조치로 6개월 연장을 받아 내년 4월까지 희망생학교에서 생활하다가 학교로 돌아오게 된다. ‘소년 통고제’를 활용한 사례이다.

‘소년 통고제’는 가정이나 학교에서 비행청소년 지도가 어려울 때 보호자나 학교장이 가정법원에 보호 처분을 신청하는 제도이다. 가출하여 집단으로 몰려다니거나 비행이 반복되어 부모가 통제할 수 없고, 교사의 지도도 불응하는 경우, 학폭위원회의 조치도 이행하지 않는 등 지도에 한계가 있는 청소년을 대상으로 취하는 신속하고 효율적인 조치이다.

청소년 입장에서는 부모나 학교장이 끝까지 보호해 주기는커녕 앞장서서 고발했다는 오해를 살 수 있다. 그러나 이 제도는 비행 청소년을 배려하는 많은 장점이 있다. 먼저 경찰이나 검찰의 수사를 받지 않아도 되니 심리적 부담을 줄일 수 있고, 사건 내용이 수사 기관에 통보되지 않으므로 범죄·수사경력 조회서에 기재되지 않는다. 경찰, 검찰, 법원을 거치지 않아 신속하게 보호 처분을 할 수 있다. 소년 보호 처분은 전과가 되지 않으며 전문가 상담, 화해권고 등으로 가·피해자 또는 보호자와 학교간의 분쟁을 예방할 수 있다. 신청 방법은 서류로 접수하거나, 가정법원을 방문하여 구두로도 할 수 있어 매우 간편하다. 지금까지 경험으로 보면 따뜻한 마음으로 냉정하게 잘 설명하면 대부분의 대상자들이 수긍하고 받아들였으며 결과도 좋았다.

테레사 수녀님은 “난 결코 대중을 구원하려고 하지 않는다/ 난 다만 한 개인을 바라볼 뿐이다/ 난 한 번에 단지 한 사람만을 사랑할 수 있다/ 한 번에 단지 한 사람만을 껴안을 수 있다/ 단지 한 사람, 한 사람, 한 사람씩만…”이라고 했다. 이번 방문은 민수 외할아버지를 대신한 이승의 만남이었다.

민수는 면회가 끝나고 돌아서는 나를 수줍게 부르더니 고마움의 표시로 무 몇 개를 주었다. 단물이 나올 것 같은 황토 묻은 무였다.